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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리스 Jul 26. 2024

상위 10% 고품질 블로그

자본주의 시대의 블로그 사용기 2

  책을 자주 읽던 아이는 자라면서 행동반경이 넓어졌다. 자연에서 종일 놀고도 아쉬워하는 아이를 보고 동네 텃밭을 분양받아 한 해 농사를 지었다. 주말이면 산과 들 그리고 바다로 나가 대자연의 경외감을 몸소 느꼈다. 동네 책방 같던 블로그는 순식간에 잡화점으로 전락했다. 주제는 문학이었지만 점차 '여행' 카테고리 글이 늘어갔다. 나에게 블로그는 싸이월드를 대체하는 일기장이 이었으니, 대수롭지 않았다.


 그런 나에 반해 올케는 블로그를 상업적으로 잘 이용했다. 소위 '협찬'으로 밥도 먹고, 미용실도 가고, 여행도 다니고 있었다. 당시 그러한 행보는 나와는 거리가 먼 일명 '넘사벽'이라 여겼다. 수년 전 올케의 협찬 여행에 동행했을 때 은밀하고도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체크인하던 중 숙소 담당자는 '체험단님'이라는 호칭으로 나를 불렀다. 내가 블로거인 줄 알았던 모양이었다. 한글은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했던가. '협찬'과 '체험단'의 느낌은 분명히 달랐고 두 단어의 괴리감이 상당했다. 체험단이라고 함은 내 블로그에도 무수히 광고 댓글을 달던 그들 아니던가. 블로그로 밥도 먹고, 여행도 다니고 하는 것이 바로 '체험단'이었다니. 엄청난 세계를 알게 된 기분이랄까.


 나라고 못할 건 없었다. 지난 댓글을 찾아보고 체험단에 도전했다. 뷰티에 문외한인 문학 블로거인데 뷰티 분야에 지원하면 열에 아홉은 선정이 되었다. 평소 살림하느라 가꾸지 못했던 나 자신을 가꿀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었다. 애 셋 있는 가정 주부라 할 수 없었던 사치를 블로그를 통해 누린 것이다. 블로그는 잡화점에서 도떼기시장으로 한번 더 타락했다. 푸른 하늘빛이 예뻤던 그림에 빨간색과 노란색, 그리고 초록색 붓들이 휘갈겨 당최 무슨 그림인지 알 수 없었다. 적당히 물건을 넣어야 맵시가 나는 토트백에 온갖 물건을 욱여넣어 가방의 옆구리가 터질 지경이랄까. 옆구리가 터지기 전 물건을 덜어내야 했다.


 육아, 책, 건강, 여행, 뷰티, 반려동물 등 발행하고 싶은 콘텐츠가 많았다. 이 많은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써나가도 무방하나 주제가 많으면 전문성이 떨어지기 마련이다. 내가 소비자라면 옷가게에서 파는 당근보다 채소 가게에서 파는 당근을 구입하지 않겠는가. 한 가지 주제를 정해야 했다. 줄이고 줄였더니 책과 여행이라는 주제가 남았다. 기존 블로그에서 발행했던 포스팅을 살펴봤다. 여행에 대한 유입이 월등했지만 발행 개수는 책이 더 많았다. 무엇을 선택해도 아쉬움은 남는 법. 여행 글을 지우고 처음 시작했던 대로 '책'을 선택했다. 예상했던 바, 방문자 수가 십 분의 일 가까이 줄었다. 유입 수에 일희일비하지 않았다. 나의 장점 중 하나는 '스테디'하다는 것. 그저 마음이 흐르는 독서를 하고 블로그에 책을 기록했다.


 그 스테디함이 통했던 것일까. 우연히 알게 된 블로그 지수 통계에서 내 블로그는 상당히 높은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하루에 100명 내외로 들어오는 작은 책방인데 상위 10%라는 놀라운 통계치를 내고 있었다. 학창 시절 수석은커녕 전교 10등 안에도 들어본 적 없던 나에게 상위 10%라는 숫자는 큰 기쁨이었다.


 이 정도 블로그라면 아름다움은 물론이고 여행 협찬도 자신 있지만 '체험단' 활동은 일절 막을 내렸다. '문학'이라는 콘셉트와 맞지 않기 때문이다. 역으로 책을 지원받았다. 책을 구입하지 않던 것은 공간에 대한 사치도 한몫했지만 비용에 대한 부담도 막중했기에 이마저도 쏠쏠했다. 책을 지원받아 살림이 나아진 것은 아니지만 '서평단' 활동으로 평소 취향이 아닌 책과 신간 도서를 읽으면서 새로운 방향성과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었다. 물론 OECD 국가 중 독서율 최하위 나라답게 '문학'은 트렌드를 좇지 못한다. 따라서 유입은 많지 않지만 그럼에도 문학 '인플루언서'는 존재하지 않는가. 유입이 적은 것은 대중의 취향을 따르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아직도 성장해야 할 것이 다분하다는 것. 상위 1%에 도달하기까지 엄마의 도전은 계속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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