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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ria Dec 30. 2023

[5] 영국의 영혼 위로 울려 퍼지는 오르간 소리

런던여행기_웨스트민스터 수도원



왼편에는 엘리자베스 타워가, 오른편에는 웨스트민스터사원이 보이는 이 광장에 사랑의 신 에로스가 찾아와 한바탕 황금 화살 비를 내리고 떠나기라도 한 것인지 광장에는 앞선 커플 이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서로의 애정을 눈빛이나 살갗을 통해 나누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엘리자베스타워가 황금 화살 비로 흠뻑 젖은 것처럼 화려하게 빛나고 있구나. 어쩌면 이곳에 정말로 에로스가 다녀간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내가 그보다 한 발 늦게 왔나 보다. 사랑의 상대 없이 이곳에 홀로 서서 이 광경을 구경하고 있는 걸 보면 말이다. 물론 그 사실이 딱히 아쉽지는 않다. 왜냐하면 나는 웨스트민스터 수도원*을 보러 가야 해서 바쁘거든. 어디 웨스트민스터 수도원뿐이겠는가. 갈 곳도, 할 것도 아주 많다.

*웨스트민스터 수도원(Westminster Abbey)은 한국인들에게 웨스트민스터 사원이라는 이름으로 더 널리 알려져 있다. 정식 명칭은 웨스트민스터 성 베드로 참사회성당(Collegiate Church of St. Peter in Westminster)이다.


빅벤과 수도원이 보인다.



이 거리에서 이곳만 시간이 멈춰 버린 듯 그간의 역사의 위용을 발산하는 웨스트민스터 수도원 정문이 눈앞에 촤르륵 펼쳐졌다. 고딕 양식에 따른 높이 솟은 첨탑과 이를 지탱하는 플라잉 버트레스, 그리고 외벽에 촘촘히 수놓아진 섬세히 세공된 조각 및 동상들은 이 건물의 종교적, 역사적 등의 가치를 떠나 그저 건축의 예술적인 아름다움만을 절로 찬미하게 만들었다. 멀리서 보았을 때는 건축 양식의 전체적인 느낌을 한눈에 살필 수 있었고, 가까이 다가가 보니 그야말로 깨알같이 빼곡하게 채워 넣은 조각품들이 하나하나 모두 섬세하여 구경하기에 더욱 재미있었다. 사원 입장권을 구매하기 위한 대기줄이 꽤 길었지만 이 건물의 외벽과 그 주변의 건축물들을 신나게 살펴보다 보니 대기 시간이 후루룩 지나갔다. 그 와중에 대기줄에 서 있던 어떤 모녀에게 부탁하여 내 사진도 한 장 야무지게 남겼다.


추위에 두 눈이 아려올 때쯤 드디어 입장 차례가 되었다. 설레는 마음을 안고 어두컴컴한 내부로 빨려들 듯 들어갔다. 회중시계를 든 흰 토끼를 따라 토끼굴로 들어가는 기분이 들도록 하는 짧고 어두운 통로를 지나니 이내 매표소 및 사원의 내부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세계처럼 펼쳐진 사원 내부에는 외벽에 있던 것들보다 더욱 섬세하게 조각된 동상들, 그리고 하늘과 맞닿은 것처럼 저 높이 올려다 보이는 화려한 천장이, 또한 무엇보다도 영롱하게 형형색색으로 빛나는 스테인드 글라스 창이 나의 시선을 압도하였다. 토끼를 따라 이상한 나라에 들어오고 만 앨리스처럼 나는 호기심으로 가득 찬 두 눈을 이리저리 바쁘게 굴렸다. 바깥의 화창한 날씨 덕에 스테인드 글라스 창은 햇살을 받아 그야말로 신의 위용과 신성을 찬란하게 보여주는 듯했다. 하늘 높이 치솟은 천장을 화려하게 지탱하고 있는 슬래브는 그 신의 위용을 더욱 공고히 하며 비종교인인 나 조차도 종교적 신성함과 거룩함을 느끼게 하였다.


오디오가이드를 받아 들었지만 조금 듣다가 벗어 버렸다. 백 마디 말보다 한 번 눈으로 직접 보는 것이 더 의미 있다고 생각했고, 청각을 곤두세우다 보니 상대적으로 시각적 집중력이 조금 약화되는 듯했다. (다만 이 수도원 방문이 처음이라면 이곳의 전체적인 구조를 파악하는데 오디오가이드의 일부 내용이 매우 도움 될 것이다.)


