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여행기_해리포터 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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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화에 이어지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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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디오 건물 로비 안에 들어오자마자 짐 보관소에 소지품을 맡겼다. (보관소 이용료는 무료이다.) 들고 다니기 거추장스러울 테니 외투도 맡기려고 했으나 고맙게도 직원은 우리에게 투어 코스 중 잠깐의 야외 공간도 있으니 외투를 가지고 있는 게 좋을 것이라고 친절히 조언해 주었다. 그들의 조언에 따라 우리는 외투를 소지하고 들어갔는데 과연 현명한 처사였다. 우리가 추위에 떨지 않도록 해 준 그들에게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번 감사를 전한다.
로비를 지나 안으로 들어가면 진짜 스튜디오 안으로 들어가기 위한 입장 대기줄이 이어져 있다. 대기 시간이 짧다고 할 수는 없을 정도이지만 대기 장소에 놓인 수많은 해리포터 영화 포스터와 영상물들을 구경하다 보면 금세 시간이 후루룩 지나간다. 나와 그녀(이전 글에서 언급한, 셔틀버스에서 만난 한국인 덕친. 토끼 같은 눈망울을 가졌으니 Rabbit의 앞글자를 따 R로 칭하도록 하겠다. 이하 R. )는 해리포터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서로의 사진을 찍어주기도 하며 즐거운 대기 시간을 보냈다. 이곳에서는 기다리는 시간조차도 마냥 즐겁고 행복하다. 진정 덕후들의 낙원이 아닐 수 없다.
첫 번째 대기장소를 지나고 나면 웰컴 영상이 상영되는 공간으로 이동한다. 영상 속에는 연기자인지 실제 팬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수많은 해리포터 팬들이 등장하여 각자의 덕심을 이야기한다. 그 영상을 보며 전 세계의 이토록 다양하고 많은 사람들과 함께 같은 마음을 공유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왠지 가슴이 뭉클하고 코 끝이 시큰했다. 광범위한 규모의 사람들을 국적, 고향, 학교 등을 통해 하나의 집단으로 결속시켜 주듯, 해리포터라는 매개체가 세계 곳곳에 분포되어 있는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주고 있는 것 같아, 이곳에 함께 모인 모든 덕후들에게 괜스레 애정을 느꼈다.
이윽고 안내 직원의 오프닝 연설과 함께 호그와트 대연회장 문이 열렸다. 문이 열리며 서서히 내 눈앞에서 커지던, 화려한 불빛들로 수 놓인 연회장을 마주하게 되던 그 첫 순간은 앞으로 머리가 하얗게 세고 주름이 자글자글해지더라도 영원히 잊지 못할 것 같다. 어릴 때부터 오랫동안 그토록 가고 싶었던 호그와트 연회장 안에 이렇게 들어오다니 꿈만 같았다. 그저 잘 꾸며놓은 세트장일 뿐이라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실현되기 불가능할 것이라고 여겼던 환상과도 같은, 그러나 오랫동안 가슴속에 간직하고 있었을 만큼 간절히 바랐던 희망 하나가 그 오랜 세월을 지나 현실이 되어 내 앞에 나타났는데, 설사 이곳이 세트장이라고 해도, 혹은 이 순간이 꿈이라고 해도 나의 가슴은 여지없이 평생 잊기 힘들 만큼 커다란 감동으로 벅차올랐을 것이다.
내가 방문하던 당시엔 Hogwarts in Snow 시즌이었고 연회장 내부는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물씬 풍기도록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었다. 비록 식탁 위의 음식들도 가짜, 단상 위의 호그와트 교수님들도 모두 얼굴 없이 옷만 입고 있는 가짜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하나 디테일을 살려 실감나게 잘 꾸며진 세트장은 이곳을 방문한 팬들로 하여금 해리포터 세계에 충분히 몰입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배경이 화려하니 예쁘기도 하지만 조명이 밝고 색감 또한 따뜻하여 사진을 찍기에도 참 좋은 장소다. 나 역시 이곳에서 예쁜 사진들을 많이 건졌다. 다른 곳들은 조명에 푸른 빛이 많고 어두운 곳들도 많아 생각보다 사진이 예쁘게 안 나올 수 있으니 이 연회장에서 사진을 많이 찍어두는 것을 추천한다.
연회장을 지나면 호그와트 내부 구석구석 온갖 다양한 곳들을 둘러볼 수 있는 코스가 마련되어 있다. 또한 입장 대기 시에 배부받은 여권에 코스별 스탬프를 찍는 것도 또 하나의 소소한 재미다.
스튜디오 내부는 호그와트에만 국한되지 않고 그린고트 은행, 마법부 건물, 다이애건 앨리, 기차역, 프리벳가, 금지된 숲 등등 해리포터 속에 등장하는 온갖 장소들이 정성껏 잘 차려져 있다. 또한 기묘한 크리쳐들만을 다룬 전시장과 같은 공간도 있으니 나처럼 크리쳐나 퀴디치 등 해리포터 스핀오프에도 관심이 많은 사람들에겐 정말 즐길 거리가 한가득이다. 투어 중간중간 들를 수 있는 굿즈샵들도 여럿 포진되어 있는데 R과 나는 호그와트행 열차가 있는 세트장 옆에 마련된 굿즈샵에서 ‘온갖 맛이 나는 젤리’와 ‘개구리 초콜릿’을 구매하여 열차 객실 안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전체 투어 중 절반쯤 가면 야외 공간과의 가교와 같은 역할을 하는 카페테리아가 나온다. 이곳에서 스낵이나 음료를 사 먹으며 잠시 쉴 수 있는데, 버터비어를 꼭 마셔보는 것을 추천한다. (아마도) 알코올은 들어있지 않았던 것 같고 맥주의 맛 또한 미약했다. 음료 위에는 달달하고 단단한 거품이 올라가 있는데 애초에 나는 버터비어 맛에 대해 기대를 하지 않아서였는지 꽤 맛있게 마셨다. 버터비어를 마실 것을 추천한 이유는 사실 버터비어가 맛있어서는 아니고, 이 음료가 담긴 플라스틱 컵을 소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컵을 씻을 수 있도록 친절하게 수돗가까지 마련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수돗가에서는 따뜻한 물이 콸콸 나와 깨끗하게 컵을 씻어갈 수 있으니 걱정 말고 꼭 버터비어를 사 마시는 것을 추천한다.
