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프터눈티세트, 버킹엄궁전, 내셔널갤러리, 빅벤, 템즈강
오늘의 아침 식사 메뉴는 매운 갈비찜이다. 그리고 후식으로는 어제 남은 파리바게트 초콜릿케이크를 먹었는데 아침 풍경만 보면 이곳이 영국인지 한국인지 아무도 모를 지경이다.
오늘은 친구와 함께 영국식 애프터눈티세트를 먹기로 한 날이다. 전에 크림티세트도 맛있게 먹었고 가게도 아기자기하니 예뻐서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는 The English Rose Cafe & Tea Shop에 애프터눈티세트를 먹기 위해 다시 방문했다. 무엇보다 집에서 가까운 곳이기도 하고 말이다.
애프터눈티세트 2인을 주문하니 이렇게 3단으로 구성된 트레이와 두 개의 티팟이 나왔다. 티(tea)는 각자 취향에 맞게 목록 안에서 선택할 수 있으며, 가게 방침에 따르면 리필은 불가능하다. 나중에 차가 너무 진해져 뜨거운 물을 요청했는데 리필은 안 된다고 딱 잘라 거절하더라.
맨 위층에는 스콘 두 개와 클로티드크림, 잼이 놓여있고, 중간층에는 네 종류의 케이크가 각각 두 조각씩 놓여 있었으며, 맨 아래층에는 두 종류의 샌드위치가 역시 또한 두 조각씩 있었다.
친구와 함께 서로 사진도 찍어 주었는데, 참고로 한국식 다도를 생각하고 티팟 리드에 손을 댔다가는 엄청난 뜨거움에 화들짝 놀라게 될 것이니 조심하는 게 좋다. 한국인인 나는 런던 생활 한달차까지는 차를 마실 때마다 항상 같은 실수를 반복했다. 습관이란 것은 참 무서워서 이토록 뜨거운 교육으로도 고치기 쉽지 않다.
스콘은 맛있었고 샌드위치는 무난했으며 케이크는 사실 너무 달았다. 맛있긴 한데 내심 “무슨 설탕을 이렇게 잔뜩 넣었는지… 제빵사가 미각을 잃었나 “라고 생각했다.
잉글리쉬로즈 카페는 Buckingham Palace(버킹엄궁전)과 매우 가까우므로 티타임을 마치고 궁전으로 향했다. 날이 흐리긴 했지만 금색의 Victoria Memorial(빅토리아 기념비)는 그 빛깔을 잃지 않고 잿빛 하늘 아래서도 여전히 눈에 띈다.
비가 와도 그 나름의 운치가 있는 풍경이다. 동행한 친구는 버킹엄 궁전이 다른 유럽 국가들의 궁전에 비해서 너무 네모네모 같다고 했지만 내 눈엔 깔끔하니 예쁘기만 하다. 아무래도 난 영국, 특히 런던을 너무 좋아하는 것 같다.
잔디밭에서 깡총깡총 뛰노는 다람쥐도 보았다. 무언가를 이리저리 굴려가며 열심히 갉아먹는 모습이 정말 정말 귀엽다.
궁전 전경을 배경 삼아 친구와 함께 서로의 사진도 찍어 주었다. 평소에는 거의 혼자 돌아다니니 이런 때 아니면 언제 내 사진을 남겨보겠나 싶어서 부끄러움도 잊고 카메라 앞에 섰다.
그 후 St. James Park(세인트 제임스 파크)를 지나서 Covent Garden(코번트가든)과 Soho(소호) 구역으로 향했다. 각종 공연들이 열리는 West End의 저녁 거리 풍경은 반짝반짝 화려하여 눈이 즐겁다. 뮤지컬에 그다지 흥미 없는 나도 이 거리를 걷고 있으면 괜히 뮤지컬을 보고 싶어진다.
사실 소호에 온 이유는 안경테를 사기 위해서인데, 안경알은 필요 없고 테만 있으면 되어서 그냥 저렴한 Primark(프라이막)에 왔다. 정말 저렴해서 대충 쓰다가 잃어버려도 전혀 아쉽지 않을 것 같다. 그냥 집에서 아침에 부은 눈을 가릴 용도로 쓸 안경이라 대충 이 중에서 제일 크고 투박한 안경을 골랐다.
