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반차 Aug 25. 2024

나의 상담일지(2)

어떤 상태인지 알아주는 것. 단순한 위로

유난히 일교차가 심한 주였다. 카디건에서 롱패딩을 왔다 갔다 하는 날씨.

하지만 날씨를 못 느낄 정도로 무기력했다.

침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근무 중에도 몸이 너무 무거웠다. 의자에, 침대에 대충 널려있다 한 주가 어떻게 갔는지 기억이 안 난다.


우울하지 않을 때 잡아놓은 약속들이 캘린더에 차 있었다.

우울하지 않았던 나를 탓한다. 그땐 뭐가 그렇게 좋아 어떤 기대를 약속했을까.

결국 약속은 취소했다. 나 정말로 손 까딱할 힘이 없었거든.

우울하지 않은 내가 낯설다. 이전에는 생각도 못해본 것 들을 하고 싶은 생각이 드는 내가 낯설다.

낯선 나를 발견하면 반드시 다시 우울해져야 할 것 같은 의무감에 휩싸인다.

만약 내가 우울증을 오래 앓았다면, 우울하지 않은 건 내가 맞을까?



다행히도 날씨가 좋은 날이었다. 햇살이 밝아서 다행히 상담에 올 힘이 생겼다.


"잘 지내셨어요?" 하는 물음에

오늘은 "무기력한 한 주였어요."라고 답했다.


매번 같은 물음. 상담이 아니었다면 단순한 안부인사였을 말.

여기선 "어떤 문제가 너를 힘들게 했니? 나랑 같이 찾아볼래?" 하는 말이다.

이 징그럽게 다정한 말을 듣고 싶어 심한 무기력에도 여기까지 올 수 있었나 보다.

나의 안부를 물어주고, 문제를 함께 찾아 줄 사람. 그것이 상담사의 역할인가 보다.

나에게는 없는 기력을 비용을 지불하고 빌려본다.

그 힘으로 무기력의 원인을 함께 찾아본다. 때로는 나 대신 찾아주는 것 같기도 하고.


내 무기력이 나에게 알려주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감정은 늘 목적이 있다. 이 감정은 나에게 무엇을 알려주고 싶은 걸까.


상담선생님은 이렇게 표현하셨다.

 "무기력이 어떤 메시지를 담고 있었을까요?"


정적이 흐른다. 상담실에서의 정적은 끝이 있다. 때로 답이 있을 때도 있다. 선생님이 생각하는 답 근처에서 뱅뱅 맴돈다. 언젠가는 혼자 정답을 찾기도 하고, 또 언제는 답을 들어도 답인지 모른다.


"부담감일까요?"

머릿속에 흩어지는 단어 중 가장 자연스럽게 뱉을 수 있는 단어를 말해본다. 나는 내 머릿속의 단어들이 내 감정이라는 것을 거의 알아차리지 못한다. 하지만 자연스럽게 나오는 말이라면, 그것이 곧 내 마음일 때가 많다. 

내가 느끼는 부담감의 원인에 대해 한창 이야기를 나눴다.


"힘드셨겠어요."

"누구나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 같아요. "


비싼 돈 내고 받는 위로. 그리고 타당화. 내 안에는 그동안 스스로 인정하지 못한 감정들이 쌓여있다.

내가 인정하지 못하니 남에게 말할 수 없었던.

그렇게 인정받지 못했던 감정들을 숙제처럼 검사받는다.




경계성 지능인에 관한 다큐를 우연히 보게되었다. 딱 나의 친언니 이야기였다. 

다큐를 보고 처음에는 개운한 기분이 들었다. 그동안 친언니를 답답하게 느껴 마치 내가 죄인이 된 것 같았다. 그런 죄책감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었다. 그래서 이 깨달음이 내 무기력의 원인일 거라고 미처 생각 못했다. 선생님이 "그럼 그 다큐가 원인이었겠네요."  말씀하셨다. 마음속에서 반감이 들었다. 인정하기 싫은 거다. 왜 그런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다른 이유 때문에 무기력했을 거라고, 또 정답을 두고 빙빙 돌았다.


이제는 그게 정답인 줄 안다. 내가 정답을 피하는 것도 안다. 이럴 땐 그냥 속으로 되뇌며 외워본다.

'이번 무기력은 부담 때문이다.'

나도 모르게 느꼈을 무력감과 부담감.


오늘은 유난히 긴 정적이 흘렀다. 눈물을 참으려 눈을 계속 감게 되었다.

"그렇군요. 맞는 것 같아요 “라고 대답하며 선생님의 말을 내가 알 수 있도록 혼자서 계속 되뇌었다. 오늘도 새로운 생각의 길을 만들어본다. 긴 정적이 흐르고, 10분여의 시간이 남았다. 오늘따라 상담 시간이 더디게 간다.


"본인을 위로해 주세요."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이 말을 듣고 나니 눈물이 쏙 들어갔다. 위로를 왜 해야 하지?... 와중에 이게 궁금한 내가 참, 로봇같이 느껴진다. 상담을 하면서 내가 인간의 감정을 배우는 로봇 같다고 느낄 때가 종종 있다.


"위로를 하면 어떤 효과가 있나요?"

내가 물었다. 아... 위로를 어떻게 하는지 먼저 물어볼걸 그랬나.


"적어도 본인을 다그치며 몰아세우지 않게 되죠. 우리가 힘든 일을 겪고 있는 사람을 몰아세우진 않잖아요. "

선생님이 말했다.


이 말을 들으니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바로 알 것 같았다. 어떤 상태인지 알아주는 것. 그것이 위로구나.

그러니 나의 상태를 알려야먄 위로받을 수 있겠구나. 내가 나의 상태를 알려고 노력해야 스스로 위로할 수 있구나.





살다 보면 다양한 문제가 생긴다. 어쩌면 인간의 인생이라는 게 여러 문제들로 이루어졌을지 모른다.

그중 몇몇 문제는 원인을 파악하고 해결할 수 있다.

나는 해결법이 있는 문제에 강하다. 그래서 부모님의 문제도, 나의 문제도 곧 잘 해결했다. 그렇게 살다가 매일매일 문제를 찾고 해결하는 직업을 가졌다. 하지만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스트레스에 정면으로 맞았다.


하지만 어떤 문제는 해결할 수 없어 평생을 짊어지고 가야 한다.

지속적으로 더 악화되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

우울증 치료는 이런 지속하는 힘이 필요하다. 넘어질 때마다 다시 일어나서 더 나빠지지 않도록 관리하는.

넘어질 때마다 너무 큰 스트레스를 받으면 지속하기 힘들다. 그래서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너무 힘들어하지 않는 연습을 해야 한다. 난 평생 이런 힘은 길러본 적이 없다.

그래서 나의 힘으로는 해결할 수가 없었나 보다. 시간과 비용을 지불해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아 이 힘을 길러나가겠지.

  

당장은 받는 것은 없고 주기만 해야 하는 관계를 위해, 나의 힘을 길러야 하는 게 너무 가혹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하기 싫다.




그래도 상담 후에 글을 써야겠다는 다짐을 지켰다.

그리고 글을 쓰고 나니 배가 고파서 다행이다.


이전 05화 우울은 부자의 것일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