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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차 Aug 31. 2024

나의 상담일지(3)

누구에게나 각자의 힘듦이 있고, 각자의 무게가 있다. 


상담을 받다 보면 말하기 싫은 날들이 있다.

때로는 궁금해서 빨리 물어보고 싶기도 하지만 또 어떤 날은 입을 떼기도 싫은 마음이 들었다. 

그런 날이었다.

오후 2시 상담이었는데, 상담 가기 직전에 겨우 일어났다. 상담에 가서 진지한 이야기를 할 상상을 하니 힘이 쭉 빠졌다. 머리만 대충 묶고 상담가는 버스 안에서 정신없이 졸았다.

배가 너무 고파 바로 앞 가게에서  밀크티 한잔을 샀다. 펄을 추가한 줄 알았는데, 펄을 추가하지 않았다. 

나도 바보 같지. 참.




바로 직전까지의 상담에서 나의 수치심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나는 스스로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면이 드러나면 강한 수치심을 느꼈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나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 힘들었다. 

나의 힘듦을 남에게 말하기란 더욱 어려웠다. 힘든 일을 스스로 다 해결한 후에야 말을 꺼내곤 했다.

 

나는 주로 이런 식으로 말했다. 

'나 이렇게 힘들었었는데, 이렇게 해결해서 별로 안 힘들어 ~' 


내가 이런 방식으로 말하는 이유는 듣는 사람이 내 이야기로 감정소모를 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였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 나를 떠올리며 슬퍼하지 않기를. 이야기를 듣고 도움을 줄 수 없음에 무력해하지 않기를. 

이런 마음으로 힘든 와중에는 실시간으로 나의 감정을 공유하지 않았다. 일을 마무리해 내고 나서야 아무렇지 않은 척 꺼내어 보였다. 


이상하게 말하는 나보다 듣는 사람이 마음 아파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나는 내가 나의 불행을 과장해서 말한다고 생각했다. 과장을 하고 있는 내가 싫었다. 나는 나의 힘든 일이 한껏 무거워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도저히 나 혼자 들고 있기 힘들 때 아주 조금만 나눴다. 너무 무겁게 생각한 탓에 나의 힘듦도 말하기 어렵고, 남의 힘든 일도 듣기 어려웠다. 


초기 심리 상담과 병원 상담 중에 '말씀을 담담하게 하시니 제 마음이 더 아프네요." 하는 말을 자주 들었다. 담담하게 말하는 게 더 마음 아프게 들리는 줄은 몰랐다. 상담을 하며 '더' 아프다는 말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문제를 남에게 나누지도 못하고 혼자 다 감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상대가 마음껏 슬퍼하거나 화내지도 못하는 상태가 더 아픈 상태임을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다.

 '인간은 사회적으로 지내게끔 정말 정교하게 설계되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사람과 어울리는 게 힘든 상황은 내게 주지 말았어야지.. ' 상대도 없는 원망이 피어올랐다. 나는 누군가와 어울려 살아야만 하는 존재인데, 역설적으로 어울리는 것이 괴로웠다. 




상담에서 어떤 일이 끝난 후가 아닌, 힘든 일을 겪는 와중에 누군가에게 이를 공유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셨다. 

힘든 일을 왜 남에게 말해야 할까? 말하면서 내가 얻게 되는 것은 뭐가 있을까? 

이는 내가 상담을 받는 이유와 비슷하다. 


첫 째, 내가 왜 힘든지 원인을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원인을 명확하게 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다시 반복하지 않을 수 있게 되고, 피할 수 있다. 생각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되어 불필요한 감정 소모를 피할 수 있다. 


둘째, 모두가 비슷한 일을 겪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람들은 경험은 제각각 이어도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 나 같은 사람이 또 있다는 것은 큰 위로가 된다. 또 비슷한 감정을 나누며 연대감을 나눌 수 있다.


셋째, 새로운 시선으로 봤을 때 해결법이 보일 수 도 있다. 

나의 문제는 가까이서 보기 때문에 커 보일 때가 많다.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 내 문제를 봤을 때 새로운 시각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때론 그 대화 속에서 해결책을 찾을 수 또 있다. 



상담이 끝나고 친구에게 "사람들은 담담하게 말하는걸 더 슬프게 듣는대. 신기하지?"라고 말했다. 

이걸 그 친구에게 말한 이유는 그동안 나의 이야기에 마음 쓰고 있음을 잘 알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것들을 친구가 알기를 바랐다. 


너의 마음을 더 아프게 할 의도는 아니었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 써줌에 감사하다는 것 


우리의 전화 통화가 내가 일방적으로 힘든 이야기를 늘어놓는 식이 아니길 바랐다.

죽고 싶다 말하면 친구가 나의 부재중 전화를 보고 철렁할 것 같아, 말해본 적 없었다.

나를 친구이상으로 생각해 나에게 책임감을 느끼지 않길 바랐다. 

상태가 점점 나빠지는 나를 보며 자책하지 않기를 바랐다. 


하지만 실은 이건 내 마음이었다. 실제로 나는 친구가 전활 받지 않을 때 무너져 내렸다. 

그때마다 상태가 더 나빠졌다. 그래서 너무 무거워도 나 혼자 감당하려 마음을 다잡았다.

전화를 하지 않으면, 받지 않을 일도 없으니까. 

이런 내가 문제를 실시간으로 공유해 볼 수 있을까. 나에게 큰 문제인 것이 상대방에겐 별일 아니어서 시간만 빼앗는 것이 아닐까. 나의 힘듦을 주제로 남의 시간과 에너지를 뺏기 싫었다. 



여러 이유로 나는 나도 모르게 나의 힘듦을 후려치기 하고 있었다. 

나도 무척 배가 고팠지만, 불이 나서 모든 것을 다 잃어가는 사람과 나를 비교하며 '배고픈 건 힘든 것도 아니지' 생각했다. 

남과 불행을 끝없이 비교해며 무게를 매기고 있었다. 하지만, 내 불행이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혹은 내가 보기에) 가볍다고 해서 내가 힘들지 않은 것은 아니다. 누구에게나 각자의 힘듦이 있고, 각자의 무게가 있다. 내가 힘들다 느끼면 힘든 게 맞다. 

늘 나의 힘듦이 별것이 아니라 생각하고 넘겼다. 하지만 이게 다 '별거' 임을 인정하자. 인정하도록 노력해 보자. 



오늘도 상담이 끝나고 나오며 울었다. 

막막한 미래와 놓쳐버린 과거를 후회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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