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여행기_내셔널갤러리
그토록 손꼽아 기대했던 ‘내셔널 갤러리’에 들어오다니 무척 설렜다. 피로에 절여진 나의 몸 상태는 좀비나 다름없었지만 이 멋진 예술품들의 아름다움을 각성제 삼아 잠시나마 각성 상태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폐장 시간까지는 약 세 시간 정도 남았으니 부지런히 감상 여정길을 걸어야 했다. 물론 나중에서야 세 시간 안에 이 갤러리를 모두 도는 것은 터무니없이 불가능한 아이디어였음을 깨닫게 됐지만….
전시장에 들어서고 얼마 지나지 않아, 윌리엄 터너의 작품이 눈길을 단번에 사로잡고 뒤이어 멋진 궁륭이 눈길을 단단히 꽉 붙들어 매는 공간 안에 놓이게 되었다. <눈보라 속의 증기선>은 아니었지만 예고 없이 터너의 그림을 맞닥뜨리게 된 것만으로도 깜짝 선물을 받은 것처럼 기쁘고 반가웠다. 게다가 그 깜짝 선물을 받은 장소 또한 화려하고 멋졌으니 그 순간은 정말이지 눈이 부실 만큼 황홀하게 빛나는 모습으로 기억에 남았다. 전시실 내부의 붉은 벽을 타고 선 검은 대리석 기둥들은 브론즈 흉상 및 도금 장식과 조각들로 번쩍번쩍 빛나는 궁륭을 받치고 있었다. 물론 그 아래에 훌륭한 회화 작품들이 붉은 벽을 찬란히 수놓고 있었음은 말할 것도 없고 말이다. 뿐만 아니라 정면으로 보이는 저 멀리에는 조지 스텁스의 거대한 말 그림 <휘슬재킷>이 걸려있었다. 어느 방향으로 눈을 두어도 화려하고 멋진 모습을 볼 수 있는 이 공간 안에서 내 사진 한 장쯤은 꼭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퍼뜩 들어 때마침 내 옆에 앉아 쉬고 있던 관람객에게 사진 촬영을 부탁하였다. 그녀에게 내가 원하는 사진 촬영의 구도를 상세히 설명해 주었고 고맙게도 그녀는 만족스러운 사진을 찍어주었다. 그녀는 그 구도가 맘에 들었는지 이후 그녀의 일행과 함께 나와 똑같은 자리에서 똑같은 포즈로 사진을 찍었다.
이어 카미유 피사로, 폴 세잔, 클로드 모네, 존 컨스터블, 귀스타브 쿠르베 등 반가운 화가들의 그림을 거쳐, 뜻하지 않은 곳에서 갑자기 마주한 짝사랑 상대처럼, 반 고흐의 그림 몇 점이 내 눈앞에 나타났다. 그곳에는 고흐의 <반 고흐의 의자>, <사이프러스 나무가 있는 길>을 비롯하여 <해바라기>가 있었는데, 나는 오래전부터 집안에 <해바라기>를 비롯한 고흐의 여러 복제화들을 걸어두고 있을 정도로 고흐의 그림을 매우 좋아하기에 원화로 마주한 그 작품이 내게 충격적일 만큼 큰 감동을 주었음은 자명한 일이었다. 캔버스 위에 물감으로 생명을 불어넣고자 했던 순간의 그의 감정이 그 붓질의 흔적을 통해, 덧발라진 물감의 굴곡과 빛깔을 통해 내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좋아하는 작품의 원본을 실제로 마주한 것은 물론이고 좋아하는 화가의 감정이 솔직하게 묻어난, 마치 글자 대신 그림으로 써 내려간 그의 일기와도 같다고 할 수 있는 작품을 마주한 그 순간의 감동은 앞으로도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이다.
고흐와의 만남으로 인한 떨림이 채 가시지 않은 때에 조르주 쇠라의 <Bathers at Asnières>가 커다란 모습으로 나타났다. 조르주 쇠라는 나에게 개인적으로 특별하다고 할 수 있는 화가인데, 내가 어린 시절 난생처음으로 모작을 해 본 그림이 그의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내가 모작한 작품은 쇠라의 <그랑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로, 그 작품은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에서 소장하고 있어 이 날 내셔널 갤러리에서는 <그랑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를 만나지 못했다. 하지만 내게 특별한 의미를 지닌 화가의 작품들을 만난 것만으로도 설레고 즐거운 일이었다.
