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반차 Nov 17. 2024

폭풍이 지난 자리

낳지 않은 자식

언니의 불안한 뒷모습이 지난 후에도 엄마는 한참 동안 상담실로 들어오지 않았다.

상담실에는 나와 아빠가 남아 담당 간호사와 면담을 했다. 

병동 담당 간호사는 병원과 입원에 대한 전체적인 절차를 설명했다. 

준비해야 할 물품, 간식을 사는 방식, 전화나 휴대폰 사용 시간 등

폐쇄병동에 관한 상세한 안내와 준비해야 할 물품목록이 빼곡히 적힌 종이를 건네주었다.


그리고 간호사도 언니에 대한 몇 가지 질문을 했다. 

간호사의 태도는 냉소적이지만 열심히 일하는 회사원 같아 인상 깊었다.

"환자의 성격은 어땠나요?"

"입원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인가요?" 

"어린 시절부터 그랬나요?" 

"학창 시절엔 어땠나요?" 

등 질문에 꼬리질문을 하며 꽤나 상세하게 정보를 적어갔다.

간호사가 질문을 하자 아빠가 나에게 대답하라는 듯 자꾸만 나를 쳐다봤다. 

하지만 나는 언니와 5살 터울로 내가 알 수 없는 질문들이 많았다. 


나는 그동안 부모님의 무관심이 언니 때문일 것이라 넘겨짚어 생각했다. 그런데 언니에 대해서도 잘 모르는 아빠를 보니 '아.. 언니에게 관심을 가진 게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심경이 복잡해졌다. 

언니를 병원에 보내기 전, 그러니까 언니가 경계선 지능인임을 몰랐을 때 나는 언니 탓을 종종 했었다. 

내 우울의 원인을 때때로 무관심했던 부모님과 그 관심을 독차지했던 언니로 돌리며 언니를 미워하기도 했었다. 부모를 미워하는 것이 어려워 언니를 미워하기를 택한 것이다. 


하지만 더 이상 미워할 것 이 없었다. 자꾸만 뒤처지는 삶을 살아야 했던 언니, 영문도 모르고 경계선 지능인을 길러내야 했던 부모님 모두의 입장이 이해가 되었다. 나는 더 이상 누구도 미워할 수 없어 더 공허해졌다. 




아침에 나올 때만 해도 언니를 병원에 입원시킨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몰랐다. 

그만큼 정신없는 시간들이었다. 


입원은 생각보다 명료하게 와닿았다.  

4명이서 타고 왔던 차를 3명이서 타고 가는 것. 존재하지만 함께하지 못하는 것. 

입원에 기약도 없어 기분이 이상했다. 마치 우리가 악당이 되어 언니를 몰래 속여 병원에 넣어놓고 돌아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돌아가던 길에 차의 빈 한자리가 아직도 눈에 밟히는 것 같다. 


집으로 다시 돌아오지 못할 줄 도 모르고 따라나섰을 언니. 언니는 지금 이 상황을 어떻게 인지하고 있을까. 

이성적으로 최선의 방법이었지만 착잡한 마음이 들었다. 아마 부모님도 그러했으리라. 




집으로 돌아가기 전 병원에서 고지해 준 필요용품을 사러 다이소에 갔다. 언니에게 전달할 생필품과 옷가지 몇 개, 화장품을 구매했다. 당시에는 '언니가 잘 적응하기를...' 하는 마음뿐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물건들을 살 때 엄마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자식이 없는 나로서는 상상하기 어렵다. 


원무과를 통해 물건을 전달하고 난 뒤에 몇 시간 일지 모를 공복을 깨고 밥을 먹으러 갔다. 메뉴는 추어탕이었다. 어젯밤부터 너무 많은 일이 일어나 어안이 벙벙했다. 입맛도 크게 없었다. 하지만 추어탕을 꾸역꾸역 다 먹었다. 내가 가족과 한 식사 중 가장 고요한 식사였다. 

부모님은 계속해서 '병원 시설도 좋고, 생각보다 괜찮더라', '병원에 있는 게 (언니)한테 더 좋은 거 일수도 있어' 하는 말씀을 반복하셨다. 

나는 다가올 추석이 걱정되었다. 언니가 없는 집. 

'언니가 없는 명절을 엄마가 견딜 수 있을까?'

'빈자리를 메꾸기 위해 나라도 내려와야 하나?' 

하는 책임감이 들기도 했다.


어쨌든 폭풍 같은 삼일이 지나고 나는 삼일 만에 처음으로 깊은 잠에 빠졌다. 긴장하고, 신경 쓰며 머리를 굴려대는 와중에 잠도 못 자고 밥도 제대로 못 먹어 몸이 고장 나기 직전이었다. 낮인지 밤인지도 모르고 정신없이 아주 깊은 잠을 잤다. 



그리고 언니에게서 첫 전화가 걸려왔다. 

언니는 해맑게 말했다. 

"왜 폼클렌징은 안 넣어줬어~~?"


순간 너무 순진한 언니의 말에 내가 언젠가 언니의 보호자가 될 내 미래가 그려졌다. 언니는 나이 들지 않고 그 자리에 계속 머물겠구나.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어쩌지? 언젠가 나는 언니의 보호자가 되겠지? 

나는 부모님을 보호자라고 느낀 적이 없었다. 보호자가 없는 삶을 오래도 살았다. 그래서 평생 보호자가 없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슬픔을 늘 안고 있었다. 한때는 그것이 나의 큰 걱정거리이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보호해야 할 대상이 생겼다고 생각하니 신기하게 그 생각이 사라졌다. 이것이 엄마의 마음일까. 


나 어쩌지. 낳지도 않았는데 자식이 생겼다. 



이전 18화 믿는 도끼에 발등이 너덜너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