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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ria Jan 04. 2024

[6] 노을 아래 템즈강 위를 가로질러

런던여행기



웨스트민스터 수도원 밖으로 나오니 다시금 빅 벤이 나의 앞에 우뚝 서 있다. 우리가 서로 구면이어서일까, 아니면 내가 영국의 영혼의 집에 들렀다가 갓 나왔기 때문일까, 아까보다 빅 벤이 조금 더 친근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아까보다 조금 더 낮게 내려온 해의, 추수기 낟알과도 같은 누런 빛깔 때문인지 이 일대가 모두 정겹고 심지어는 목가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하였다.


겨우내 런던은 해가 빨리 저문다. 나는 낮과 밤의 서로 다른 매력을 지닌 런던아이를 보고자, 더 어두워지기 전에 부지런히 템즈강 위를 건넜다. 템즈강을 가로지르는 웨스트민스터 다리 위에 오르니 '보우디시아와 그녀의 딸들(Boadicea and Her Daughters)' 동상이 런던아이를 등지고 힘차게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물론 동상이므로 진짜 움직이지는 않는다). 그 뒤로 유럽식의 건물들이 강변을 따라 오밀조밀 서 있었고, 반대편에는 금빛 노을 아래 강이 펼쳐졌다. 템즈강의 물은 구정물이라고들 하지만 노을빛을 받은 그 강물은 잠시나마 오명을 벗어던지고 푸르른 감색으로 빛나며 여행자의 감수성을 한껏 자극하였다. 내 눈에만 담기엔 아까울 만큼 퍽 예쁜 그 모습을 카메라 안에도 담았다.


웨스트민스터 다리 위는 템즈강변을 배경 삼아 사진을 찍는 관광객들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화창한 날씨 덕에 아마 오늘은 이곳에서의 멋진 사진을 건질 수 있는 최고의 날이리라. 일행끼리 서로 사이좋게 사진을 찍어주는 관광객들을 보며 나 역시 사진을 찍고 싶지만 일행이 없어 아쉬워하던 찰나, 한 남자가 그런 나의 마음을 눈치챘는지 내게 쭈뼛쭈뼛 다가와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하였다. 유럽 여행 중에는 언제나 소매치기를 조심해야 하기에 나는 약 3초 정도의 고민 후, 선한 인상의 그에게 고맙다는 말과 함께 내 카메라를 건넸다. 그는 바닥에 쪼그려 앉아가며 열심히 나의 사진을 찍어줬고 다행히 그 결과물도 꽤 맘에 들었다. 나도 그에게 사진을 찍어주겠다 하니 그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Thank you”를 외쳤다. 미국식 억양을 구사하는 그는 아마도 나처럼 나홀로 여행객인 듯 보였다. 서로의 사진을 찍어준 후 작별인사를 하는데 그가 왠지 하고 싶은 말이 더 있는 것 같은 표정을 얼굴에 띄웠다. 하지만 나는 계획해 둔 오후 일정이 빠듯했고 첫날부터 계획에 변수를 만들고 싶지는 않아서 그의 표정을 못 본 척하고 뒤돌아 빠르게 자리를 떴다.


웨스트민스터 다리를 건너고 나니 머리 바로 위로 커다란 런던아이가 무뚝뚝한 눈빛을 한 채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템즈강과 고건물들을 배경 삼아 멀리서 바라본 런던아이는 제법 예뻤는데 가까이 다가와 보니 그냥 평범한 대관람차일 뿐이다. 런던아이에 올라 탈 생각도 없고 딱히 배고프지도 않았기에 그대로 걸음을 멈추지 않고 곧장 골든주빌리(=헝거포드) 다리를 건넜다. 강 속으로 곧 뛰어들 것처럼 낮게 내려온 해가 빅 벤 뒤에 숨어서 얼굴을 붉히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며 다시 템즈강 위 골든주빌리 다리를 찬찬히 건너갔다.


다리를 건너고 예쁜 런던의 거리를 지나 드디어 트라팔가 광장, 내셔널 갤러리 앞에 이르렀다. 높게 솟은 넬슨기념탑과 트라팔가 분수를 지나쳐 내셔널 갤러리 입구로 향하는 걸음을 서둘렀다. 내셔널 갤러리 앞 뜰에 당도하니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리고 있었다. 마켓을 구경해보고 싶었지만 저녁 여섯 시면 미술관이 문을 닫기에 나는 엄한 데 고개가 돌아가지 않도록 붙들어가며 황급히 미술관 안으로 도망치듯 들어갔다.






런던아이와 Boadicea and Her Daughters 동상을 함께 담아 보았다.

*Boadicea and Her Daughters Statue 동상은 여왕 Boadicea와 그의 딸들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것이다. Boadicea는 고대 브리튼족의 여왕으로, 1세기 초기 로마 제국의 통치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킨 바 있다. 이 동상은 Thomas Thornycroft에 의해 디자인되었으며, 현재 런던의 중요한 역사적 랜드마크 중 하나로써 자리하고 있다. 참고로 그녀는 전투 중 목숨을 희생하고 말았다.



나도 템즈강 위에서 사진 찍었다!


새가 다리 난간 위를 걸으며 고독을 즐기고 있는 모습이 재밌어서 찍었다.


웨스트민스터 다리를 건너고 나서 뒤돌아 보니 이런 모습이 펼쳐졌다.


헝거포드 다리(=골든쥬빌리 다리)를 건너며 찍은 사진. 다리 아래에는 여러 거리 노점들이 다양한 요리들을 팔고 있었다.


빅 벤 뒤에 숨은 해의 모습.


템즈강을 건넌 후 내셔널 갤러리로 향하는 길.


걷는 것만으로도 기분 좋을 만큼 예쁜 런던의 거리 풍경.


트라팔가 광장의 분수, 그리고 그 뒤로 내셔널갤러리 건물이 보인다.


넬슨기념탑이 우뚝 솟아있는 트라팔가 광장. 이 곳은 저녁이 되면 크리스마스 마켓으로 더욱 활기가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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