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특권, 특별한 교감
조산원에서 배운 대로 아기에게 젖을 물렸다. 누구에게나 '혹시'라는 아주 사소한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출산준비물의 젖병을 빠트리진 않았다. 젖병의 쓸모에 대한 운명은 모른채 분유와 젖병의 구색을 갖춰둔 것이다.
자신의 몸도 채 가누지 못하는 아기는 본능적으로 젖꼭지를 찾아서 힘차게 빨았다. 아기가 젖을 빨때면 온몸의 전율이 흐르는 것 같았다. 아기가 세상 밖으로 나오기 전 엄마와 탯줄로 연결되어 있었다면 출산 후에는 젖으로 아기와 하나가 되는 것이랄까. 친정 엄마는 자주 우는 아기를 보며 젖이 좀 부족한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유축기로 빼낸 젖 색깔을 보고선 물젖이라며, 분유로 보충해줘야 하는 것 아닌지도 염려하셨다. 모유수유에 대해서 아는건 조산원에서 출산 교육을 들은 것이 전부였는데도, 불안해하는 친정엄마의 모습에도 오히려 나는 평온했다. 아기도 몸무게가 잘 늘어났고 기저귀도 자주 젖어있어서 양이 충분하다고 어림짐작했다.
주변에서는 분유를 먹여야 엄마가 좀 편하다고 했다. 그래야 조부모나 남편에게 위탁도 해가며 휴식을 취할 수 있다고 분유수유를 적극 권장했다. 내가 좀 편하자고 잘 나오는 모유를 끊고 소젖을 먹이고 싶진 않았다. 모유수유의 장점이 더 눈에 들어왔다. 열탕 소독이 없는 간편함, 지출 없는 알뜰함, 외출시 가벼운 가방 그리고 저절로 다이어트가 된다니 모유수유의 장점이 더 솔깃했다. 무엇보다 젖을 빠는 아기가 경이로웠다. 내가 엄마로서 해줄수 있는 유일한 선물같았다.
이유식을 먹어도 아기는 젖을 좋아했다. 아기가 빠는 만큼 젖이 차올라 충분히 먹일 수 있었다. 돌이 지난 후에도 아기는 젖을 원했다. 기분이 좋을 때는 좋다는 이유로, 기분이 안 좋을 때는 젖으로 위로를 받았다. 아기는 젖을 물고는 이내 심리적 안정감을 받았다. 좀 컸다고 외출할 동안에는 더이상 보충수유가 필요하지 않았다. 수유복을 더이상 입지 않아도 되니 기뻤다. 돌 지난 아기에게 젖은 엄마와의 사랑을 이따금씩 확인하는 장치였다.
젖꼭지에 곰돌이를 그리거나, 식초를 바르는 행동은 하지 않았다. 아기의 습관을 고치기 위한 어른의 작은 행동이 아기에게는 큰 시련으로 다가올 것이 뻔했다. 아기가 젖을 빠는 횟수는 확연히 줄어들었고, 영양이나 배를 불리기 위한 목적은 아니었다. 엄마의 존재와 사랑을 확인하는 것 같았다. 간식 개념으로 젖을 빠는 아이에게서 나는 별다른 부정의 감정을 느끼지 못했다. 크게 습관을 바꾸려 들지 않았다. 아기가 찾지 않을 때까지 물릴 작정이었다.
예전에는 먹을 것이 부족해서 네다섯 살까지 젖을 먹이고 분유와 같은 대체식품이 없어서 젖이 귀했다. 지금은 풍요로운 먹거리와 바쁜 엄마들로 모유 수유는 그야말로 선택사항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 OECD에서도 모유수유는 24개월을 권장하지만 현실과 이상은 늘 다르다. 돌까지 완모한 엄마는 흔치 않았고 그런 그녀들은 대개 갈채를 받는다. 오늘날 나와 같은 처사는 당연히 주변 사람들의 눈을 휘둥그렇게 만들었다. 좋지 않은 시선도 많았다. '젖니가 난 후 젖을 계속 빨면 치열이 좋지 않다', '충치 생길 수 있다', '모유 수유를 오래 하면 할머니 가슴이 된다', '분유가 영양설계도가 더 뛰어나 배불리기 좋다', '분유를 먹으면 애가 순하다' 등 나열할 수 없는 근거없는 이유들로 지인들은 장기 모유수유를 적극 반대했다.
아기를 출산하면서 엄마가 된 것처럼, 아기가 젖을 찾으니 그저 물렸다. 엄마의 본능이랄까. 아기는 젖을 물면서 거친 세상 속에서 안정감을 얻었고, 나는 그런 아기를 보며 매일 황홀감을 느꼈다. 이것을 중단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하루하루 커가는 아기는 행동 반경도 점차 넓어졌고, 매일 다양한 맛을 씹고 즐겼다. 모유가 맛있을리 만무했다. 자주 빨던 젖을 가끔씩 찾기 시작했고, 나도 이제는 제법 큰 아기가 어린이처럼 느껴졌다. 생후 30개월 무렵쯤이었다. 둘째 아기는 생후 6개월차였다. "1호야, 이제 쭈쭈는 동생 물려주자. 1호는 우유, 과자, 아이스크림, 고기처럼 맛있는 음식을 다 먹을 수 있는데, 동생은 쭈쭈만 먹을 수 있거든. 동생이 쭈쭈 많이먹고 쑥쑥 클 수 있게, 그럴 수 있지?" 그렇게 첫 아기는 쭈쭈와 작별했다.
셋째 아기까지 30개월씩의 수유 대장정이 끝났다. 여성으로 태어나 '가슴'에 대한 역할만은 아주 충실히 임한 것이다. 육아에서 가장 기쁜 순간이 언제냐고 물어본다면, 그 중 하나는 모유 수유의 황홀감이다. 그만큼 아기에게 젖을 물리고 교감하는 그 순간은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웠다. 모든 순간이 아름다웠다고 하면 그것은 거짓말이다. 아기의 울음 소리가 들리면 수도꼭지에서 물이 세어나오듯 젖꼭지에서 젖이 흘러나왔다. 손수건을 젖꼭지에 대지 않은 밤이면 침대 패드까지 젖기 일쑤였다. 처진 젖가슴은 모유수유에 대한 표창이라지만, 운동을 하니 그 표창마저도 희미해진다. 힘든 순간을 감내할만큼 세 번의 30개월이란 시간들은 찬란했다. 모유는 엄마만이 누릴 수 있는 아기와의 교감이다. 출산 과정을 거친 여자만의 특권이다. 수유는 끝났지만 이따금씩 그때의 찬란함들을 꺼내며 위로받고, 지난 행복을 들춰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