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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차 Aug 11. 2024

우울의 보고

기대할 것 없는 내일과 좌절뿐인 오늘

어느 순간 작은 일에도 크게 좌절하는 사람이 됐다. 작은 일에 좌절하는 건 힘들었다. 남들이 보기에 아무것도 아닌 일이 내 세상의 전부일 때가 많았다. 내 삶에는 내가 없었다. 그래서 쉽게 무너졌다. 부정적인 감정은 마음에 한번 들이기 시작하면 커지기만 한다. 그 감정을 줄일 수 있어도 없앨 수는 없다. 그것들은 이내 흔적을 남긴다. 그 흔적들을 가지고 나는 세상을 왜곡해서 봤다. 사건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며 무너질 듯 삐딱하게 모든 것을 봤다. 그런 삶에 내일이 기대될 리 없다. 내 마음엔 부정적인 감정만 다양해졌다.




십여 년간 겨우 재워놓은 나의 좌절을 깨운 날이었다.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봤던 회사의 면접 결과 발표날이었다. 운 좋게도 첫 면접에서 내가 가장 가고 싶어 하는 회사의 면접을 보게 되어 열심히 준비했다. 처음이라 감이 없어 결과를 가늠하지 못해 마냥 기다릴 뿐이었다. 기다리는 동안 피가 말랐다. 그 회사가 마치 내 인생의 유일한 동아줄처럼 느껴졌다. 머리로는 다른 회사를 또 준비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마음은 낭떠러지 앞에 있었다. 내 맘은 언제든 떨어져 버릴 것 같았다. 이번 기회를 잡지 못하면 나는 끝이라고. 기회를 잡지 못하면 스스로를 끝없이 비난했다.


결과 발표 메일이 왔다. 취업 준비 단톡방에 새로운 메시지가 쏟아졌다. 나에게 결과를 확인하는 그 행위조차 버거웠다. 그나마 조금 남아있던 기대감 마저 잃고 싶진 않았다. 결과를 확인하는 게 너무나도 두려웠다. 어쩌면 붙은 거라는 생각은 거의 하지 않았을 수 또 있다. '떨어지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컸다. 다시 준비할 자신이 없었다. 채용 과정 처음으로 돌아가 서류 발표를 기다리며 인적성 공부를 하고 시험을 치러 다니는 일련의 과정을 반복할 힘이 없었다. 그때 이미 무기력의 늪에 빠져있었다. 하지만 쉬기는커녕 끊임없이 휘몰아쳤다. 나는 쉬어갈 줄 몰랐다. 누군가를 다독일 줄 몰랐다. 남도, 나도 그 누구도.


여유를 모르고 조급해하기만 했다. 그런 마음이 나를 더 불안하게 만들어 점점 힘을 잃게 했다. 도축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하루하루를 견뎌냈다. 이 산을 넘어도 더 큰 산이 있다는 걸 알았다. 그래도 그 산을 넘을 수밖에 없었다. 가시밭길인줄 알며 걸어내고 있었다. 마음이 늘 괴로웠다. 어쨌든 첫 결과는 탈락이었다. 두려운 마음에 결과 확인을 미루다 저녁을 먹고 뒤늦게 확인했다. 머릿속에는 '이럴 줄 알았어. 그럼 그렇지' 하며 내 탓을 하기 시작했다. 평정을 찾기 힘들었다. 학교 근처 편의점 의자에 앉아 봤던 그날의 달이 아직도 선명하다. 달이 밝았다. 눈물이 계속해서 차올라서 달 빛이 일렁이며 깨졌다. '겨우 잠재워서 데리고 살던 좌절을 깨웠구나.' 싶어서 막막함이 몰려왔다. 그때부터 눈에 띄게 불안해하고 쉽게 좌절했다. 어느새 우울이 제일 쉬운 사람이 되었다.




우여곡절 끝에 원하던 회사에 입사했다. 어쨌든 산 하나를 넘었다는 생각에 개운하기도 했다. 입사를 하고서야 진짜 위기가 찾아올 줄도 모르고.

취직 전까지는 시기에 맞는 과업이 있었다. 한국 사회의 특성상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이. 그 과정에서 누군가는 실패하고 또 누군가는 성취한다. 나는 그 사이 어딘가를 떠돌았다. 남들과 나를 끊임없이 비교하며 스스로를 수렁으로 빠지게 했다. 취직은 신기했다. 이전 문제들과 다르게 취직을 하고 나니 친구들은 안정을 찾았다. 회사 동료들도 비교적 안정적으로 살아가는 듯했다. 나도 매달 들어오는 돈과 소속감에 안정을 느꼈던 것 같다. 잠시동안은 내 인생의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여겼다. 하지만 이내 진짜 나의 문제를 직면하게 되었다.


나는 여전히 남들과 가깝게 지내는 것이 힘들었다. 그것이 나에게 호의적인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티 내고 싶지 않으려 노력했고, 그래서 더 힘들었다.  

상사가 안 좋게 말하면 그 자리에서 무너져 내렸다. 남들은 쉽게 털어버리는 일에도 나는 쉽고 깊게 다쳤다. 어려움이 생기면 세상이 무너지는 느낌을 받았다. 심장이 너무 빨리 뛰어 자리에 앉아있을 수 없었다. 그럴 때는 화장실로 도망쳐 혼자 울었다. 한바탕 울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일했다.

 나를 걱정하는 고마운 동료들에게도 날 서게 굴었다. 어느 동료의 발소리에 심장이 두근거려 피해 다녔다. 그 발소리가 너무 무서웠다. 당연히 회식이나 사람이 많은 자리는 피해 다녔다. 많은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은 더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마음이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는 것 같았다. 삶의 의지가 부표처럼 떠올랐다 가라앉았다 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떠오르지 않는 때가 왔다.




회사가 가기 싫었다. 모든 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이 무의미함을 끝낼 방법은 죽음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죽는 것이 좋을지 고민해 봤다. 그러다 힘이 없어 그 마저 포기했다. 회사를 겨우 다녀오면 집 앞 현관에 쓰러지듯 주저앉아서 울었다. 정확히는 흐르는 눈물이 얼굴을 덮으면 닦아냈다. 어느 날은 배가 아파서 바닥을 기어 침대로 가기도 했다. 침대에 누워있을 땐 늘 눈물이 흘렀다. 베갯잇은 마를 날이 없었다. 5평이 채 안 되는 방은 금방 내 울음으로 가득 찾다. 슬픔과 눈물이 뒤 섞인 그 방이 그래도 나의 안식처였다. 다녀오면 침대에 누워 유튜브를 봤다. 의미 없이 영상들을 넘겼다. 그러다 그마저도 재미없어져 그냥 천장을 보고 누워있었다. 이유 없는 불안이 몰려올 때도 있었다. 온몸에 피가 빨리 돌아 잠에 들 수가 없었다. 어떤 때는 또 계속해서 잠이 왔다. 시도 때도 없이 잠이 와서 회사에서도 집에서도 잠만 자기도 했다. 이 숙제 같은 삶이 빨리 끝나기를 바라며 잠드는 날의 반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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