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조금 다를 뿐, 틀리진 않았습니다.

by 아리스

유별난 줄은 몰랐다. 나는 산모이지 환자가 아니라는 생각에 선택한 자연주의 출산이었다. 국내 자연주의 출산율이 1%라는 통계에 좀 놀라긴 했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아이를 싫어하는 편에 속했는데 결혼과 동시에 찾아온 작은 생명은 눈부시게 빛났다. 이 작은 것도 사람이라고, 사람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는가. 안으면 부서질까 소중히 가슴에 끌어안은 아이는 나에게 따뜻한 숨결을 불어넣었다. 나만을 바라보는 이 작은 생명을 위해 '잘'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찾아온 건 처음이지 싶다. 이전에는 그저 물 흐르듯 삶을 유유히 거닐었다면, 출산과 동시에 우리의 삶을 한번 잘 운영하고 싶었다.


아이가 아플 때면 처방받은 '항생제'와 '진통소염제'의 사용 설명서를 찾았다. 빼곡한 설명서를 읽고 있으면 굳이 먹이지 않아도 된다는 결론이 나왔다. 처음에 남편은 네가 의사냐며 비아냥거렸지만 아파도 금방 회복하거나 유행하는 감기 한 번 걸리지 않는 아이를 보면서 묵언의 응원을 보냈다.


'돌 무렵이면 어린이집에 가고, 유치원에 입학하면 예체능 위주의 학원을 다녀야' 된다는 궤적을 밟지 않았다. 아이를 볼 수 있는 여건이 충분해서 복에 겨운 선택일 수 있으나 남들 다 하는 것을 으레 하지 않았다. 아이는 아직 미숙했고 엄마와 보내는 시간이면 풍족했다. 엄마인 나도 아이와 함께하는 매일이 행복했다. 외주의 보육은 필요하지 않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아이가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하니 정오가 조금 지난 시각에 하원하지만 놀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나는 아이와 놀기 위해 학원에 보내지 않았다. 놀아도 놀 시간이 부족한 아이와 '체험학습 신청서'를 제출하고 하루 온종일 놀기도 한다. 학원 말고도 우리 집에는 놀기 위해 TV와 유튜브 그리고 스마트폰이 없다.


독서는 멋이 없는 사람들이 하는 행위라고 여겼던 내가 책에 푹 빠졌다. 그 시작은 남편과 말싸움에서 보다 논리 정연한 말들을 퍼붓기 위함이었지만 점차 책과 친해졌다. 그림책으로 빼곡한 거실의 책장에서 아이들은 덥수룩 책을 가져와 무릎에 앉는다. 같은 책을 열 번이고 읽어달라고 해도 읽어주었다. 목이 아픈 날엔 세이펜의 도움을 받고 싶었지만 따뜻한 보리차를 입에 머금으며 읽어주었다. 설거지를 하다가도 책을 읽어달라고 하면 고무장갑을 벗어두고 책을 읽어주었다. 그림책만 읽는 아이에게 지식백과를 읽으라고 강요하지 않았다. 책에 집중하는 아이의 입술과 눈망울이 반짝였다. 품에 안은 아이의 온기가 나의 가슴까지 데워주었고 아이의 냄새는 향긋했다. 그렇게 읽은 날이면 북트리는 돌탑처럼 솟아올랐고 50권을 넘어가는 날도 더러 있었다. 권수는 중요하지 않았다. 책과 마주하는 시간 동안 아이와 살갗을 비비며 동화 속 이야기의 향연을 나누는 것이 중요했다.


아이가 특별한 이유 없이 미울 때도 있고, 반복되는 육아와 살림에 지치는 날도 있다. 그럴 때면 매일 밤 조금 더 참지 못한 나를 성찰하고 아이를 온전히 바라보기 위해 마음을 다잡는다. 아이의 눈에는 엄마가 가득하기 때문이다. 아이는 엄마의 눈을 보고 엄마의 감정을 그대로 베낀다. 아이의 세상에서 엄마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전부이자 존재의 이유다. 아이의 지고지순한 사랑에 비하면 내가 주는 사랑은 터무니없다. 나만을 바라보는 세 아이의 사랑에 벅찬 나날, 오늘도 아이들과 충만한 사랑을 나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