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iden의 [Home] 제작기
음악을 만들고 글을 쓰고, 사람들과 함께하다 보니 이제는 펀딩까지 도전하게 되었다.
인디펜던트 아티스트. 뭔가 모든 걸 주체적으로 해결하는 낭만적인 직업 같지만, 실상은 문자 그대로 모든 일을 나 혼자서 감당해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아무것도 모른다면 정말 막막한 일이 될 수밖에 없다. 나는 그간 지원사업이나 여러 활동을 통해 경험을 쌓으며 몇 개의 앨범을 만들었다. 스스로 유의미한 결과를 만들어냈다고 자부하긴 어렵지만, 아예 시작조차 어려워하는 다른 음악 동료들에게는 나름 좋은 본보기였던 모양이다.
작년, 음악을 제대로 해보고 싶다며 찾아왔던 Heiden이 이번에는 엄청난 양의 스케치를 들고 왔다. 자신의 앨범을 함께 만들어보자고.
인생은 기획이라고 생각하며 사는 나지만, 그가 가져온 스케치의 양은 정말 방대했다. 우리는 하나하나 들어보며 같이 시작해볼 것들, 그리고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에 대해 긴 이야기를 나누었다. 마침 Heiden의 데뷔곡을 함께했던, 사운드 엔지니어로 도와줬던 동료도 일을 쉬고 있던 차였다. 나와 동갑인 그는 실력도 마음가짐도 믿을만한 친구다. 이렇게 셋이라면 무엇이라도 만들 수 있을 것 같은 고양감에 휩싸였다. 각자의 자리에서 좋은 태도와 실력을 갖춘 셋이 모였으니, 우리는 무조건 잘할 수 있으리라.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아뿔싸. 디자인이면 디자인, 글쓰기면 글쓰기, 작곡이면 작곡. 웬만한 건 다 해낼 수 있다고 자만했던 나 자신도, 앨범 단위의 큰 그림이 모이고 쌓여야 하는 프로젝트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시간과 예산, 그리고 돈을 쓰지 않고 해결하려면 반드시 있어야 하는 능력까지. 어디서부터가 문제인지조차 가늠해봐야 할 정도였다.
다행히 서로의 합은 좋았다. 우리는 서로의 역할을 철저히 믿어주었다. 내가 못하는 부분은 다른 동료가 해결해 주는 방식으로. 그런데 문제는 거기서 발생했다. 서로 믿고 맡기다 보니, 자연스럽게 어떤 분야는 전적으로 일임해야 하는 상황이 생긴 것이다. 예술 말고는 아무것도 모르는, 이 순수한 예술가 둘을 데리고 있다 보니 나는 정말로 나머지 '모든 것'을 다 해야 하는 처지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즐겁다. 아직은 즐겁다. 나는 태생이 기획을 하려고 태어난 사람인지, 할 말이 많고 판이 커질수록 힘이 난다. 그렇게 우리의 우당탕탕 앨범 작업이 시작되었다.
스케치를 발전시키고 완성된 곡을 만드는 건 크게 어렵지 않았다. 오히려 기분 좋은 작업의 연속이었다. 셋 다 7-8년을 가까이 봐온 사이라 서로의 호흡을 잘 알기도 했거니와, Heiden이 가진 색깔이 워낙 뚜렷했기에 방향을 잡는 건 수월했다. 무엇보다 다들 음악 하나는 기가 막히게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라, 생각을 소리로 표현하고 만들어나가는 과정은 그 자체로 희열이었다.
문제는 현실이었다. 우리는 인디펜던트 아티스트였고, 이 좋은 작업물을 하드디스크 속에서 오래 썩히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모든 걸 우리 손으로 해내려다 보니 시행착오가 끝도 없었다. 이대로 가다간 우리가 계획했던 시간에는 절대 앨범을 낼 수 없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예술에 푹 빠져 살기에 현생은 바빴고, 마음은 점차 궁핍해지는 시점이었다.
그러다 눈에 띈 건 펀딩이었다. 앨범에 담긴 이야기가 참 좋다고 생각했기에, 사람들도 이 이야기에 함께해주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갖고 동료들에게 텀블벅 이야기를 꺼냈다. 다들 좋다고 했다.
그런데 잠깐. 디자인이나, 글쓰기나... 이걸 할 수 있는 사람이 팀에 나밖에 없잖아?
그렇게 수많은 생각을 안고 텀블벅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이 글은 그 좌충우돌 제작기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