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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차 Aug 17. 2024

심리 상담을 예약하다

길었던 우울의 시간, 그 치료의 시작

내가 우울증임을 인식하고 치료를 결심한 것은 한 친구의 말 덕분이었다.

그 친구와의 카톡창엔 늘 나의 우울에 대한 이야기가 오고 갔다. 그때는 친구에게 일요일마다 죽고 싶단 말을 했었다. 지금 와 생각해 보면 죽을 용기는 없고 더 살 힘은 없었던 것 같다. 순간순간을 쓴 물약 넘기 듯 꾹 참아내고 있었다. 남은 날들이 숙제 같았는데, 해 야 할 숙제가 너무 많았다. 


그런 날이 있다.

평소였으면 가볍게 넘어갈 말도 마음속 깊이 박히는 날. 내 머릿속에서 어떤 문장이 계속하여 재생되어 무시할 수 도 없는 날.

친구는 "너도 이제 병원에 갈 때가 된 것 같아"라고 말했다. "솔직히 넌 2년 전부터 정신과에 갔어야 해" 덧붙였다. 이 말이 오랫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친구의 말에 반감이 들었다.

"내가 그런 상황인가???"


몇 번의 탈락 끝에 원하던 회사에 입사했고, 능력도 인정받는 중이었다. 어쩌면 내가 꿈꿔왔던 미래에 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병원에 갈 상황은 아니라며 속으로 친구의 말을 부정했다. 내 감정을 모르고 끝까지 회피했다.




집으로 돌아와 유튜브와 포털사이트에서 우울증을 검색했다. 많은 기준과 지표들은 내가 우울증이라 말하고 있었지만, 그것들을 보고도 여전히 나는 우울증이 아니라며 부정했다. 내가 우울증이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 며칠을 꼬박 검색하고 또 읽었다. 당시의 나는 내 병을 온 힘을 다해 모른 척하고 있었다.


친구에게 물어봤다."나 우울증이겠지?"

친구가 대답했다."아마도 “


남들 눈에는 그렇게 보이는구나. 슬펐지만 시간이 지나자 차차 인정하게 되었다. '얘가 나를 불쌍하게 볼까?, 나약하다고

생각하겠지?, 나랑 만나기 싫을까?' 하는 생각들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나쁜 생각은 빠르고 깊게 뿌리를 뻗는다. 더 이상 혼자서 해결할 수 없었다. 어디선가 누군가 짠 하고 나타나 이 문제를 대신 해결 해 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동안 문제가 생기면 혼자서 빠져나와 멀리 도망가려 했다. 혼자 도망치는 것이 너무 익숙했다. 심지어는 그게 좋다고 느껴질 때도 있었다. 하지만 오랜 도망 끝에 어느 순간 너무 멀리 와버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혼자 도망치는 것에 지치고 물렸을 때쯤에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해야 했다.

그래서 우울을 인지하고 도움을 받겠다는 결심을 하는 데까지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병원에 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또 약을 먹으면 부작용이 있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있었다. 약을 오랫동안 먹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다. 비교적 상담에 대한 거부감은 덜했기 때문에, 저 상담을 받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학창 시절 상담클래스나, 교수님 면담과 비슷할 거라 생각했다.


센터를 잘못 골라서 상처받은 후기를 보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좋은 센터를 골라야 한다는 부담이 들었다. 나는 문제의 원인을 나로 돌리는 경향이 있다. 만약, 나와 맞지 않는 상담센터를 고르면 제대로 선택 못한 내 탓을 할 것이 뻔했다. 어디로 가야 할지 쉽게 결정할 수가 없었다. 무서운 선생님 앞에서 내 이야기를 할 자신은 정말 없었기 때문에. 몇 날 며칠을 검색하고, 후기를 읽고, 카페와 블로그들을 들락거리며 심리상담센터를 찾아봤다. 

그러는 와중에도 힘든 시간들이 점차 길어졌다. 밤은 나의 우울을 더 무겁게 했다. 처음에는 일요일밤, 그 후엔 모든 밤이 우울로 가득 찼다. 나쁜 생각이 든 직후에 '나 정말 이상하잖아. 내일은 꼭 센터를 골라서 예약을 잡아야지' 다짐했다. 그러다 생각하기가 싫어져 마냥 잠을 잤다. 주말에는 더 길게 잠을 잤다. 

그렇게 몇 주의 시간과 몇 번의 결심이 지나갔다. 그러다 금방 아침까지 우울이 넘쳤다.



봄이 온 게 참 원망스러웠다. 날씨가 따뜻해질수록 기분은 우울해졌다.

날씨가 너무 좋은 어떤 날, 더 이상 미루면 안 될 것 같은 날이었다. 예약을 잡았다. 수많은 후기를 보았지만 결국은 선생님의 인상을 보고 결정했다. 이때쯤 이런 비약적인 결정을 상당히 많이 했다. 상담을 받으러 가면서도 그냥 상담을 받는 것일 뿐, 내가 우울증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첫 상담을 받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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