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근주 Jul 04. 2024

안온한 관찰자

3. 7월의 우기

 2023년은 유독 비가 많이 내리는 여름이었다. 기상청에서는 연일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역대급 폭염이 찾아올 거라는 보도를 냈지만, 그 해 여름은 근 몇 년간 겪은 여름 중에 가장 시원한 여름이었다.

 비는 6월 말부터 시작되었다. 물론 그전에도 비가 오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끊임없이' 이어졌던 비의 시작은 그즈음부터였다.

 어렸을 적 장마에 대한 기억은 '장마철'이라고 부르는 기간에 집중적으로 내리는 비 정도였다. 이 기간에 집중적으로 내리긴 했지만 소강상태가 번갈아 나타났었다.

 2023년의 여름은 장마가 아닌 우기에 가까웠다. 구름에 충전기를 꽂아놓은 것처럼, 비구름은 비를 내린 만큼 수증기를 충전했다. 잠시도 쉬지 않았다. 기후 변화로 아열대기후가 되어버린 한국의 남쪽은 그야말로 비의 향연이었다. 우기와 다를 바 없는 7월 한 달간의 강한 비와, 8월 즈음부터 좀 여름답게 더워지는가 싶으면 국지성으로 스콜이 땅을 적셨다. 기상청도 예측하지 못하는 이런 국지성 날씨 변화는 늘 우산을 가지고 다니게 만들었다. 차라리 소나기처럼 저 먼 곳에서 거대하고 묵직한 먹구름이 밀려오는 것이라도 보인다면 비를 피할 채비라도 할 텐데, 스콜은 그런 낌새조차 없었다. 갑자기 해가 가려지는가 싶으면 곧이어 장대비가 쏟아졌다. 땅을 한바탕 흠뻑 적시고 나면 언제 비가 왔냐는 듯 다시 해가 얼굴을 비춘다. 이런 날도 여름 동안 비주기적으로 반복되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대개 빗소리를 좋아하지 않을까. 독서와 비. 이 둘은 절묘하게 잘 어우러진다. 독서를 할 때 비 내리는 풍경을 함께 하는 것을 좋아하기도 하고, 빗소리를 즐기기도 한다. 혹은 비가 제공하는 그 모든 것을 만끽하거나. 종이와 물이 상극인 것을 생각하면 독서와 비가 어울린다는 게 한편으로는 아이러니하다.

 빗소리가 제공하는 비반복적인 자연소리는 백색 소음으로써 아주 탁월하다. 그래서 비 오는 날은 평소보다 더 책에 집중이 잘 된다. 빗물이 침투할 수 없는 안정적인 실내에서, 읽고 싶은 책을 펼쳐드는 것은 독서인이 만끽할 수 있는 즐거움 중 하나일 것이다.

 그래서 비가 오는 날의 북카페는 북적일 줄로만 알았다. 비가 내리는 창밖을 보며, 시원하게 내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커피 한 모금, 책 한 페이지를 넘기는 호사스러움을 갖기 이전에 사람들이 비가 오면 외출 자체를 꺼린다는 것은 생각지도 못했다.

 과거의 나도 비가 오는 날 조용한 카페의 창가 자리에 앉기까지 외출을 하느냐 마느냐로 엄청난 내적 갈등을 겪었는데 다른 사람이라고 오죽할까.

 당연한 결과겠지만 7월의 폭우를 뚫고 독서를 하러 오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나마 책가방을 메고 오는 분들은 대부분 공부를 하러 오는 사람들이었다. 독서실이나 스터디카페의 밀폐되고 정숙한 분위기보다 개방적이면서 적당한 소음이 뒤섞여 있는 곳을 찾는 사람들. 몇몇 부도덕한 사람들의 만행이 언론에 노출되면서 그 행위를 하는 전체가 눈치를 보게 된 사람들. 비 오는 날의 북카페는 그들의 안식처가 되어주었다.

 나는 그들이 사용하기 용이하게끔 벽면의 몇 안 되는 콘센트에 멀티탭을 연결하여 거의 모든 자리에서 전기를 사용할 수 있게끔 만들었다. 다른 사장님들은 있는 콘센트도 막는다던데, 나는 반대로 그것을 더 늘렸다. 공부하는 것 또한 어떤 분야의 책을 읽는 것 아니겠느냐는 생각에서 비롯된 행동이었다.

 언론에서 언급하는 만큼의 만행을 저지르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사람들은 눈치를 보느라 그들이 예전처럼 행동하지 못하는 것이라 했지만, 나는 그 사람들이 원래 그런 사람들이 아니었다고 본다. 언론은 백지 속에 찍힌 점 하나를 돋보기로 들추는 것이라 사람들은 돋보기를 통해 보이는 검은 점의 크기가 실재인 것으로 착각한다. 돋보기를 치우고 세상을 바라보면, 세상은 우리가 언론을 통해 봐 왔던 것보다는 더욱 살만한 곳이다.

작가의 이전글 안온한 관찰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