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공연에 이어 London Barbican Centre에서 관람하는 두 번째 London Symphony Orchestra 공연이다. 오늘은 Sir Antonio Pappano의 지휘로 바이올리니스트 Carolin Widmann과 함께 하는 연주이다. 협연자의 경우 원래 Janine Jansen으로 예정되어 있었으나 공연 하루 전 연주자의 건강상의 이유로 Carolin Widmann으로 교체된다는 안내를 받았다. Janine Jansen의 연주를 듣고 싶었던 터라 아쉽기는 했지만 그래도 프로그램이 좋아서 취소하지 않고 그대로 참석했는데 Carolin Widmann의 연주가 훌륭하여 결과적으로 매우 좋은 선택이었다.
이번 공연의 프로그램은 비교적 낯선 곡들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George Walker의 Sinfonia No.5 'Visions', Leonard Bernstein의 Serenade, 그리고 William Walton의 Symphony No.1이다. 세 곡 모두 평소에 찾아 듣지 않은 곡이라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참석했는데 지휘자, 오케스트라, 솔리스트 세 팀의 음악 합이 좋아서 걱정이 무색해진 호연이었다.
이 날은 낮에 이미 뮤지컬을 한 편 보고 찬 바람 맞으며 부랴부랴 바비칸센터로 뛰어온 터라 1부의 첫 곡(조지워커의 신포니아 5번) 때는 피곤함을 이기지 못하고 거의 정신없는 채로 연주를 흘려보냈다. 연주가 제대로 기억나지 않아 감히 쓸 말이 없으니 첫 곡에 대한 이야기는 지나치도록 하겠다.
이어서 바이올리니스트 Carolin Widmann과 함께 번스타인의 세레나데 연주가 시작되었다. 곡 명은 세레나데이지만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달콤한 세레나데풍의 곡은 아니고, 다섯 악장에 걸쳐 사랑에 대한 여러 관점과 감정을 음악으로 풀어낸 곡이다. 따라서 때로는 깊은 심오함이 느껴지기도 하며 격정적인 구간이 얽혀 들기도 하고 전체적으로 서사가 선명하게 그려지는 곡이라 듣는 내내 마치 발레 곡을 듣는 것과 같은 기분이 들었다. 또한 곡에서 쇼스타코비치와 스트라빈스키가 자주 느껴지곤 했는데, 두 작곡가를 좋아하는 나로선 취향에 잘 맞았다. 파파노가 지휘하는 런던심포니 오케스트라의 깔끔한 연주도 인상적이었지만 무엇보다 Carolin Widmann의 연주가 기대한 것보다 훨씬 강렬하며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녀의 연주는 어찌나 섬세하고 또렷한지 음악을 통해 관객의 머릿속에 채도 높은 선명한 이미지가 그려질 수 있도록 하였고, 소리의 힘 또한 좋아서 오케스트라에게 조금도 묻히지 않고 작곡가가 표현하고자 했던 이야기를 한마디 한마디 쏙쏙 끄집어내어 관객에게 탁탁 전달해 주었다. 1부가 끝난 후 인터미션 때 내 옆에 앉아 계신 분에게 바이올리니스트 연주 정말 좋지 않았느냐고 넌지시 물었더니 그분도 정말 인상 깊었다고 이야기하셨다. 그분 또한 나처럼 Janine Jansen의 연주를 기대하고 있었고 갑자기 연주자가 바뀌게 되어 걱정과 기대를 모두 안고 왔는데 Widmann의 연주가 너무나도 좋아서 몹시 만족스러워하는 중이었다. 예상치 못한 변수를 통해 오히려 또 예상치 못한 즐거움을 발견하였으니 이것이 인생의 묘미가 아닌가 싶다.
2부에서 연주된 윌리엄 월튼의 교향곡 1번은 제2차 세계대전의 분위기 속에서 만들어진 곡답게 강렬한 리듬과 고조되는 긴장감, 단조풍의 상실감이 어우러져 1부와 비슷한 듯 다르게, 또 다른 서사를 그려내었다. 1~3악장 내에서는 강렬한 리듬 속에서도 계속해서 잔잔한 우울감이 함께했는데 4악장에 이르러서는 우울감의 완전한 해소와 희망찬 에너지가 느껴져서 좋았다. 이번 공연을 통해 처음 듣는 곡이었는데 생각보다 너무 좋았고, 월튼의 음악적 색깔을 잘 반영한 첫 번째 교향곡이라는 점이 뚜렷하게 다가오는 곡이었다.
피곤해서 온전히 집중하여 감상하지 못한 것이 너무나도 아쉬웠던, 좋은 프로그램으로 이뤄진 호연이었다. 그야말로 런던에 있을 때라야 들을 수 있는 프로그램인 것 같아 내게는 더욱 의미 있는 공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