가슴이 설렘의 여파로 한껏 일렁이고 있을 때 오귀스트 르누아르의 작품들이 모습을 드러내며 또 한 번 가슴을 쿵 두드렸다. 지금은 예전만 못 하지만 한 때 르누아르의 그림을 무척이나 좋아했던 사람으로서, 마치 열렬히 사랑했던 옛사랑을 만난 것과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언제 보아도 참 사랑스러운 그의 그림은 보는 나의 마음을 달콤한 꿈결에 젖어들듯 부드럽고 예쁘게 만들어준다. 이러한 그의 그림들을 어떻게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
봄바람에 실려온 봄내음에 정신 못 차리고 나풀나풀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왈츠 스텝을 밟듯 들뜬 발걸음으로 작품들을 감상하다가 이내 앙리 루소의 작품 두 점을 마주하고는 자못 진지해졌다. 그의 그림을 가만히 바라보며, 전문 교육의 도움 없이도 그만의 독창적이고도 매력적인 화풍을 캔버스 위에 실현해 내고자 고군분투했던 앙리 루소처럼 나 역시 나 자신을 믿으며 성실하게 정진해야겠다는 다짐을 해 본다.
긍정적인 자극을 한가득 받고 이어 카라바조, 귀도 레니, 루카 조르다노, 카라치 등의 그림이 있는 17세기 회화 전시실에 들어왔다. 귀도 레니의 <수잔나와 노인들>을 들여다보고 있던 내 모습이 흥미로웠는지 한 남자가 내게 다가와 불쑥 말을 걸었다.
(남자) “그거 아세요? 이 아래의 그림과 위의 그림의 화가가 다르지만 같은 주제를 두고 그렸다는 사실을요.”
(나) “어머! 그렇네요. 흥미롭군요.”
그곳에는 <수잔나와 노인들>이라는 주제를 두고 그린 루도비코 카라치와 귀도 레니의 그림이 위아래로 나란히 놓여 있었다. 그는 이 주제가 성경에 등장하는 내용이며, 이 전시실에는 성경 말씀을 주제로 한 작품들이 매우 많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그는 근처의 다른 작품으로 나를 데려가 루카 조르다노의 <피네아스와 그의 추종자들을 돌로 만드는 페르세우스>를 보여주었다.
(나) “어! 저 이 장면 알아요. 메두사와 페르세우스잖아요. 그리스로마신화에서 읽었어요.”
(남자) “맞아요. 이 시기에 화가들은 성경이나 신화 속 내용을 주제로 한 그림들을 많이 그렸어요. 교화의 목적으로 그린 그림들이 많았고요. 그림의 내용을 통해 그들이 교회나 왕실로부터 그림 의뢰를 받았을 거라고 추측해 볼 수 있죠.”
명찰이나 마이크도 보이지 않고 깃을 세운 코트에 딱딱한 구두까지 신은 옷차림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도슨트는 아닌 것 같은데 처음 보는 사람에게 미술 작품에 대해서 스스럼없이 이야기를 꺼내는 그의 모습이 흥미로웠다. 이 사람의 정체는 무엇일까 내심 궁금했지만 초면에 신상에 대해 묻는 것이 혹여 실례가 될까 싶어 끝내 묻지는 않았다.
(남자) “여행 중이신가요? 어디서 오셨어요?”
(나) “어디서 왔을 것 같나요? 한 번 맞혀 보시겠어요?”
(남자) “한국사람인 것 같군요.”
(나) “헉! 어떻게 아셨죠?”
(남자) “한국사람 같아 보여요. 저도 몇 년 전에 한국에 가본 적 있는데 정말 좋았어요.”
…
(나) “선생님은 어디에서 오셨나요?”
(남자) “저요? 저는 런던 사람인데요.” (그는 이 질문에 약간 자존심 상한 듯 보였다. '누가 봐도 난 런던 토박이 아냐?'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 보였다.)
(나) “아. 혹시나 선생님께서도 저처럼 여행 중이신가 했어요. 와! 한국에 대해서 잘 알고 계시는 분을 이곳에서 만나게 되니 반갑네요."
간단한 이야기를 조금 더 주고받은 뒤 그는 내게 대영박물관과 테이트 브리튼에도 꼭 방문하라는 말을 거듭 강조하곤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정말이지 런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모두들 친절하고 젠틀하며 쾌활하다. 참으로 매력적인 도시다.
*안내 책자나 도슨트 없이 나 홀로 1층 로비 중앙에 놓인 전시실부터 시작하여 미술 작품을 감상하였다. 감상하다가 보니 깨닫게 된 것인데 각각의 전시실마다 번호가 붙어 있었고, 아마 시대의 흐름 순서에 따라 번호를 부여한 것 같았다. 나는 그런 줄도 모르고 회화 역사의 중간 지점(아마도 로코코)부터 시작하여 뒤죽박죽의 순서로 감상한 것이었다.
(미술사의 흐름 순서대로 작품을 감상하고 싶다면 꼭 안내도를 확인하여 1번 전시실부터 찾아가 번호순으로 감상을 시작하면 된다.)
*내셔널 갤러리 이야기는 다음 화에 더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