친구가 내셔널 갤러리에 가고 싶다고 하여 쇼핑을 마치고 함께 내셔널 갤러리에 왔다. 달디 단 빵을 너무 열심히 먹었는지 목이 몹시 말라 갤러리 안에 들어오자마자 물부터 사서는 거의 원샷해 버렸다.
런던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미술관인 National Gallery. 언제 와도 경이로운 작품들에 영감 받고, 아름다운 인테리어로 눈이 즐겁다.
친구가 인상주의 작품을 좋아한다고 하여 그쪽 방부터 먼저 살펴보았다. Claude Monet(클로드 모네)의 작품 세 점이 눈에 띈다. 가장 왼쪽이 <생 라자르 역> (1877)으로, 현장에서 파리의 기차역을 그린 12점의 그림 중 하나라고 안내되어 있다. 가운데 그림은 <르아브르의 박물관> (1873)으로, 안내문을 통해 르아브르가 모네의 고향임을 알 수 있었다. 오른쪽 그림은 <아르장퇴유의 눈 풍경> (1875)이며, 폭설이 내리던 1874~5년 당시 모네의 마을이었던 아르장퇴유의 주변 풍경을 그린 18점의 그림 중 가장 큰 규모의 그림이라고 한다.
Edouard Manet(에두아르 마네)의 유명한 그림들 중 하나인 <카페 콩세르의 한 구석> (1878-80)도 걸려있다. 작품 옆에 달린 안내문에 따르면 이 작품은 원래 파리의 Brasserie de Reichshoffen을 묘사한 그림의 오른쪽 절반이었으며 그림을 완성하기 전에 두 부분으로 잘렸단다. 그림 속 남자가 입고 있는 파란색 옷에서 새 캔버스 조각이 덧붙여진 흔적이 보이고, 마네는 배경을 다시 그리면서 무용수와 음악가들, 지휘자를 추가해 그려 넣었다고 한다.
깨알같이 그려 넣은 사람들 한 명 한 명을 살펴보는 재미가 있는 이 그림은 (안내문에 의하면) 19세기 후반 독일에서 가장 중요한 화가였던 Adolph Menzel(아돌프 멘첼)의 <튈르리 정원의 오후>로, 그가 파리를 방문하였을 때 파리에서 영감을 받아 베를린에서 그린 작품이라고 한다. 멘첼은 세밀한 묘사에 뛰어난 화가로 유명했고, 이 그림 또한 군중의 모습에서 생동감과 정교함을 엿볼 수 있다고 소개되어 있다.
아래 그림은 너무나도 유명한 Pierre-Auguste Renoir(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의 <The Skiff>로, 역시 안내문에 따르면 조정 보트, 돛단배, 증기 기관차 등은 인상주의 화가들이 즐겨 그리던 소재였으며, 이 작품은 보트놀이로 유명했던 Chatou(샤투) 지역에서 그려졌을 것이라고 한다.
Joseph Mallord William Turner (윌리엄 터너)의 작품 앞에서 내 사진도 찍었다.
기묘한 이 그림은 Bronzino(브론치노)의 <비너스와 큐피드의 알레고리>로, 난해한 수수께끼처럼 의도된 그림이라고 한다. 큐피드는 어머니인 비너스에게 키스를 하고 있으며, 장미 꽃잎을 들고 있는 소년은 농담(Jest)을, 다른 인물들은 기만(Fraud)과 질투(Jealousy) 또는 쾌락(Pleasure)을 상징하고 있을 수도 있다고 설명한다. 수염 난 남자는 좌절한 듯 보이며 시간(Time)을 상징한다고 한다. 설명을 읽고 나니 그림이 조금 더 재미있게 보인다.
천재 조각가이자 화가였던 Michelangelo(미켈란젤로)의 미완성작 두 점도 만나볼 수 있다.
