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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ther Apr 25. 2024

진짜 개나리

잘 안다고 단언하지 않기

봄을 대표하는 꽃이라면 진달래와 개나리가 제일 먼저 떠오른다. 수선화, 벚꽃, 산수유 등 화려한 꽃에 비하면 진달래와 개나리는 참으로 소박하다. 개나리는 학교나 아파트 담벼락에 흔하게 심겨 있지만 길게 뻗은 가지에 노란 꽃들을 야무지게 늘어뜨리는 봄이 되어야만 그 존재감이 드러난다. 초등학교 울타리로 심긴 장소적 이점 때문인지 아니면 새 학기가 시작하는 3월에 꽃이 피는 시간적 우연의 일치 때문일까? 개나리는 유치원을 갓 졸업하고 초등학교에 입학한 1학년 아가들을 떠올리게 한다. 작은 키에 발목까지 내려오는 신발주머니를 들고 일찍 끝난 학교 수업을 마치고 정오의 햇살을 받으며 삼삼오오 재잘거리며 하교하는 아가들의 모습이 병아리와 닮았고 개나리와 닮았다. 


개나리는 검은색과 대비색으로 사용되는 진노랑과 달리 살짝 투명함이 묻어나는 노꽃잎을 가져 경쾌하고 명랑하다. 아랫둥이가 갈라지지 않고 통으로 붙어 있는 꽃 모양새도 아이들의 귀여움을 그대로 담고 있는 듯하다. 이렇게 하나하나 되짚어 보면 개나리를 사랑하지 않을 없는데, 개인적으로는 개나리를 때마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으나 꺼림칙한 느낌들곤 했었다. 


해마다 아쉬움을 남기고 지나가는 봄을 올 해도 맞이했다. 변덕스럽긴 해도 따뜻한 날이 잦아드니 고속도로 풀과 나무들도 꿈틀거리며 겨울을 털어내고 있었다. 운전을 하며 지나다 보니 높이 위치한 휴게소와 고속도로 차도 사이 비탈진 면에는 가지가지 다양한 식물들이 있었고, 때마침 무성하게 자란 개나리 군락은 한창 꽃이 만개하여 완연한 봄을 알리고 있었다. 하늘 높이 솟고 아래로 휘어지고 사방으로 규칙 없이 빽빽하게 뒤엉켜 있는 진갈빛 개나리 가지들을 보자마자 메두사 머리가 떠올랐다. 헝클어진 독사들이 제각각으로 움직이는 빈틈없는 메두사의 머리카락을 닮은 개나리라니! 이유 없이 몇십 년 동안 개나리를 꺼려했던 이유를 발견한 순간이었다. 슬프게도 한번 그런 생각이 드니 개나리 군락을 볼 때마다 메두사 머리가 연상되기 시작했다.


사진: Unsplash의Soyoung Han

우리 아파트 울타리에 심긴 개나리는 군락이라기엔 왜소한 편이라 땅에서 올라온 가지를 하나하나 세어볼 수 있을 정도다. 이 개나리를 볼 때는 귀여운 아가들이 생각나는 것을 보아 나는 개나리 군락을 무서워하는 것 같다. 무리 지어 피어있는 개나리 군락이 확실하게 시선을 사로잡기는 하지만 뒤엉킨 군락이 마치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게 뒤엉켜 미궁 속으로 빠져들어 해결되지 않는 문제 상태와 같이 느껴졌다. 수많은 무리에 묻혀 개인이 존중받지 못하고 압사당할 것 같은 상태를 연상시켰다. 출근길 끝없이 늘어선 차들의 일렬로 줄줄이 켜진 빨간 브레이크 등을 볼 때면, 이 많은 사람들이 출근이라는 하나의 목적을 위해 똑같은 행동을 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에 숨을 가쁘게 쉬던 나였기에 가능한 상상일지도 모르겠다.


어떤 연유든 매년 봄을 알리는 개나리의 이미지를 메두사 머리로 남겨두어서는 안 되었다. 이건 분명 개나리에게도 나에게도 좋지 않은 상호작용이다. 나와 개나리에게는 귀여운 아이들 외에 더 강력한 인상이 필요했다. 그리하여 의도치 않게 평생 찾아보지 않을 것 같은 개나리에 대한 정보수집을 시작하게 되었다. 개나리의 학명은 'Forsythia koreana'이고 영어로는 'golden bell tree'라 불린다고 한다. 학명에 koeana가 들어있어 더 살펴보니 한국특산종이다. 개체수로만 셈하여 본다면 한국특산종이라는 것이 심정적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실상 국내에 자생지가 없고, 요즘에는 서양에서 개량되어 들여온 개나리를 조경용으로 많이 심는다고 한다. 알아볼수록 미국개나리, 서양개나리와 우리 개나리를 비교한 정보들이 부정확하고 중구난방이라 과연 내가 아파트, 학교, 공원에서 일상적으로 보아온 개나리가 한국특산종 개나리가 맞는지 의심스러운 상태가 되었다. 


내가 본 개나리가 우리 개나리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에, 찾아볼 필요도 없이 당연히 개나리를 잘 안다고 생각했던 나의 자신감은 쪼그라들고 말았다. 다만, 이번 기회에 개나리를 외목대로 키울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제야 알게 되었지만 마당이 넓은 식당에서 외목대 개나리를 본 적이 있다. 분명 꽃은 개나리인데 한 5cm 정도 지름의 줄기가 위로 곧게 뻗어있고 줄기 윗 쪽에서 뻗어나간 여러 개의 잔가지에 개나리꽃이 만발한 수형이었다. 일행들 사이에서 개나리가 맞다 아니다 설왕설래가 있었는데 분명 꽃은 개나리인데 내가 아는 모습과 외형이 달라지니 그 누구도 확신에 찬 주장을 할 수 없었다. 아무래도 내 취향은 외목대로 키운 개나리인가 보다. 땅을 벗어나 가지 위쪽에서 흐드러지게 핀 노란 꽃들이 아기자기 어여뻐 보이고, 땅 위로 떨어진 꽃들은 하늘에서 떨어진 별똥별 마냥 기분을 좋게 만든다.


비록 자신감은 떨어졌지만 나는 이제 매년 봄 노란 개나리를 볼 때마다 메두사 머리의 굴레에서 벗어나, 한국특산종 개나리인지 서양개나리인지 애정을 가지고 더 자세히 들여다볼 것이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외목대 개나리를 키워보겠다고 새 화분을 사고 옆에서 올라오는 곁가지들을 잘라주며 부산을 떨고 있을 내 모습을 상상하니 절로 즐겁다. 


우리는 잘 안다고 생각했던 사람, 장소, 일에 대해 어쩌면 너무 익숙하기에 놓치고 있는 부분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 미묘한 틈 사이 상호 간의 관계를 흐트러뜨리거나 돈독하게 하는 실마리가 있을지 모른다. 생각보다 우리는 나 자신, 상대, 사물, 사건에 대해 무지할 수 있다. 정성을 들여 들여다 보고, 새로 알게 된 사실은 수용하여 긍정적으로 변환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애정을 가지고 진심으로 받아들일 자세만 있다면 그 어떤 것도 걸림돌이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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