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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리스 Jul 19. 2024

관종녀의 일기장

자본주의 시대의 블로그 사용기 1

 이과 여학생, 공대 여대생.

 국어보다 수학 성적표의 형편이 나았기에 정했던 진로. 가을이 가는 계절, 낙엽을 쓸어놓은 정갈한 길보다 수북이 쌓인 낙엽을 밟으며 바스락 거리는 소리를 즐긴다. 사람들이 많이 가는 길목보다 한적한 길을 좋아하는 나는 어쩌면 '여자는 문과'라는 다수의 길을 걷기 싫었을지도 모르겠다.


 감성보다 이성에 가까운 나는 사실을 기반한 논리적 판단을 좋아했다. 말로 하면 될 것을 구구절절하게 글로써 표현하는 것은 소심한 사람들의 유희라 여겼다. '작가'라는 문과적 색채가 강한 직업군은 재미없는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편협한 사고를 갖고 있었던 것이다.





 글쓰기의 시작은 초등학교 방학 숙제였으리라. 매일 일상을 나열하는 일기 쓰기는 고단했지만 선생님의 칭찬 도장과 상장은 크나큰 동기부여가 되었다. 엄마는 어린 딸이 건네는 손 편지를 좋아하셨다. ‘편지’는 큰 지출 없이 상대방에게 마음을 표현하는 선물임에 틀림없었다.


 친구들과 우정처럼 주고받았던 펜팔, 표지가 두꺼웠던 다이어리에 남몰래 썼던 은밀한 끄적임을 빼고 학창 시절을 논할 순 없으리라. 대학 시절 유행했던 싸이월드는 사진첩이 주를 이루었지만 한 줄씩 남기는 기록들이 소중했다. 모든 사용자가 페이스북으로 넘어갔을 때도 꿋꿋하게 싸이월드 대문을 지켰다. 결국 싸이월드는 폐쇄를 면치 못했고, 그간 쌓아둔 추억을 잃었다는 상실감에 온라인 세계에서 발을 뺐다.


  결혼을 했고, 아이를 낳았다. 새로운 환경과 작은 생명을 마주하자 모르는 것 투성이었다. 온라인 세상은 사막의 오아시스와도 같았다. 궁금한 것을 검색창에 입력만 하면 이미 자세하고 친절한 응답들이 넘쳐났다. 문득 가상의 공간에서 친절한 응답자들의 선의가 궁금했다. 병원에 가서 10초 내외의 의사의 소견만 들어도 최소 몇 천 원의 진료비를 내야 하는데, 온라인에서는 모든 자료가 무료로 제공되고 있었다. 그들도 직업이 있고 바쁠 텐데 왜 가상의 공간에서 선심을 쓰며 무료로 정보를 제공하고 시간을 소비하는지 의아했다.


 




 아이가 세 명이 되자 초보 엄마 딱지를 띄면서 나름 육아 내공이 쌓여갔다. 인류는 누구나 자신의 업적을 천하에 드러내고 싶다고 했던가. 바르지 않은 시선은 그것을 '관종'이라 볼 테고 좋게 보면 '자아실현'일 테다. 나의 육아 내공과 이야기를 불특정 다수와 공유하고 싶었다. 블로그에 아이와 읽었던 책들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독자는 많지 않았지만 글을 쓰면 내면의 무언가가 해소됨을 느꼈다. 그것은 일종의 카타르시스였다. 읽어주는 사람이 없어도 꾸준하게 기록했다. 쓰고 기록하는 행위만으로 이렇게 기쁠 수 있다니! 우울하면 글을 썼고, 기쁠 때도 글을 썼다. 글을 썼다고 나열하니 거창해 보이지만 블로그 포스팅이 전부였다. 생각을 정리하고 현재를 기록하기 위해 작성한 글들이었다. 키보드를 두들기면 완성되는 활자들은 나의 어깨를 토닥였고 따뜻한 품을 내어줬다. 재주는 없어도 좋아하는 것을 찾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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