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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차 Sep 01. 2024

나는 어떻게 가족이 경계선 지능인임을 알았는가?

알고 보니 다르게 보이는 것 들

어렸을 때부터 언니가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언니보다 5살 어리다. 그런데 내 눈에도 언니의 부족한 점이 때때로 보였다. 그런데 그것을 말로 풀어서 누군가에게 설명할 수 없어서 정말이지 답답했다. 언니가 미울 때도 있었고, 누군가에게 늘 언니의 이상한 점을 설명하고 싶었다. 그런 나를 스스로 '나쁜 동생'이라 여기고 살았다. 

 

반면 나의 엄마는 굉장히 연약한 사람이었다. 엄마는 아주 작은 자극에도 쉽게 깨졌다. 엄마는 본인의 삶만으로 버거워 보였다. 언니와 나의 보호자가 되기에는 힘이 없었겠지. 이모와 아빠는 늘 '너의 엄마를 보호해야 한다'라고 나에게 말했다. 그런 말을 듣고 자라 중학생의 나이를 지나면서 나는 엄마가 내 딸 같이 느껴졌다. 다시 말해 내가 보호해야 할 존재라 여기고 살았다. 


내가 스무 살 때의 일이다. 친구와 처음으로 가는 해외여행이었다. 항공사의 스케줄 변경 메일을 미처 확인하지 못해 우리는 비행기를 놓치게 되었다. 처음 겪는 일이라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 나는 엉엉 울고 싶었는데, 친구가 친구의 엄마에게 전화해서 먼저 울고 있었다. 눈물이 쏙 들어갔다. 나까지 무너지면 안 될 것 같아서 일을 해결하고자 애썼다. 그때 나는 속으로 '엄마한테 이런 것도 말할 수 있나?' 하는 생각을 했다. 나의 엄마에게 말하면 충격을 받아 억장이 무너지는 말투로 "그럼 어떻게 해야 해? 너 이제 어떻게 해"라고 말할 것이 뻔했다. 힘든 와중에 그 말까지 들으면 내 마음이 더 힘들 것 같아서 말하지 못했다. 내 마음 깊은 곳에서는 엄마가 무너져서 나를 떠날지 모른다는 일종의 공포가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그래서 엄마한테 기대는 것은 생각해본 적 없거니와, 나의 힘든 점도 당연히 말한 적 없다. 유럽여행은 1학년때 갔는데, 비행기를 놓친 사실은 졸업할 때 즈음 말했던 것 같다. 



이런 성장 배경으로 나는 경미하게나마 우울증을 오래 앓고 살았다 이 사실을 취직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치료를 받으며 성장 환경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 '애착유형', '타당화' 같은 새로운 개념을 알게 되었다. 상담이 끝나면 새로운 개념을 검색해 보거나, 관련 자료를 찾아봤다. 그러다 보니 나의 유튜브 알고리즘에 정신 건강 관련 영상이나 다큐멘터리가 뜨기 시작했다. 우연히 경계선 지능인에 관한 다큐를 보게 되었는데, 바로 언니가 떠올랐다. '혹시 언니가 경계선 지능인이 아닐까?'. 처음엔 의심이 들었다. 관련 영상 몇 개, 책 한두 권을 읽어보니 의심이 확신으로 바뀌었다. 최근 검사결과에서 언니는 경계선 지능인 진단을 받았다. 내 생각이 맞았다. 

당연히 병원에서 검사를 해봐야 알겠지만, 몇 십 년을 같이 사는 가족의 시선도 꽤나 정확하다. 

아래 내용을 읽고 '혹시 내 가족도...?'라는 생각이 드시는 분이라면 가까운 정신의학과에서 종합검진을 받아볼 것을 권한다. 경계선 지능인은 검사 결과를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기 때문에 나이가 많다고 해도 보호자가 함께 가야 한다. 병원에는 빨리 가는 것이 좋다. 나의 언니의 경우에는 이미 나이가 많이 들었지만, 아이가 어리면 발달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여러 치료도 가능하다고 한다. 또 경계선 지능인은 치매에 걸릴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무작정 피하면 문제가 커질 수 있다. 직면할 용기를 가지고 병원에 가보시길. 



내가 느꼈던 언니의 특징에 대해 몇 가지에 대해서 말해보겠다. 


- 정리정돈에 어려움을 겪는다. 

방에 물건 중 제자리가 없는 물건이 더 많다. 밥을 먹고 치울 때면 남은 음식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매번 물어본다. 알려줘도 음식이 바뀌면 다시 물어본다.


- 때때로 말이 알아듣기 힘들 정도로 빠르다. 

말을 하고 싶지 않거나 생각이 나지 않을 때는 아예 말을 안 하다가, 본인이 관심 있고 재미있는 주제가 나오면 갑자기 빠르게 말을 한다. 이때 말의 속도가 너무 빠르고 흥분한 상태라 내용을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 고스톱 같은 보드게임을 즐기기 힘들다. 

조금 난도가 있는 보드게임을 함께 하기 어렵다. 클루, 루미큐브, 고스톱 등의 게임은 함께 즐긴다기보다 놀아주는 느낌이 강했다. 룰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특히 점수 계산에 있어 어려움을 겪고, 스스로 하지 못해 주변에서 도와줘야 한다. 


- 남의 말을 쉽게 믿어 사기를 자주 당한다. 

어른이 되고는 돈 관련 사기를 많이 당했다. 상식적이지 않은 요구에도 순응한다. 남이 시키는 대로 잘 따르기 때문에 사기를 당한 경우가 많았다. 


- 나이가 많은 사람과 어울림에 불편함이 없다. 

나는 20대가 되었을 때 50~60대의 어른과 친구처럼 지내는 것이 어려웠다. 반면 언니는 그 나이대 어른들을 잘 따르고 함께 노는 경우가 잦은 적도 있었다. 


- 쉽게 토라지고, 쉽게 풀린다. 

어른이 되어서도 부모님의 말에 쉽게 삐졌다. 그리고 이내 쉽게 기분이 풀리는 모습을 보인다.





이 외에도 많은 증상이 있겠지만 내가 느낀 바는 이 정도이다. 특징을 하나씩 떼어 생각해 보면, 정상 지능인도 그럴 수 있다 반문할 수 있다. 하지만 저 모든 증상을 가지고 있다면 경계선 지능인일 확률이 존재하므로 빠른 시일 내로 검사를 받아보길 권한다. 

경계선 지능인은 적절한 훈련과 도움으로 사회에 섞여서 살아갈 수 있다고 한다. 지금도 우리 가족은 하루에도 몇 번씩 좌절과 희망을 왔다 갔다 한다. 그래도 언니의 행복과 가족의 안위를 위해 운명을 받아들일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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