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력은 전문가와 상의하세요
상담 센터를 찾아볼 때만 해도 모든 글을 다 읽고 갈 것 같은 기세로 휴대폰을 놓지 못했다. 하지만 막상 센터를 고르고 나니 관련 내용은 쳐다도 보기 싫었다. 예약한 날짜가 다가오니 가기 싫은 마음만 커졌다. 때마침 감기가 심해졌다. 비몽사몽 한 상태로 첫 상담에 갔다.
상담에 처음 가면 상담센터를 찾아온 이유를 묻는다. 어떤 점이 힘들었는지, 그동안 비슷한 어려움이 있었는지. 이번이 특별히 더 힘들었던 이유가 뭔지 등등. 센터를 찾게 된 이유는 자살충동 때문이었다. 살면서 우울하다고 느낀 적은 많았지만 죽고 싶다는 생각이 이렇게 강하게 들었던 적은 처음이었다. 그 원인에 대해 혼자 생각할 힘이 없었다. 나의 우울의 이유를 누군가에게 설명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나를 우울함에 빠지게 하는 건 '작은 가정'이었다. 예를 들면, '오늘 잠에 들어 내일 깨지 못하면 어쩌지?' 같은. 시작은 단순한 생각이었다. 잠깐 사이에 생각은 사라지고 부정적인 감정이 남았다. 그 감정이 머리를 채우고 이내 몸을 덮쳤다. 생각들은 어질러져있고, 감정은 여전히 남았다.
희미한 감정을 모호한 언어로 말하다 보니 한 시간이 길었다. 낯선 사람 앞에서 나의 그늘을 설명해야 하는 게 잔인하게 느껴졌다. 중언부언하지 않고 명료하게 말하려고 애썼다. 상담 시간 동안 너무 애를 쓴 바람에 기력이 다 떨어지고 말았다.
힘든 것들이 해결되면 어떻게 되면 좋겠는지, 상담의 종결 목표도 정했다. 평생 상담을 받을 순 없으니까.
나는 살면서 상담을 처음 받아봐서, 상담의 효과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 상담을 꼭 받아야 할지, 구체적으로 어떤 점이 도움이 되는 것인지 설명을 들었다. 설명을 듣고 바로 의문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그리곤 나의 상태에 대해서 말씀하셨다.
상담 선생님은 (자세한 건 검사를 해봐야 알 수 있겠지만) 내가 무기력한 상태인 것 같다고 했다.
‘난 회사도 다니고 있고, 제때 자고 제때 일어나려 하고, 건강을 위해 운동도 하는데..
내가 무기력하다고..?’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나는 무기력이 뭔지 몰랐다.
무기력은 우울증의 대표적인 증상이다. 선생님은 나를 설득하기 위해 예를 들었다. 옷을 엄청 좋아하는 분이 있었는데 옷을 많이 사두었지만 입고 다니진 못했다고. 무기력이 나아지면서 그때 산 옷들을 뜯어 입어보고 있다고. 그 재미를 잊고 살았었다고.
듣고 나니 무기력이라는 게 너무 사소하고 의미 없게 느껴졌다. 고작, 옷 잘 고르자고 시간을 내어 여길 와서 꽤 비싼 돈을 주고, 벌서는 사람처럼 그간 나의 잘못에 대해 하나하나 말하고 있어야 한다는 게.
사실 상담이 하기 싫어서 끊임없이 핑계를 대고 있었다.
그러니까 나는 일상의 재미를 느낄 여유가 없었다. 무기력이 밥 먹고 설거지를 바로 하지 않는 것, 퇴근하고 와서 눕는 것 정도로 느껴졌다. 밥 먹고 설거지 바로 하자고 상담을 받고, 약을 오랫동안 먹는 게 이상하게 느껴졌다. 상담을 받기 싫었다. 병원에 가기는 더 싫었다.
바로 그게 무기력이었다. 건강한 사람은 손이 베이면 빨리 낫기 위해 병원에 간다. 내가 아프다면 얼른 치료해 낫게 해야 한다. 건강하다면 그 정도 기력은 있어야 한다.
나는 무기력하지 않은 내가 어떤 모습일지 몰랐다. 상상이 되질 않았다. 당시 나는 행복하기 위한 노력이 사치로 느껴질 만큼 무기력했다. 꼭 필요한 것만 꾸역꾸역 해내는 중이었다. 우울증이 아님을 증명해 내기 위해 이 악물고 쳇바퀴 속에 나를 강제로 밀어 넣고 있었다.
첫 번째 상담이 끝날 때 까지도 상담을 받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 정하지 못했다. 다음번까지 해와야 할 검사지를 받아 들고 센터를 나왔다.
상담을 받고 나오니 죄책감이 느껴졌다. 똑바로 대답하지 못하는 것 같아서 선생님께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돈을 주고 하는 것이었는데도 말이다. 죄책감도 우울증의 주된 증상 중 하나이다.
당시 나는 별것도 아닌 일에 죄책감을 느끼곤 했다. 너무 우울한 밤엔 무서워서 친한 친구에게 전화를 건 적이 있다. 나의 우울이 친구에게 옮아버릴까 봐, 친구가 쓸데없이 시간 낭비를 하고 있을까 봐 너무 미안했다.
나랑 친하게 지내지 않았다면 한밤중에 이런 전화를 받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내가 없었다면 모두가 이런 문제를 겪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하는 생각.
처음엔 죄책감이 우울증의 증상이라는 것을 몰랐다. 감정을 증상으로 분리해 생각하긴 정말 어려운 일이다.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이유 모를 눈물이 고였다.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계속 눈물이 흘렀다. 억울하기도 하고, 원망스럽기도 했다. 너무 울어서 머리가 울렸다.
두 번째 상담은 정말 가기 싫었다. 그래서 숙제로 주셨던 검사를 미루고 미루다 다음 상담 직전 새벽에 했다. 당시에는 생각하기 싫으면 그냥 자버렸다. 그래서 상담이 다가올수록 잠이 많아졌다.
정말 가기 싫었지만 다른 상담 센터를 찾고 다시 검사할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그냥 갔다.
“지난번 상담 후엔 어떠셨어요?”
“그냥... 오기 싫어서 잠을 많이 잤어요 “
낯선 사람에게 내 이야기를 하는 게 너무 어려워서 자꾸 짧게 대답했다.
“안 올 수도 있었잖아요?”
아. 그렇구나. 여기 안 올 수 있는 거였구나. 나는 정말 가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을 못해봤다. 검사 결과를 들었고, 병원에 갈 것을 권하셨다. 검사 결과를 애써 담담하게 듣고 나왔다. 나오면서 오랫동안 나를 방치한 나를, 또 도움 주지 못한 가족을 원망했다. 그러다 내가 너무 불쌍해졌다.
다음날 아침, 또 그다음 날 하루종일 생각했다. 오랜 생각 끝에 '나 혼자서 못 할 일은 전문가와 상담해 보자' 결심했다.
첫 번째 상담 때 말해주셨던 무기력의 의미를 이제는 조금 안다.
'무기력은 내가 좋아하던 것들을 잊게 하니, 무기력이 해결되면 좋아하는 것을 좋아할 수 있게 된다.'
무기력이 해결되면 나도 그렇게 될 수 있다는 말을 전해주고 싶으셨겠지?
시간이 더 지나면 이해하지 못했던 다른 말들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될까.
이 터널을 걷다 보면 그런 날도 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