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여행기
어제는 빗방울이 나를 깨우더니 오늘은 기분 좋은 아침 햇살의 감촉과 내음이 나를 깨운다. 커튼으로 꽁꽁 가려놓은 덕에 햇살이 벌컥 창문을 열어젖히고 막무가내로 방 안에 들어오지는 않았지만 창문 밖에서 그 따스한 온기와 향기로 이 방 안을 애타게 기웃거리고 있었다.
런던에서의 또 다른 새로운 아침이 밝았다.
아침 식사를 하러 부엌으로 가니 어제와는 확연히 다른 환한 아침 풍경화 한 폭이 창문틀 안에 살포시 끼워져 있었다. 나는 비 오는 날씨도 무척 좋아하지만 역시 화창한 날씨보다 더욱 반가운 것은 없는 것 같다.
비록 시리얼과 우유, 쨈을 바른 빵 따위의 영양 균형이라곤 전혀 잡혀있지 않은 아침 식사였으나 질보단 양으로 승부하겠다는 듯이 나는 그것들을 뱃속에 마구 욱여넣었다. 아직 시차에 적응되지 않은 육체가 포만감에 한껏 게으름을 피운다. 나는 부엌에서 뭉그적거리다가 겨우 마음을 다잡고 밖으로 나왔다.
간밤에 또 비가 왔었는지 바닥에는 물기가 그득하다. 눈부시도록 노란 아침 햇살은 듬성듬성 고여있는 물 웅덩이 위에 어여쁜 윤슬을 만들어냈다. 그뿐만 아니라 벽돌 건물들의 표면 위에는 빛의 베일을 예쁘게 드리워 이 평범한, 어쩌면 너저분하다고 할 수도 있는, 길거리를 마치 숲 속 오솔길처럼 느껴지도록 최선을 다 해 꾸몄다. 나는 아침 숲 산책을 하는 것과 같은 기분으로 튜브(지하철) 역을 향해 걸었다.
캠든타운 역에서 튜브를 타고 세인트폴 대성당이 있는 인근 역에서 내렸다. 이 역에서 내린 후에도 좀 더 걸어가야만 성당이 나오는데 때마침 출근 시간대와 겹친 것인지 거리에 사람들이 많아 런던 시민들의 출근 풍경을 구경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의 출근 풍경과 비교를 하자면 덜 삭막하고, 덜 우울한 것 같다. 실상은 어떨지 모르지만 적어도 겉보기엔 그렇다. 나와 다른 공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 풍경을 관찰하는 것은 참 흥미로운 일이다.
성당으로 가는 길에 ‘파이브가이즈’ 식당을 보았다. 그것을 보자마자 나는 성당에 들어가기도 전부터 이따가 성당에서 나오면 기필코 파이브가이즈 햄버거 세트를 먹어야겠다고 군침을 흘리며 다짐했다.
걷다 보니 마치 수도승 모자를 연상시키는 커다란 상앗빛 돔이 파랗고 맑은 하늘 아래 색깔의 대비를 이루며 한 폭의 그림 같은 모습을 연출하는 광경이 눈앞에 선명하게 드러났다. 봄이라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로 온화하고 맑고 따스한 하늘 아래에서 상아색의 성당 외관은 흡사 백금을 도금해 놓은 듯 우아하고도 찬란한 빛깔을 발산했고, 르네상스 시기의 어느 거장이 그린 한 종교화 속에서 봤을 법한 고결함과 아름다움이 느껴졌다. 성당 건물을 둘러싼 울타리에는 무성한 초록잎들과 함께 분홍색 장미꽃이 듬성듬성 채워져 있었는데 그 모습이 이 성당의 우아한 분위기를 더욱 돋보이게 해 주었다.
외관도 이토록 멋진데 내부는 얼마나 더 멋질까! 나는 한껏 기대로 부풀어 오른 마음을 진정시키며 성당에 들어섰다.
*세인트 폴 대성당(St Paul's Cathedral) : 영국 런던의 상징물들 중 하나인, 영국 성공회 런던교구의 주교좌성당이다. 종교적 및 국가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건물이기도 하지만 전쟁 폭격에도 살아남은 서사를 가지면서 영국인들에게 남다른 의미를 주는 각별한 상징물이 되었다. 건물 내부에는 이 대성당의 설계자이자 책임자였던 크리스토퍼 렌(Sir Cristopher Wren) 경을 비롯하여 영국의 많은 주요 인사들의 무덤 및 기념비가 안장되어 있으며, 국장, 왕실 결혼식, 감사성찬례 등의 국가적 행사를 거행하는 장소로도 쓰이고 있다. 1675년도에 착공하여 1711년도에 완공된 것으로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