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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부슬부슬 비가 내리는 런던의 하루

feat. 내셔널갤러리

by Daria Mar 17. 2025



아침식사로 오랜만에 비빔밥을 먹었다. 아침부터 비가 내리는 모습을 보니 집에서 푹 쉬고 싶었지만 그렇다고 또 하루 종일 집에만 있으면 괜히 아까우니 조금만 뭉그적거리다가 나가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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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에는 비가 자주 내리지만 그 양이 적어 그다지 불편하지는 않다. 한국의 경우 한 번 비가 오면 깊은 웅덩이가 질 정도로 쏟아붓듯이 내리다 보니 장화나 우산 없이는 일상생활이 힘든데 영국에선 그냥저냥 맞고 다닐 만하다. 게다가 적당히 비 맞고 돌아다니다 보면 어느새 비가 그치고 해가 나기 일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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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오늘은 나름대로 런던치곤 비가 꽤 많이 내리는 날이라 평소 같았으면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우산을 쓰고 나왔다. 추적추적 비 내리는 St. James Park(세인트제임스파크)를 지나 터벅터벅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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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리는 비에도 아랑곳 않고 말을 탄 채 군인 혹은 경찰(?)들이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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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앞에 어떤 일가족이 걸어가고 있었는데 조잘조잘 떠드는 아이들과 (아마도)엄마의 모습이 너무 귀엽고 몽글몽글해서 약간 부러웠다. 나도 나이를 먹고 나니 가정을 꾸리고 싶은 마음이 커져만 간다. 전에는 출산이라고 하면 마냥 무섭고 피하고 싶은 일로만 여겨졌는데 지금은 그에 대한 공포감보다는 자녀와 함께 단란한 가정을 이루고 싶다는 마음이 더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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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소호에 거의 이르렀다. 집에서 나와 공원만 지나면 금방 소호에 닿으니 새삼 정말 좋은 위치에 머무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감사함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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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스콘 도장 깨기 중인 나. 오늘은 소호의 Living Room이라는 카페에 왔다. 낡고 오래된 인테리어가 아늑한 느낌을 주는 소박한 분위기의 카페다. 직원들도 모두 친절하고 분위기가 포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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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할머니 집을 연상시키는 내부가 꽤 맘에 든다. 소품의 경우에도 대개 콘셉트의 통일성 없이 뜬금없는 것들이 카페 곳곳에 자리하고 있고 가구들 모두 오래된 느낌이 들어 정말로 누군가의 living room에 들어온 것 같은 기분이 들도록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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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프레소와 스콘을 주문했다. 스콘 하나를 주문하면 스콘 두 덩이가 클로티드크림, 쨈과 함께 제공된다. 특별한 맛은 없는 스콘이지만 따뜻하게 데워서 주니 좋았다. 난 무엇이든 따뜻한 게 좋다. 물론 커피도 대개 따뜻한 커피만 마신다.(TMI)

커피도, 스콘도 모두 특별하지 않은 맛을 지녔지만, 카페 밖엔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카페 안은 아늑하니 이 시공간이 주는 효과 덕분에 괜히 더 맛있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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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콘 안에 건포도가 많이 들어있다. 혹시 건포도를 안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스콘 말고 다른 걸 주문하는 것이 좋겠다.



보슬보슬 아직도 내리는 비를 맞으며 내셔널갤러리로 향한다. 내가 너무나도 좋아하는 내셔널갤러리를 제 집 드나들 듯 틈만 나면 방문할 수 있다는 것이 런던살이의 큰 장점이다. 가도 가도 질리기는커녕 갈 때마다 새로운 내셔널갤러리. 미술관 앞에는 트라팔가 광장이 있고 뒤로는 번화가 골목이 펼쳐진다는 점도 참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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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해바라기야. 오늘도 반갑다.


