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가 되려면 오래 걸릴 것 같아서, 우울증 진단부터 받았습니다.
상담 센터에 다니기 시작했을 때는, 그 속에 있는 내가 너무 불행하게 느껴졌다. 거의 모든 질문에 “모르겠어요”라고 대답했다. 선생님 앞에서 자꾸 바보 같아지는 내가 싫었다. 그리고 억울했다.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남들이 겪지 않는 문제를 왜 내가 겪어야 할까.
아픈 것도 서러운데 다달이 나가는 진료비, 상담비도 만만치 않았다. 기약 없는 비용을 오랫동안 써야 한다는 게 나를 더 우울하게 만들었다. 엄살 부리고 약한 소리를 하는 것 이라며 나 스스로를 다그쳤다. 정신이라는 것이 이렇게 유지비가 많이 들다니, 과연 내가 이 정도 돈을 쓸 가치가 있는 사람일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다. 시간과 돈을 낭비하고 있는 것 같았다.
실제로 우울증은 비슷한 빈도로 걸리는 질환(가장 예를 많이 드는 감기)과 비교했을 때 완치까지 더 많은 비용이 든다. 병원비 자체는 비슷할 수 있으나 내원해야 하는 기간이 훨씬 더 길기 때문이다. 우울증은 그동안 내가 받은 치료와 달랐다. 그동안 큰 수술을 하거나 완치가 없는 병을 앓아본 적은 없다. 제일 심하게 다친 게 골절이었는데, 시간이 흐르기만을 기다리니 뼈가 붙어있었다. 반면 우울증 치료는 관리에 가까웠다. 속성이나 빈도를 봤을 때 무엇인가 단련시킨다는 점에서 PT나 피부관리와 비슷한 것 같다. 그러니까 여느 관리처럼 꾸준한 돈이 든다는 말이다.
나는 셈이 빠르고 돈에 관심이 많다. 누군가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없다"라고 말한다면 "그건 돈이 부족한 거야" 하고 대답하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취직한 첫 달부터 계산기를 두드리며 돈 모을 궁리를 했다. 내 계획에 병원비는 없었다. 치료를 위해 쓰는 돈이 너무 아깝게 느껴졌다.
그러면서도 모은 돈을 보면 허무함이 느껴졌다. '이걸 모아서 어디다 쓰나, 이게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나의 생각에 스스로 악플을 달곤 했다.
“오늘 누구를 만나볼까?”라고 생각함과 동시에 “만날 사람도 없고, 만난 후에 집에 돌아오면 괴로울 텐데 만나서 뭐 해”..
“회사 일과 관련된 공부를 좀 해볼까?”라고 생각하며 “그만둘지도 모르고 바로 업무에 도움 되는 것도 아닌데 해서 뭐 해”.. 이런 식으로 말이다.
내가 나의 가장 큰 안티가 되어가고 있었다.
나는 여드름 피부이다. 취직을 하고 여드름 흉터 치료를 했다. 흉터가 옅어지는 것이 눈으로 보여 만족스러웠다. 돈을 쓴 보람이 있다 느껴졌다. 하지만 우울증 치료에 드는 비용은 왜 이리 아깝게 느껴지는지. 사실 비용은 정신과와 피부과가 비슷하다. 피부과 진료에 금방 만족했던 이유는 피부가 좋아지는 게 눈에 잘 보였기 때문이다. 반면 정신과는 와닿는 변화를 확인하긴 어렵다. 이런 특성 때문에 때로는 치료가 무의미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보이지 않는 것은 간과하기 쉽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의 가치는 비교적 잘 알아본다. 어떤 차가 비싼 차 인지, 얼마나 좋은 집인지, 가방인지 시계인지 등.. 반면, 보이지 않는 것의 가치는 간과하기 쉽다.
유튜브에서 진짜 부자들은 향기에 관심을 가진다는 내용을 봤다. 방마다 향을 다르게 한다고. 더 좋은 향을 구분하려 한다고. '무형의 가치는 유형의 것을 가진 자들만의 영역인가?'하고 생각했다.
실제로 소득이 높은 집단에서 우울증으로 진단받은 사람이 더 많다고 한다. 한 기사에 따르면 서울 10만 명당 우울증 환자는 서초, 강남, 서초에 많다고 한다. 누군가는 부자들이 우울증에 걸리는 것이 의외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진단'을 기준으로 통계를 냈기 때문에 나온 이 같은 결과가 나왔다고 생각한다. 해당 기사에서는 부자들은 적극적으로 병원을 찾고, 접근성이 좋기 때문에 우울증 치료를 받기 때문에 통계적으로 높게 나온 것이라는 설명이 있었다.
우울마저 부자들의 것이라니… 보이지 않는 영역이라서 그럴까?
웃기지만 그 기사를 읽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나의 우울에 관심을 가질 만큼 삶을 꾸리기 위해 노력해 왔다고, 그러니 받아들이고 마음껏 우울해도 된다고. 부자들이 돈 쓰는 곳이라면 분명 가치가 있는 것이니, 여기에 쓰는 돈을 아까워하지 말자고.
영화나 드라마에 멋있게 나오는 주인공들이 상담받는 장면들을 보며, 내가 벌어서 나를 돌보고 있다는 생각을 하려 애썼다. 상담가는 길에 내가 제일 좋아하는 커피 한잔을 샀다. 내가 나의 엄마가 된 것처럼 '다음 상담에도 맛있는 커피를 사줄게. 앞으로 계속 오면 너 좋아하는 거 맘껏 마셔도 돼' 하는 마음으로. 너그럽게 구는 내가 낯설어서 또 울었다. 나아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병원에 가게 되었다. 내가 정신의학과에 갈 줄은 정말이지 상상도 못 했다.
나는 강남에 살고 있지도 않고, 부자도 아니지만 정신과에 다닌다. 정신과에 가게 하는 것이 꼭 돈이나 동네는 아닐 것이다. 내 건강을 살피는 것. 그 작은 마음과 정성으로 나는 병원에 갔다.
병원에서 상담 센터에서 했던 검사와는 다른 새로운 검사들을 했고, 진단과 함께 약을 받아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우울증 환자가 되었다.
나 부자 될 준비 완료되었을 지도 …?
관련 기사 : https://m.mk.co.kr/news/special-edition/60347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