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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차 Nov 10. 2024

믿는 도끼에 발등이 너덜너덜

아프다 아파

변호사 사무실에 들어가니 밖에서 사무 보조를 하는 직원이 한 명 있었다. 그 안으로 통유리로 된 변호사 사무실이 보였다. 사무실은 아직 정리 중인 물품이 많아 보였다. 우리가 자리에 앉으니 직원이 마실 음료를 권했다. 입이 까끌해 음료를 거절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30분 상담에 오만 원의 돈을 받는 줄 몰랐다. 그럴 줄 알았으면 음료라도 잔뜩 먹고 오는 건데... 



우리가 도착했을 때 변호사분은 전화 중이었으므로 대기를 했다. 대기 중엔 계속 적막이 흘렀다. 잠시 기다리다 가족이 다 함께 상담실에 들어가게 되었다. 당시 상황으로는 병원으로 돌아가면 바로 입원 수속을 밟아야 했고, 아무도 퇴원에 대한 확신이 없는 상태였다. 그래서 바깥에 있을 때 최대한 일을 해결하자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변호사 사무실에 들어가자 언니는 사건의 본질은 말하지 않고 빙빙 둘러대며 질문을 해댔다. 아빠 지인들은 전형적인 다단계의 수법이라고 했으며, 변호사도 이해 안 된다는 듯 사건을 파악하려는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언니는 본인이 불리하다고 생각하는 질문에는 답하지 않았다. 나는 부모님과 내가 있어 솔직하게 답하지 못한다고 생각해 자리를 피해 주자고 말했다. 언니는 홀로 사무실에 남아 변호사님과 상담을 이어나갔고, 부모님과 나는 유리문 너머에서 기다렸다. 

"쟤 절대 말 안 한다" 

아빠가 말했다. 

"그래도 우리가 있어서 말 못 한 게 있을 수 도 있잖아" 

나는 대답했다. 


그렇다. 순진하게도 나는 언니가 하는 말을 계속해서 믿고 있었으며, 분명 말 못 할 (납득가능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 여겼다. 자리를 피해 주면 전문가와 함께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20~30분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언니의 표정을 보니 사건을 여전히 오리무중 같았다. 

변호사는 현재 언니가 직장에 다니고 있지 않아 회생 조건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에, 직장을 구하고 오라는 말만 남겼을 뿐 어떠한 첨언도 하지 않았다. 

언니 또한 상담에 대해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다. 모두 밥을 걸러 힘이 없는 채로 마지막 희망 같이 느껴졌던 변호사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잠시나마 언니를 믿었던 내가 바보같이 느껴졌다. 이제는 정말로 언니의 말과 행동 표정에 속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빠는 병원에서 휴대폰을 쓸 수 있다는 말에 입원을 망설이는 것 같았다. 결국엔 같은 문제가 또 발생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아빠는 또 다른 피해가 발생하기 전에 근본적인 원인을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라 여겼다. 그래서 변호사 앞에서는 혹시 말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가본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끝내 처음 돈을 빌렸던 이유는 알 수 없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내가 애원하듯이 말했다.


"그 돈을 왜 어디서 빌리게 되었는지 말해줘. 그냥 생활비가 부족해서 빌렸다고 하기엔 너무 큰 금액이잖아."

나도 정말이지 그 이유가 너무 궁금했다. 

"진짜 돈을 흥청망청 쓰다 보니까 그렇게 된 거라니까..."

언니는 울먹이는 듯, 기가 죽어 말했다. 


'아.. 우리가 너무 오래 방치했다.' 하고 생각했다. 우리는 서로를 믿을 수 없었고, 며칠간 넘기에 서로가 쌓아 올린 세월의 벽은 너무나 높았다. 

언니에게 2G 폰이라도 사서 들려 보내야 할지, 아니면 요양병원을 가야 할지 생각이 많아졌다. 

부모님과 논의 끝에, 언니의 동의를 얻어 휴대폰 없이 입원시키는 것이 최선의 방안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별다른 소득 없이 병원으로 돌아오니, 동의 입원을 위한 절차만이 남아있었다. 간호사가 들어와 동의 입원에 대해 설명했다. 의사 앞에서는 동의 입원을 하겠다고 한 언니였지만, 간호사 앞에서는 다시 마음이 흔들리는 듯했다. 이쯤에서야 나는 언니가 동의입원을 결정할 수 있는 결정력을 가졌는지 의문이 들었다. 


"엄마 혼자 들어가기 무서워" 언니가 엄마한테 어리광 부리듯이 말했다. 

엄마는 그런 언니를 달래며 상호 동의 간에 하는 입원이니 언제든 나올 수 있다고, 언니를 달랬다.


간호사가 급하게 "그럼 동의입원으로 할게요"라고 말하니 언니는 별말 없이 자리에 앉았다. 간호사가 빠르게 여러 가지 서류에 대해 설명하며 서명을 요구하자 언니는 서류를 읽지도 않고 맹목적으로 모든 서류에 서명을 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그동안 사기꾼들 앞에서 순진하게 얼마나 많은 서류에 서명을 했을까 싶은 마음이 들어 서글퍼졌다. 


그리고 엄청나게 키가 큰 보호사가 들어와 언니를 데려갔다. 

보호사 뒤를 따라가는 언니를 보니 기분이 이상했다. 산다는 게 뭘까. 

언니의 인생은 어땠을까... 

엄마는 울음을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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