내셔널 갤러리를 방문하면 꼭 봐야 하는 작품들 중 하나인 Jan van Eyck(얀 반 에이크)의 <아르놀피니 초상> 앞에 사람들이 장사진을 치고 있었다. 설명에 따르면, 이 초상화는 Bruges에 거주하던 부유한 이탈리아 상인 Giovanni Arnolfini와 그의 아내를 그린 것으로 추정되며, 뒷벽에 있는 거울 속에는 문가에 서 있는 두 사람이 반사되어 있다. 아르놀피니가 손을 들어 올리고 있는 것은 아마도 그들을 맞이하는 동작일 가능성이 있으며, 거울 위 벽에는 "얀 반 에이크가 여기 있었다"라는 서명이 적혀 있다고 한다.
영국의 또 다른 유명한 화가인 John Constable(존 컨스터블)의 공간도 비중 있게 꾸며져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유명한 작품인 <건초 마차>가 걸려있다. 안내문에 의하면 그는 균형 잡힌 구도를 추구했고, 17세기 플랑드르와 네덜란드 화가들이 자연의 있는 그대로의 풍경을 묘사하던 방식을 따랐다고 한다. 차분한 색조의 풍경화에 익숙했던 당시 사람들에겐 컨스터블의 밝은 초록색과 사실적인 자연의 색이 인상적이었을 것이라고 한다. 그는 본래 이 작품의 제목을 <풍경 : 정오>로 지었다고 한다.
발랄하게 뛰어가는 강아지 한 마리가 깨알같이 돋보이는 이 작품은 John Constable의 <Willy Lott의 집>으로, 위 작품 <The Hay Wain>을 제작하기 몇 년 전부터 Willy Lott의 집 근처 개울가를 관찰하며 그린 것들이라고 한다. 그림을 그리던 당시, 근처 마을인 East Bergholt에서는 주민들이 공유지를 개인 사유지로 바꾸려는 울타리 설치에 반대하는 항의가 한창이었다고 하는데 이 그림 속에서는 그러한 불안한 분위기는 전혀 느껴지지 않고 평화로운 모습만을 표현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풍경을 그린 멋지고 인상적인 다른 그림들도 다수 만나볼 수 있었다.
안내문이 따로 없이 계단 위에 걸려 있어 원화인지 복제품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Joachim Beuckelaer(요아힘 베케라르)의 4 원소 중 물, 공기, 불도 만나볼 수 있었다. 그렇다면 나머지 하나인 '땅'은 어디에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꽤 많은 것들을 했던 낮을 뒤로 하고 집에 가는 길, 오늘도 어김없이 시위가 열리고 있다. 아무래도 국회의사당과 트라팔가 광장이 모여있는 구역이어서 그런지 자주 시위가 벌어진다. 우리나라로 치면 광화문 일대 혹은 여의도 국회의사당역 일대 정도로 볼 수 있겠다.
땅콩버터를 바른 빵과 양상추를 몇 접시 해 먹고 헬스장에 왔다. 혹시나 헬스장이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니 오늘은 구석구석 몇 군데의 사진을 찍어 보았다. 헬스장 전체 중 극히 일부일 뿐이지만 대략 이런 분위기임을 알 수 있다.
오늘은 하루종일 밖에서 이것저것 많은 것들을 하며 보냈다. 확실히 누군가와 함께 하면 혼자선 그냥 지나칠 것도 들러보게 되고 먹어보게 되는 것 같다. 물론 혼자 시간을 보내는 것의 장점도 매우 크지만 가끔은 이렇게 누군가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 역시 좋은 경험을 선사해 주는 것 같다. 한국에 있을 때는 마냥 혼자 있는 것이 좋았는데 외딴 타국에서 오래 머무르다 보니 곁에 사람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스레 깨닫게 된다. 이런저런 생각 속에, 알차게 채운 열여섯 번째 하루가 저문다.