빈센트 반 고흐의 해바라기빈센트 반 고흐의 해바라기



오늘은 Joaquin Sorolla(호아킨 소로야)의 <술고래>라는 작품이 왜인지 시선을 강렬하게 사로잡는다. 술에 취해 웃고 있지만 요상하게 슬퍼 보인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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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은 야수파의 대표 작가 중 한 명인 Henri Matisse(앙리 마티스)의 <그레타 몰의 초상>. Greta Moll은 조각가이자 화가였고 마티스의 제자이기도 했단다. 에메랄드빛 색채와 대담한 붓터치가 Moll의 당당한 포즈와 잘 어우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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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nri Rousseau(앙리 루소)의, <Surprised!>라는 제목이 재미있는 이 작품은 이름 그대로 호랑이가 놀라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바람의 느낌을 전할 수 있도록 나무들을 대각선 방향으로 그려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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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즈로든 무엇이든 한 번쯤 봤을 법한 Vilhelm Hammershoi의 작품. 이 그림은 코펜하겐에 있는 작가의 집 내부를 묘사하고 있다. 그에게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는 이 집에서 그는 60점 이상의 실내 장면을 그렸다고 한다. 절제된 색조와 단순한 구성이 돋보이는 화풍은 17세기 네덜란드 화가 Johannes Vermeer(요하네스 베르메르)의 영향을 받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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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ul Cezanne(폴 세잔)의 유명한 작품들 중 하나인 <목욕하는 사람들>.  삼각형을 이루는 풍경과 인물의 조화, 그리고 파란색의 고요한 분위기가 두드러지는 이 그림은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암시하고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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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ul Cezzane(폴 세잔)의 또 다른 작품 <물병이 있는 정물화>. 이 작품은 미완성 작품으로, 세잔만의 독특한 화풍을 잘 보여주는 정물화 시리즈 중 하나다. 안내문에 의하면 그림 속 긴 파란색 물병은 화가가 가장 좋아하던 오브젝트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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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선 작품보다 약 1~2년 뒤에 그려진 이 작품 역시 세잔의 화풍을 잘 보여주는 정물화로, 그의 후기 인상주의적 접근 방식을 담고 있다. 작품 속에서 과일이 탁자 가장자리에 떠 있는 듯한 왜곡 효과를 찾아볼 수 있는데, 이는 세잔이 작품을 여러 관점에서 관찰하며 그렸음을 시사함과 동시에 그만의 독특한 시각적 접근 방식을 반영하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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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Pablo Picasso(파블로 피카소)의 <모성애>라는 작품으로, 그의 우울했던 청색시대를 대표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시기의 피카소는 친구의 죽음으로 인한 영향으로 청록색 계열의 다양한 색조를 사용하여 우울한 주제를 다뤘다고 한다. 이 작품 속의 어머니는 아들을 부드럽게 껴안으며 따뜻한 모성애를 드러내고 있다. 보고 있으니 왜인지 위로를 받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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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 한편에 'PARMIGIANINO'라는 이름의 기획 공간이 마련되어 있고, 아래와 같이 큰 규모의 홀리한 그림이 전시되어 있었다. 안내문에 의하면 Parmigianino는 Girolamo Francesco Maria Mazzola라는 당대 유명한 이탈리아 예술가의 별칭(활동명)이고, 그가 23세였던 1526년에 로마에서의 활동기간 동안 <성 제롬의 환시>를 제작한 것이 바로 이그림이라고 한다. 이 작품은 그의 후원자였던 Maria Bufalini 여사가 남편의 묘소를 장식하기 위해 요청한 제단화로, San Salvatore 교회에 설치될 예정이었고 이는 그의 경력에서 중요한 의뢰 중 하나였다고 한다. 작품에서 찾아볼 수 있는 비틀린 형태와 과장된 비례, 혼란스러운 원근법, 소용돌이치는 붓질 등은 전통적 규범에서 탈피한 그만의 독특한 화풍을 나타내고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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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예쁜 얼굴을 한 소년을 그린 이 작품은 Sir Thomas Lawrence(토마스 로렌스 경)의 <찰스 윌리엄 램턴의 초상(붉은 소년)>으로, 그림 속 소년의 아버지에 의해 의뢰되어 그려졌고 1825년 왕립 아카데미에 전시되었다고 한다. 또한, 소년의 의상이 원래 노란색으로 그려졌었다는 이야기 덕분에 이 작품은 사람들로부터 더 주목받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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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의 구도가 인상적인 이 그림은 Lawrence Alma-Tadema(로렌스 알마-타데마)의 <알현 후>라는 작품으로, 고대 로마를 배경으로 하여 초대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의 사위이자 측근인 마르크스 빕사니우스 아그리파가 계단을 오르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그림 속 아우구스투스의 대리석 조각상은 권력과 권위를 상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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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dy Jane Grey(제인 그레이)의 처형 장면을 그린 이 작품은 프랑스 화가 Paul Delaroche(폴 들라로슈)의 것으로, 그는 영국 왕실의 파멸이나 죽음의 순간들을 그리는 것으로 유명했다고 한다. 그림 속의 제인 그레이는 1553년 단 9일 동안 영국 여왕으로 재임하였으나 가톨릭 여왕 메리 1세의 지지자들에 의해 폐위되어 Tower of London(런던타워)에서 참수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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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을 대표하는 화가 중 한 명인 Francisco de Goya(프란시스코 데 고야)의 이 작품은 고야의 아버지와 같이 금박공이었던 <Don Andres del Peral>이라는 인물을 그렸으며, Peral(페랄)은 마드리드 왕실에 고용되어 일했고, 고야와 친분이 있었을 뿐 아니라 고야의 그림들을 소장하기도 했단다. 페랄의 왼쪽 얼굴이 처진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중풍과 같은 질병의 결과일 수 있다고 한다. 또한, 이 작품은 1798년 마드리드 왕립 아카데미 전시회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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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영국인들이 사랑하는 화가 Joseph Mallord William Turner(윌리엄 터너)의 <안개를 뚫고 떠오르는 태양>이다. 그림 전경의 분주한 어부들의 모습과 그 너머 고요한 바다가 대조적으로 묘사되고 있다. 터너의 유언에 따라, 이 작품과 그의 또 다른 작품 <카르타고를 건설하는 디도>는 그가 매우 존경했던 화가 Claude(클로드 로랭)의 작품들과 함께 전시되고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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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갓길에 식료품을 사고자 테스코에 들렀다. 다양한 디저트 제품들이 나를 유혹했지만 잘 참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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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돌아와 크림 토르텔리니 파스타 요리를 만들어 먹었다. Sainsbury's에서 샀던 글루텐프리 토르텔리니로 만들었는데 맛이 영 별로라 또 구매하는 일은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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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을 먹은 뒤 여느 때처럼 gym에 운동을 다녀와 따뜻한 밀크티를 마시고 하루를 정리하였다. 생각보다 괜찮은 카페를 알게 됐고, 좋아하는 미술관에서 시간을 보내어 행복했던 하루. 비가 오기는 했지만 그 덕분에 조금 더 고즈넉한 분위기의 런던을 즐길 수 있었던 하루. 잔잔한 행복이 촉촉이 젖어드는 가운데 런던에서의 또 하루가 저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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