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ulin Rouge
많은 사람들이 '런던' 하면 뮤지컬을 떠올릴 정도로 런던 여행 시 뮤지컬 관람은 빼놓을 수 없는 코스 중 하나인데 정작 나는 뮤지컬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 런던살이 3주가 지나도록 한 번도 보지 않았으나 갑자기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뮤지컬 한 편을 덜컥 예매해 버렸으니 그것은 바로 <Moulin Rouge>였다.
Moulin Rouge(물랭 루주)는 19세기 파리의 카바레 '물랭루즈'를 배경으로 한 남녀의 사랑 이야기를 그린 작품으로, 카바레의 공연 무대를 뮤지컬에 녹여내어 화려하고 강렬한 것이 특징이며 매력이라고 할 수 있겠다(물론 그 매력이 나에게는 안 통하는 매력이었지만 말이다).
남자 주인공 Christian은 이상에 젖어 사는(좋게 말하면 순수하고 나쁘게 말하면 머릿속이 꽃밭인...) 무명 작곡가이며, 여자 주인공 Satine은 물랭루주의 간판스타로 활약하는 미모의 가수이자 댄서(극의 전개상 자세하게 다루진 않았지만 왠지 매춘도 겸하는 듯)이다. 볼 꼴 못 볼 꼴 다 보고 살아온 Satine은 지극히 현실적인 인물이지만 그와 반대의 성향을 가진 꿈돌이(?) Christian의 지칠 줄 모르는 열렬한 구애에 결국 둘은 연인의 관계로 발전하게 된다. 그러나 극장의 재정 이슈와 함께 등장한 인물, 후원자 역할의 공작이 둘 사이에 개입하면서 갈등이 빚어진다.
줄거리는 위와 같고, 언급했다시피 뮤지컬 <물랭루즈>는 강렬하고 화려한 퍼포먼스와 노래들이 특징인 작품이며 사실상 깊이 있는 내용을 다루지는 않는다. 나의 경우 뮤지컬보다는 오페라를, 오페라 중에서도 부파보다는 세리아를 조금 더 선호하는 편이다 보니 <물랭루주>와 같은 유형의 쇼적인 뮤지컬은 취향에 맞지 않았다. <물랭루주>는 그들만의 독창적인 넘버가 있다기보다는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대중가요를 편곡하여 뮤지컬 넘버로 사용하였는데 그러한 면에서 상대적으로 다른 작품들에 비해 개성 없게 느껴졌고, 두 시간 동안 온갖 가요들이 버무려지니 그 점 또한 내게는 산만하게 느껴졌다. 물론, 반대로 말하면 누구나 부담 없이 흥겹게 즐길 수 있는 뮤지컬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취향에 부합하지는 않았을지언정 출연진들의 실력은 매우 출중해서 전반적으로는 만족스러웠다. 특히 Satine역할을 맡은 배우의 음색과 가창력 모두 출중하여 그야말로 귀호강이 따로 없었고 연기까지 훌륭하여 정말 인상 깊었다. Christian 역할을 맡은 배우의 경우 가창력은 살짝 아쉬웠으나 매우 잘생겨서 억지스러운 이야기 전개마저도 납득하게 되었다. (그래그래.. 저렇게 잘생긴 남성이 계속 사랑한다는데 넘어갈 만 해... 끄덕끄덕) 다른 출연진들의 실력도 모두 좋아서 <물랭루주>의 매력을 완벽하게 잘 살렸다.
즐겁게 어깨를 들썩이며 관람할 수 있는 화려한 뮤지컬을 선호하는 사람에게 <물랭루주>는 아주 좋은 선택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조금 더 깊이 있는 서사를 선호하는 사람에겐 한번 더 고민해 보고 선택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