성당 내부를 돌며 수많은 무덤 및 기념상을 마치 예술 작품 감상하듯 찬찬히 살펴보았다. 단순한 기념상이라고 하기에는 매우 섬세하게 공들여 조각되어 있었고 보존 상태도 아주 좋았다. 이곳에는 영국 왕족뿐만 아니라 위인이라고 불리는 사람들도 함께 안치되어 있어, 익숙하다 못해 반갑기까지 한 묘석들을 자주 만날 수 있다. 한 지붕 아래 놓인 이 한 공간 안에 영국의 굵직한 역사가 응축되어 있다고 생각하니 멋지고 대단하면서도 한편으론 이들의 이러한 공간의 존재에 대해 부러움을 느꼈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공간이 있다면 국민들 스스로 조금 더 우리 역사에 대한 자긍심을 고취하고 전통을 계승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을 텐데, 그렇지 아니한 것에 대해 다소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예상한 것보다 웨스트민스터 수도원 내부는 훨씬 흥미로운 공간이었고 볼거리가 많았다. 한 바퀴를 다 돌고도 아쉬워 떠나지 못하고 계속해서 조각상이며, 인테리어 디자인 등을 세세히 살피던 중 어디선가 오르간을 연주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예배가 이뤄지는 공간으로 가 보니 성가대석에 성가대가 앉아 있었고 아까보다 더욱 환하게 점등된 것으로 보아 예배와 같은 어떠한 의식을 막 치르려는 것 같았다. 예배에 참석할 의향은 전혀 없었지만 이 대성당 안에 장엄하게 울려 퍼지는 오르간 연주를 듣고 싶어서 떠나지 않고 조금 더 뭉그적거렸다. 아마추어 연주자의 솜씨인 듯하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드높은 천장과 드넓은 공간 안을 가득 메우고도 넘쳐 쉬이 사라지지 못하며 잔울림을 만들어내는 오르간 소리가 나의 가슴을 벅차오르게 하였다. 신이나 종교를 믿지 않는 나에게 조차도 가슴 벅찬 감명을 주는 이곳, 웨스트민스터 수도원은 나의 짧은 런던 여행 중 특별히 기억에 깊이 남은 장소들 중 하나가 되었으며, 또한 런던에서의 첫날을 장식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장소였다.


이곳을 떠나기엔 아쉬운 마음이 계속 들었으나 하루 종일 머무를 순 없으니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멀어져 가는 오르간 소리에 간절히 귀를 기울이며 예배당을 벗어났다. 수도원을 나가는 길에 마치 해리포터 속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긴 회랑이 나타났는데 회랑의 창틀 너머로 바라보는 초록빛 잔디가 깔린 안뜰과 그 위로 시원하게 펼쳐진 푸른 하늘, 그리고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오래된 수도원 건물의 외관이 멋져서 추운 것도 참아가며 또 한참을 구경하였다. 이곳에서도 역시 또 다른 낯선 이에게 부탁하여 내 사진을 남겼다. 귀엽고 상냥한 그녀는 나의 사진을 열심히 찍어 주었지만 역광 때문에 그다지 만족스러운 결과물은 얻지 못했다.






웨스트민스터 수도원의 외관. 실제로 보면 더 멋지다.



입장 대기줄에 서서 기다리는 동안 찍은 사진들. 추운 날씨임에도 밖에서 줄을 서야 한다. 그래도 예상한 것보다는 대기줄이 짧았다.



수도원 안으로 들어서면 마주하게 되는 모습이다. 참고로 입장료는 한화로 대략 5만원 정도 한다. 오디오가이드는 입장료에 포함되어 있어 별도 구매 없이 이용 가능하다.



스테인드글라스가 멋지다. 날씨가 좋으니 햇빛이 잘 들어와 더욱 멋졌다. 이번 런던여행 동안 날씨 운이 참 좋았다.



웨스트민스터 수도원 내의 일부 사진이다.



수도원 내부에서 들려오는 오르간 소리.



나가는 길에 마주한 회랑.



복도에서 찍은 사진인데 왠지 영화 해리포터 속 분위기가 나는 것 같지 않나? 내가 해리포터 덕후여서 무엇이든 다 해리포터와 연관짓는 걸 수도 있다.



수도원 밖에 놓여있던 커피 노점. 웨스트민스터 수도원 건물과 이 노점의 녹색이 잘 어울린다.



*웨스트민스터 수도원(Westminster Abbey) : 잉글랜드 런던 웨스트민스터에 있는 고딕 양식의 성공회 대성당으로, 왕실의 중요한 행사를 거행하거나 왕족 및 위인들의 무덤으로 이용하는 곳이다. 이곳의 정식 명칭은 ‘웨스트민스터 세인트 피터 참사회성당(Collegiate Church of Saint Peter at Westminster)’이며,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웨스트민스터 사원’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과거에는 가톨릭 수도회인 베네딕토회의 대수도원(Abbey)이었으나, 이후 헨리 8세에 의해 영국의 국교가 성공회로 바뀌고 엘리자베스 1세가 가톨릭 베네딕토회 수도자들을 내쫓으며 명칭 또한 '웨스트민스터 세인트 피터 참사회성당(Collegiate Church of St. Peter in Westminster)으로 바꾸었다. 그러나 Westminster Abbey(웨스트민스터 수도원)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불린다. 인근의 웨스트민스터 대성당(Westminster Cathedral)은 이와 전혀 다른 공간이니 방문 시 헷갈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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