내 앞에 앉은 한 남자는 카페테리아에서 판매하는 치킨을 먹고 있었는데 그가 어찌나 맛있게 먹던지 괜히 나도 치킨을 하나 시키고 싶어졌다. 그에게 맛있냐고 물어보니 맛있단다. 그러니까 더 궁금했다. 하지만 결국 사지 않았다. 나는 딱히 배고프지도 않았고 R 역시 치킨에 관심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때마침 밖에는 소낙눈이 내리고 있었다. 펑펑 떨어지는 흰 눈을 보니 기분이 들떠서 어린아이처럼 방방 뛰었다. 눈은 금세 그쳤고 그제야 돌아온 정신은 급 한기를 느끼게 하였다. 외투가 없었으면 이 공간들을 둘러볼 엄두를 감히 내지 못 했을 것 같다. 물품 보관소 직원들에게 다시 또 한 번 감사한 마음을 전해 본다.
투어의 끝자락쯤엔 그야말로 <Hogwarts in Snow> 공간이 나타난다. 눈 덮인 겨울의 호그와트 성이 구현되어 있는데, 미니어처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규모가 제법 되고 디테일이 매우 잘 살아있어 실감난다. 그래서인지 퍽 감동적이었다. 게다가 이 공간 안에 흐르는 배경음악은 감동을 더욱 배가시켰고, 이 공간이 거의 투어의 마지막이라는 것을 알아서인지 마치 호그와트를 졸업하여 영영 이곳을 떠나는 졸업생이라도 된 것처럼 마음이 매우 섭섭하고 짠하였다. 내 추억이 깃든 학교와 이별하는 마음으로, 서운하고 아쉬운 마음을 담은 발걸음을 한발 한발 내딛으며 걸어 내려갔다.
그리고 드디어 이 투어의 마지막 코스인 지팡이 상점이 나타난다. 물론 세트장이기에 진짜 상점처럼 지팡이를 하나하나 꺼내어 살펴본다거나 휘둘러볼 수는 없지만, 마치 내가 호그와트로의 입학을 준비하는 예비 신입생으로서 이곳 지팡이 가게에 지팡이를 사러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어 그것만으로도 매우 설렜다. 금방이라도 올리밴더가 나타나 내게 여러 지팡이들을 쥐어보게 해 줄 것만 같았다. 내 손에 감길 지팡이는 과연 어떤 지팡이일까. 영원히 그 해답을 얻을 수 없을 오래된 질문을 또 한 번 띄우며 지팡이 상점을 나섰다. 혹시 또 모르는 일이다. 상상 속에서만 가보던 호그와트 대연회장에 오늘 이렇게 들어왔듯 언젠가 올리밴더의 지팡이 상점에서 나만의 지팡이를 찾는 날이 올 수도... 미래의 일에 대해 감히 확신하는 것은 한낱 인간으로서 건방진 행위이지 않을까.
지팡이 상점 세트장을 나오면 지팡이를 정말로 돈 주고 살 수 있는 굿즈 상점이 나타난다. 물론 올리밴더 씨는 없다. 유리 진열장 안에 지팡이들이 예쁘게 나열되어 있으므로 그중에 각자 취향에 맞는 지팡이를 눈으로 보고 골라 사면 된다. 가격대가 조금 있는 편이긴 하지만 매우 튼튼하고 정교하여 한두개쯤은 소장할 만하다. 나는 이미 일본에서 산 지팡이를 소장 중이기도 하고, 배낭 안에 여유공간이 없을 것 같아 이곳 런던 스튜디오에서는 지팡이를 구입하지 않았다.
지팡이 가게는 바로 대규모 굿즈 상점과 이어진다. 투어 중간중간에도 굿즈 상점들이 포진해 있지만 투어 마지막 코스에 마련되어 있는 이 굿즈 상점은 그 규모가 가장 크며 상품 종류 또한 방대하다. 시중에 나와있는 해리포터의 굿즈는 다 여기에 있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물론 미나리마 스토어의 굿즈와는 조금 다르니 유의할 것)
덕후들의 심장을 저격하는 상품들로 휘황찬란한 공간이므로 해리포터 덕후라면 충동 구매하지 않도록 정신 차릴 필요가 있다. 나 또한 여행가방으로 배낭을 가져왔기에 망정이지 만약 수납공간이 넉넉한 하드 캐리어를 가져왔더라면 이곳에서 한바탕 쇼핑을 즐겼을 것이다. 특히 나의 취향을 저격한 것들은 머그잔과 주얼리들이었는데 지금도 나는 이때 그것들을 사 오지 않은 것을 후회한다. 여담이지만 2024년 하반기에 런던에서 열릴 관심 있는 전시가 있어 한 번 더 런던에 방문할 생각인데 그때는 반드시 커다란 캐리어를 가져가서 해리포터 굿즈를 맘 놓고 사 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