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등에 불이

마음의 준비를 하기도 전에 프로젝트 승인이 떨어져 버렸다.

by Tannamu

"급할수록 돌아가라." 옛말 틀린 거 하나 없다지만, 그건 여유 있는 사람들에게나 통하는 격언이다. 우리에겐 해당 사항이 없었다. 당장의 현실이 급해서 기획하게 된 텀블벅 프로젝트. 그런데 이게 웬걸, 마음의 준비를 하기도 전에 프로젝트 승인이 덜컥 떨어져 버렸다. 이미 앨범 기획이야 탄탄하게 잡아놓은 상태라지만, 막상 '승인'이라는 두 글자를 보고 나니 진짜 발등에 불이 떨어진 기분이었다. 이제는 실전이다.


레퍼런스를 찾기 위해 텀블벅 사이트를 뒤졌다. 먼저 성공시킨 사람들의 프로젝트들을 하나하나 뜯어보았다. 솔직히 '이 기획이 어떻게 성공했지?' 싶은 의아한 프로젝트부터, '알았으면 나라도 샀겠다' 싶은 경외심 드는 프로젝트까지. 세상에는 참 다양한 시도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 사이에서 우리는 어디쯤일까. 이제 막 새로운 이름을 걸고 시작하는 한 아티스트를, 생판 모르는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지갑을 열게 해야 한다. 눈앞에 거대한 벽이 서 있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나는 익명의 이름 뒤에 숨어 활동하지 않는가. 내 얼굴도 내밀지 않는 주제에, 내가 쓰는 글이 과연 이 아티스트에게 힘을 실어줄 수 있을까?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하지만 어쩌겠나.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 음악이 가진 진심을 가장 적확한 언어로 번역해 내는 일뿐이다. 그래서 텀블벅 상세 페이지의 구상을 치열하게 짰다. 단순히 "노래가 좋아요"가 아니라, 사람들이 이 음악과 이 감정에 어떻게 하면 함께 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며 글을 썼다.


그 과정을 거치며 나는 Heiden과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음악적 합을 맞추는 대화를 넘어서야 했다. 이 사람이 평소에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그가 뱉는 말은 어떤지. 그 사소한 것들까지 파악하고 느껴야만 했다. 진짜 글을 쓰기 위해서.


그렇게 적어본 텀블벅 곡소개글 중:


1. Becoming Grown

"Maybe that's how it's supposed to be" (아마도, 원래 그런 거겠지)

어른이 된다는 건 무엇일까, 오래 고민했습니다. 어릴 적 꿈꾸던 거창한 모습은 아니더라도, 우리는 매일 조금씩 작아지는 자신을 마주하며 하루를 살아냅니다.

이 곡은 그런 우리에게 건네는 작은 위로입니다. 세상 속에서 내가 비록 작은 존재일지라도, 무너지지 않고 오늘을 덤덤히 '견뎌내는 것'. 어쩌면 그것이 진짜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 아닐까요?

삶이 버거울 때, '그래, 원래 그런 걸 거야'라고 툭 내뱉으며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이 되길 바랍니다.


2. Home (Title)

"You can call me home."

낡은 가구와 작은 촛불 하나, 그리고 낮은 기타 소리가 들리는 방을 떠올리며 만들었습니다. 우리가 평생 찾아 헤매는 '집'은 단순히 비바람을 피하는 건물이 아니라, 내 마음이 가장 편안하게 쉴 수 있는 순간, 혹은 사람 그 자체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당신이 지친 몸을 이끌고 돌아왔을 때, 언제나 그 자리에서 변함없이 문을 열어주는 존재. 제가 이 노래로, 그리고 저라는 사람으로 당신에게 그런 '따듯한 안식처'가 되어드리고 싶습니다.



결국 예술가란, 하고 싶은 말을 '표현 방식'만 빌려 이야기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함께 밤새 고민하며 쌓아 올린 이 음악적 결과물을, 사람들에게 온전히 전하기 위해 나는 고심해서 단어를 고르고 문장을 다듬는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다. 글을 쓸수록, 더 넓은 구상을 할수록 묘하게 외로워진다. 이 노래를 부르는 Heiden 본인의 홀로서기 과정을 너무 가까이서 지켜보고 있어서일까. 아니면 바닥부터 하나씩 쌓아올리려는, 우리 같은 인디 아티스트들의 숙명 때문일까.


마치 대답 없는 거대한 벽에 대고 소리를 지르는 기분. 그 벽 어딘가에서 어쩌다 들려오는 작은 응답 하나에 기뻐하고, 또 다시 소리쳐야 하는. 그 막막하고도 외로운 외침을 또...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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