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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차 Jun 03. 2024

책상과 의자를 사다

공간에 정을 붙인다는 것은

오늘의 소비 요약


총 사용비용 : 약 35만 원 (책상 16만 원, 의자 19만 원)  

가성비 3/5

재구매 의사 3/5

좋았던 점 : 책상과 의자 모두 탄탄해서 좋다.

아쉬웠던 점 : 책상 더 큰 거 살걸...




나는 대학생 때 상경했다. 그때부터 서울에 살게 되었다. 신입생 때 일 년 기숙사에 살았고, 지금까지 쭉 자취를 했다. 대학생 때는 거의 매년 이사를 다녔다. 이사비로 쓸 돈이 없어 친구들과 함께 짐을 옮겼다. 직접 이삿짐을 몇 번 옮기다 보니, 짐을 싸고 푸는 것에 진절머리가 났다. 나는 힘쓰는 것에 재능이 없었다. 게다가 산더미 쌓여있는 짐을 정리도 해야 했다. 그래서 당장 내일이라도 이사 갈 수 있도록 가벼운 짐만 두고 살았다. 짐에도 집에도 정을 붙이지 못했다. 좁은 집에서 공간 분리란 그림의 떡이었다.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해야 할 때는 무조건 집 밖을 나섰다. 덕분에 커피값을 많이 썼다. 집에서는 잠을 자거나 유튜브를 보는 게 다였다.

이전 집의 계약이 끝난 후 1.5룸의 오피스텔로 이사를 했다. 내가 살았던 자취방 중 가장 넓다. 슬라이딩 도어로 침실과 거실이 분리된다. 식탁을 놓을 수 있는 크기의 집은 처음이다. 처음으로 식탁을 샀다. 그것도 4인용. 이 정도면 카페에 가진 않고도 지낼 수 있겠지. 책상 겸용으로 쓸 생각이었다. 당근에서 식탁과 침대 프레임을 한 번에 구입했다.


나는 집에서는 철저한 와식생활을 했었다. 내가 어릴 때 외출을 하고 돌아오면 부모님은 말씀하셨다. '누워서 좀 쉬어'. 당연히 가족모두가 외출 후에는 누워서 휴식을 취했다. 습관적으로 집에 오면 몸이 녹아내렸다. 취직 후에는 더 심했다. 힘이 없어 퇴근하자마자 침대로 다이빙했다.

침대가 아닌 공간은 죽어있었다. 제 자리를 잃은 물건들이 아무렇게나 나뒹굴었다. 누군가 '방의 상태가 곧 그 사람의 머릿속' 이라던데. 내 방은 제대로 관리하지 않아 늘 어지러웠다. 이리저리 어질러져 있는 곳에 애정이 생길 리 없었다. 애정 없는 곳에서 징그럽게 오래도 머물렀다. 정확히는 침대에서. 한번 이불속으로 들어가면 나올 줄 몰랐다.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이 꼭 필요한 사람이다. 좁은 방에서 혼자 시간을 흥청망청 써버렸다. 좁은 집에 사는 게으른 나. 이런 어른이 될 줄 몰랐다.

게을러서 누워있는 건데, 누워있다 보면 더 게을러졌다. 공간의 크기만큼 내 사고의 크기도 줄어드는 듯했다. 침대에 누워 아주 높은 성벽 위의 조그마한 꼭대기에서 머문다고 상상했다. 아무도 나를 가둔 적이 없는데 꼭 갇혀있는 것처럼 지냈다. 내게 침대 속은 편안하지만 위태로운 곳이었다. 자취방이라는 공간이 그랬다.


 올해 취미로 작곡을 배우기 시작했다. 또 브런치에 작가가 되어 글을 쓰고 있다. 앉아서 해야 할 일이 많아지니 책상을 새로 사고 싶어졌다. 평소 나는 '침책맨' 채널을 즐겨본다. 침착맨 사무실 이사 브이로그에서 '데스커'의 책상이 좋아 보여 같은 브랜드의 책상과 의자를 구매했다. 나는 멀티탭 내장형으로 구매했는데, 충전기를 사용할 때 깔끔해서 좋다. 색상명은 블랙인데 차콜에 가까운 색상이다. 실물로 보니 사진보다 더 예뻤다. '책상이 예쁘다'는 생각을 처음 했다. 무거운 스피커, 모니터 등을 올려두어도 흔들리지 않고 안정적이다. 새 책상이 생겨 원래 가지고 있던 식탁을 버릴지 말지 고민했다. 고민 끝에 ㄱ 자형태로 두어 보조 책상으로 사용 중이다. 벗겨진 나무칠은 식탁보를 덮어서 가리니 티도 안 난다.  

새로 산 의자는 튼튼했다. 기존 것 과 똑같은 기능이지만 대체적으로 동작이 더 깔끔하고 무게감 있었다. 특히 의자를 뒤로 젖혔을 때 삐걱거리는 게 없어 안정적이었다. 무엇보다 이 의자... 바퀴 감각이 미쳤다. 굴러가는지도 모르게 굴러간다. 움직임이 정말 정말 부드럽다.


책상, 식탁 (지금은 보조책상), 의자의 자리가 정해지니 집이 아늑해 보인다. 책상이 예쁘니 계속 앉아있고 싶다. 지독한 와식좌였던 내가 좌식생활을 하기 시작하게 되다니. 환경이 이렇게나 중요하다. 일단 앉으니 누워있을 때 보다 생산적인 활동이 가능했다. 카페에 가지 않고 집에서 책을 읽거나, 글을 쓰기도 했다. 하루에 한 번 책상에 앉아 글을 쓰자는 나와의 약속을 했다. 약속을 지킨 날에는 괜히 뿌듯해서 잠도 잘 왔다. 이리저리 움직이며 쓰던 식탁도 자리를 찾았다. 구석에 박혀있던 식탁보도 제 몫을 하기 시작했다. 죽어있던 공간이 살아났다. 시간이 흐르면 어떨지 모르지만, 지금까지는 만족스러운 소비이다.

  


모든 물건에는 자리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금방 어질러진다. 내 마음도 그렇다. 마음 둘 곳 없이 이리저리 부유하던 내가, 책상 하나에 맘을 붙였다. 집에 오면 지쳐 잘 궁리만 하던 내가, 퇴근하고 책상 앞에 앉는다.

 굶주린 배를 채우고, 때론 쉬고 있던 머릿속도 채우고, 언젠가 텅 빈 마음을 채워가는 것. 공간에 정을 붙인다는 것은 이런 게 아닐까. 우리는 어디든 정을 붙이고 살아야만 하는 존재이다. 나는 7평 채 안 되는 이 집에 마음을 두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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