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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리스 Jul 05. 2024

제작, 사입 그리고 위탁

전업맘의 스마트스토어 이야기 4 

 시작은 창대했고 끝은 미약했다. 얕은 애정과 투자하는 시간은 비례했다. 그러면서 주문이 들어오길 바랐다. 이보다 이기적인 심보는 없으리라. 쇼핑몰 중에서도 가장 치열하다는 여성복에 '여'자도 모르면서 그저 예쁜 옷 걸치는 걸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진입했던 것이다. 하루에도 수많은 사업자가 문을 열고 닫는다는 그 시장. 어쩌면 나에게 가장 궁핍했던 건 '절실함'이었다. 그럴싸한 '명함'만 만들어두고 그것으로 나는 전업맘에서 탈출했다는 위안을 삼았다.


 내 이름으로 된 사업자를 발급받으면서 남편의 부양으로부터 독립했다. 국민 건강 보험료와 국민 연금과 부가세 등을 납입하고 나면 소소하게 들어오는 잔고는 바닥이 났다. 그렇다. 나는 겨우 번 돈으로 오롯이 세금을 납부하는 납세의 의무에만 충실한 옹색한 사업자였다. 폐업 신고는 로켓 배송을 주문하는 것처럼 간편했다. 어쩌면 나는 나를 수식할 직함을 물건을 사는 것처럼 쉽게 생각했다.


 '애 셋 아줌마가 부업은 무슨... 살림이나 해야지'

그러면서도 내가 주로 읽는 도서 장르는 '자기 계발서'였다. 컴컴한 밤 독서등 하나 켜고 엎드린 침대 위에서 읽는 활자들은 살아 움직였다. 그들은 인생이 생각보다 길다고 하였다. 애만 키우다 늙을 거냐고, 언제까지 자식의 그림자만 보고 살 수 없다고 했다. 이대로 살기에 세상은 너무 아름답다고 당장 일어나 무엇이든 해보라고 했다.


 백수 3개월 만에 신규 사업자를 냈다. 이번에도 주저함과 거침이 없는 시작이었다. 그러나 그 끝은 분명 창대하리라 다짐하면서. 다시 시작한 일은 '위탁 판매'였다. 개나 소나 한다는 그 부업. 이미 거대 유튜브 크리에이터들이 많은 아이템으로 다루었던 터라 시장은 오래전부터 레드오션이다. 그만큼 진입 장벽이 낮아 나처럼 전업맘도 쉽게 다가갈 수 있었다. 그러나 위탁업 또한 총성 없는 전쟁터였다.


 똑같은 상품으로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최저가'로 승부를 봐야 한다. 오늘 내가 최저가를 달성하여 상단 노출에 성공했다 하여도 내일이면 다른 경쟁자가 가격을 낮춰 100원 띄기 장사를 해야 하는 시장이다. 그럼에도 이전에 했던 '사입'이나 '제작'보다는 분명 수월했다. 전업맘의 '부업거리'로 충분한 매력을 갖고 있는 아이템이다.


 제작의 경우 아이디어가 충만해야 했다. 다양한 제품을 섞고 디자인을 끝냈다면 또 보기 좋게 사진을 찍어야 한다. 아무리 잘 찍어도 아마추어의 티를 벗을 수 없는 사진들에 정갈한 설명들은 전문성이 떨어졌다. 심혈을 기울여 제작한 상품의 업로드까지는 상당한 에너지가 들어갔지만 이미 상품화된 것들보다 제품의 가치나 가격적인 매력이 떨어졌다.


 제작을 하다가 사입을 하니 노동의 강도가 대폭 줄었다. 나는 도매처에서 상품성 있는 것들을 소싱하여 집안 구석구석에 차곡차곡 쌓았다. 안락했던 집은 순식간에 창고로 전락해 버렸다. 많은 물건을 전부 팔았으면 좋았으련만 절반 이상의 물건을 늘 버려졌다. 말랑말랑해야 하는 클레이는 생각보다 쉽게 굳었고 유행이 지나거나 시즌 상품의 경우 시기를 놓치면 애물단지 신세가 되고 말았다.


 그에 반해 위탁업은 간결했다. 내가 팔 물건들을 소싱하고 업로드하면 절반 이상 진행한 것이다. 상품을 집에 쌓아둘 일도 없었고 유통 기한이 지나거나 유행이 지나서 버려야 할 물건도 없었다. 그저 주문이 들어오면 발주서만 넣었고 수일 후에 물건값이 정산되니 일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택배를 포장할 일도, 무거운 택배를 들고 편의점에 가서 택배를 보내는 일도 생략된 것이다. 그렇게 나는 그 언제보다 쉬운 일거리로 또 하나의 명함을 만들었다. 이전과는 다른 행보를 기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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