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적이 흐른다.
그녀도, 나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있는 그 공간을 긴장감이 가득 매운다.
그녀는 책상 위에 놓인 물건을 보고 있다. 그리고, 나는 그녀의 흔들리는 눈빛과 떨리는 손을 본다.
방 사람에 대한 불평을 한참 쏟아내고 있던 그녀 앞에 갑자기 내가 주사기를 내놓았던 것이다.
하소연하듯 뿜어내던 말을 멈추고, 뚫어져라 주사기만 응시하는 그녀를 보는 내 마음도 덩달아 조이는 듯하다.
한 치 앞 그녀의 행동을 예측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1초
2초
3초....
거친 숨을 몰아쉬기 시작한다. 그리고 주사기만 노려보던 시선을 떨구고 바닥을 보는가 싶은 순간! 낚아채듯이 주사기를 손아귀에 넣어버린다.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그녀의 행동에 당황한 나는 반사적으로 주사기를 잡은 손을 내 두 손으로 붙든다. 그녀는 나에게 주사기를 쉽게 빼앗기지 않는다.
그렇게 잡고 잡힌 손은 서로에게 간절함을 전달한다.
굳이 말이 필요하지 않은 순간이다.
얼마나 그러고 있었을까? 주사기를 잡았던 손에 서서히 힘이 풀린다. 무력해진 주사기는 허무하게 내 손으로 넘어온다. 그녀가 청 놓아 울기 시작한다. 가끔 등을 토닥여줄 뿐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한참을 울도록 내버려 둔다.
지난 상담 회기에서 ‘이제 마약은 쳐다보기도 싫어요. 애초에 남자친구 권유로 어쩔 수 없이 했던 거예요’라고 말하는 그녀와 함께 역할극을 했었다. 나는 그녀에게 집요하게 마약을 권유하는 남자친구가 되었고, 그녀는 어떻게 그 요구를 거절할 것인지 시뮬레이션해 보는 시간이었다. 남자친구인 나의 강요에 두루뭉술한 말들로 거부 의사를 밝히다가 결국 설득당해버리는 그녀에게 나는 남자친구와 헤어져야 한다고 말했었다. 마약을 끊는다는 것은, ‘의지’보다는 ‘뇌질환’의 문제이기 때문에 인맥 정리가 필요함을 설파했던 것인데, 자신이 남자 친구를 설득해 다시는 마약을 하지 않을 것이라며 내 조언을 가볍게 튕겨내 버렸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자신을 속일 수 없게 되었다.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것이 통하지 않게 된 것이다. ‘이제 마약은 보기도 싫어요’라고 말하는 순간에도 사실은 그것을 끊을 생각이 없었다는 것을 감출 수 없게 된 것이다.
한참을 울었음에도, 여전히 눈물이 섞인 목소리로 그녀가 말했다.
“사실은... 얼마 전 식사 메뉴에 프라이드치킨이랑 같이 나온 소금을 보면서도 마약 생각이 너무 간절히 났었어요. 울면서 하는 것이 마약이라더니 내가 평생 그럴 거 같아요. 실제로 마약을 끊는 사람이 있긴 한 거예요?”
마약 중독으로부터 회복되는 사람들은 당연히 존재한다. 엄밀히 말하면, 단약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이 사람들의 사례는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중독관리통합지원센터’ 등의 홈페이지에서도 볼 수가 있다. 이들은 약물중독자 자조모임(NA; Narcotic Anonymous), 중독회복연대 등에 소속되어 자신들의 회복을 지속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는 것은 물론이고, 다른 중독자들을 돕기 위한 많은 활동들을 하고 있다. 심지어, 일정한 교육을 받아 강사로서의 자격을 갖춘 회복자들은 치료자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중독은 질병이지만,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고자 결심하는 것은 자신의 몫이다. 교도소에서는 수감된 마약 중독자들이 이러한 의지를 가지고 출소할 수 있도록 도우려 한다. ‘건강한 삶’을 위한 동기부여를 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외부와 차단된 환경으로 인해 본인 의지와 상관없이 ‘강제 단약’을 실천하고 있는 상태에서의 교육과 상담은 한계를 지닌다.
‘슬기로운 감방생활’이라는 드라마에서 마약 중독으로 구속되었던 ‘해롱이’가 출소와 동시에 다시 마약을 하는 장면을 본 시청자들은 하나같이 ‘안타까움’이라는 감정을 느꼈으리라 짐작한다. 해롱이의 단약 결심이 굳건했던 만큼 애가 타는 마음도 배가 되었지만, 소위 ‘촐소뽕’이라는 것에 바로 무너지는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마약 사용 경험은 ‘뇌’가 기억한다. 마약에 대한 갈망상태는 단순히 버티는 것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삶의 전반을 바꾸고 평생을 싸워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중독자들의 주변 사람들은 물론이고, 사회가 함께 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국가는 ‘마약 범죄 단속’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중독 회복 정책과 지원’에 대하여 고민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내가 서 있는 이 현장에서 이들을 돕기 위해 중독회복연대의 외침을 다시 한번 마음에 각인시키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