런던에서의 열일곱 번째 아침 메뉴는 고추장불고기와 감자채볶음 그리고 시금치 된장국이다. 전에도 언급했지만 영국의 감자는 한국의 감자와는 식감이 조금 다른데, 그래서인지 감자로 만든 요리는 대개 무엇이든 다 맛있다. 한국에 돌아가면 그리울 것들 중 하나에는 분명 감자가 있을 것이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프랑스산 과자들과 함께 식후 커피 시간을 즐겼다. 내가 산 것이 아니라서 (본마망 마들렌을 제외하곤) 정확한 제품명을 잘 모르겠지만 전부 다 맛있었다. 특히 저 동그란 비스킷이 적당한 단맛에 적당한 식감으로 정말 맛있었다. 초콜릿 비스킷은 맛있지만 내 입맛엔 너무 달게 느껴졌다.
오늘은 밖에 비도 오고 몸도 축축 처져 낮 내내 집 안에 머무르며 간만의 여유를 만끽했다. 밖에 열심히 돌아다니느라 못쓰고 밀려버린 런던살이 일지도 쓰고 사진 편집도 하며 말이다. 그러나 집에만 있을 경우 발생하는 치명적인 문제가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끊임없이 먹는다는 것이다. 집에 있으니 틈만 나면 냉장고를 벌컥 열어젖히고 먹을 것을 탐하게 된다.
저녁이 되어 템즈강변 러닝을 하기 위해 나왔다. 오늘은 새까만 밤하늘에 초승달이 참 예쁘게 떴다. 런던의 야경을 벗 삼아 달리는 일은 아직까지도 질릴 기색이 없어 보인다.
강변 보도 한가운데에 누가 공유 자전거 한 대를 뉘어 내팽개쳐 놓았는데 그 모습이 처량하기도 하고 웃기기도 하여 킥킥대며 사진을 찍었다. 외딴곳에 뜬금없이 홀로 누워있는 것이 꼭 내 처지 같기도 해서 이름도 모르는 자전거에게 괜히 동병상련을 느꼈다.
운동을 마치고 돌아와, 집에서 멀지만 규모가 커서 장 보는 재미가 있다는 타 지점 Sainsbury's를 추천받아 장을 보러 다녀왔다. 확실히 집 앞 Sainsbury's보다는 조금 더 종류가 다양하고 선택의 폭이 넓다. 무엇보다 가장 좋았던 점은, 한국에서 비싸게 사 먹던 엔다이브가 (환율을 고려해도) 약간 더 저렴하다는 것, 그리고 글루텐프리 제품이 정말 다양하다는 것이다. 한국에 돌아가면 그리울 영국 것들 중 하나를 또 추가해야겠다. 개개인의 체질이나 신념 또는 식성에 맞게 선택할 수 있는 음식의 선택지 폭이 정말 넓다는 것! 이건 감자보다도 더 그리울 거다.
장을 봐 온 뒤, 구매한 Wensleydale(웬슬리데일)치즈를 곧장 개봉해 맛보았다. 영국인 친구가 영국 대표 치즈 중 하나라며 웬슬리데일 치즈를 추천한 적이 있어서 사 먹어 본 건데 깔끔하고 맛있다.
쿠키와 함께 티타임을 가졌다. 그동안 런던 일지도 쓰고, 공연 예매도 하면서 말이다. 아, 사진 속 쿠키는 얻어먹은 건데 엄청 맛있었다! 포장지 사진은 찍어두질 않았지만 아마도 Choco Leivniz일 것이다.
그리고 하우스메이트들과 함께 도블(Dobble) 게임을 했는데 정말 재밌었다. 둥그런 카드에 다양한 그림들이 그려져 있고 카드들 간에는 두어개의 그림만 일치하는 특징이 있는데, 각자 카드를 나누어 받은 후 자신이 가진 카드와 다른 카드들 간의 일치하는 그림을 먼저 찾아 빠르게 가져가는 방식의 게임이다. 후에 가장 많은 카드를 소유한 사람이 승리하는 게임으로 집중력과 순발력 그리고 '운'을 요구하는 게임이다. 이 게임은 나중에 한국에 돌아가면 교실 게임으로도 활용하기에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영어 어휘력도 늘리고 즐겁게 게임도 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 아니겠는가.
초승달이 예쁘게 뜬, 평화롭기 그지없는 열일곱째 런던의 밤도 그렇게 저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