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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리스 Jul 03. 2024

교육을 넘은 교육

<교육과 철학의 얽힘>을 읽고

 12년 동안 공교육에서 큰 배움을 느끼지 못한 채 어른이 되었다. 그저 스스로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자책했지만 부모가 되니 시선의 방향이 틀어졌다. 현재 교육 제도는 올바른 방향성을 갖고 있는가. 아이들의 개성과 창의성을 억압한 채 지식을 주입하고 암기를 강요하는 교육에서 아이들이 얻는 것은 무엇인가. 이러한 의문은 '교사 중심 교육의 실패'라는 비역사적 사유를 가져왔다. 그러나 단편적인 비판보다 진보적 측면으로 교육의 역사를 훑어보는 것은 중요하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교육 또한 강제될 수 없다. 교사 중심의 교육은 곧 사유 없는 배움으로 변질될 우려가 있다. 아이가 안에서 밖으로 꺼낼 수 있는 교육, 내부적으로 받아들여질 때 유효한 교육이 된다. 이때 교사나 부모가 적극적으로 개입하게 되면 자기 활동에 방해를 받게 된다. 어른은 소극적 존재로서 지도자 역할을 갖는다. 이것이 아이 중심 교육이라고 한다면 오늘날 우리가 학교에서 받는 교육은 이와 반대되는 교육이리라. 교사 중심이든 아이 중심이든 중심화는 언제나 대상을 상정해야 하므로 한계를 갖는다. 


 현재 교육과정은 틀에 짜인 각본에 따라 정해진 지식을 주입시키는 것으로 전개된다. 지도자는 이미 답을 정한채 질문을 던짐으로써 아이들은 열린 사고를 하기 어렵다. 지식을 더 많이 소유한 자가 지도자가 되며 교과 과정만을 전달하는 것이 오늘날의 교육이 될 수 있다. 


 어른은 아이를 미숙한 어른의 축소판으로 잘못 이해하곤 한다. 이 같은 오해는 잘못된 교육 방향을 이끈다. 아이들이 무엇을 배우고 싶은지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며 어른이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에 대해서만 열중하고 있다. 아이는 미완성된 어른이 아니다. 작지만 그 자체로 완벽하며 미숙할지라도 온전히 사고할 줄 아는 완전한 사람이다. 교육은 아이가 흥미를 느끼고 궁금해야 할 내용들이어야 하며 강요가 아닌 소화할 수 있는 내용이어야 할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평등성은 매우 중요한 요소이나 현실적으로 교육은 평등하지 않기 때문에 여전히 강조되고 있다. 교육을 넘어 사회적으로 평등을 외치는 차별금지에 대한 발의가 끊이지 않는다. 평등을 외치는 목소리는 여태 소외되었던 소수자들의 투쟁이다. 


 선인장은 메마른 사막에서도 잘 자라지만 가을걷이를 기다리는 식물은 매일 밭을 두들기며 흠뻑 물을 주어야 한다. 아이들은 파릇파릇 돋아나는 새싹과 같다. 갓 돋아난 새싹은 어떤 열매를 맺을지 쉽게 알 수 없다. 식물마다 필요한 물의 양이 다르듯 교육도 이와 같다. 교육은 아이로부터 시작되어야 하며 생명이 썩지 않도록 적절한 물을 주어야 할 것이다. 


 부모는 아이에게 많은 것을 알려주고 싶어 한다. 그러한 이유는 아이보다 부모가 더 많은 지식을 가져서가 아닌 먼저 깨우쳤기 때문이어야 할 것이다. 교육은 100년 앞을 내다보아야 한다고 했다. 단기적 성과를 올리기 위한 교육이 아닌 아이 스스로 사유하며 배움의 목적을 좇는 교육을 바라는 바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학교는 '교육'을 목적으로 세워진 곳이다. 학교에서 완전한 사람을 거듭나길 바란다면 그것은 크게 잘못된 생각이다. '가정교육'이라고 칭하는 부모 교육이야 말로 아이를 전인적 사람으로 거듭나게 하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 




교육에서의 철학은 교육 자체를 목적으로 삼지 않으며 오히려 교육으로부터 자유함을 얻어 '교육을 넘어 교육'을 바라보기 위한 시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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