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만이 아닌 출산

찬란한 자연주의 출산의 기록

by 아리스

조금 이른 나이에 결혼을 했다. 만 나이가 개정되었으니 25살에 결혼했고 이듬해 아이를 낳았다. 허니문으로 생겨난 아이를 확인하기 위해 산부인과에 갔고, 성별을 확인하기 위하여 그리고 조산원에서 요구하는 산모 건강 검진 자료를 받기 위하여 두어 차례 간 것이 병원 내원의 전부였다.


임신과 출산은 질병이 아니라는 생각은 임신 전부터 흐릿하게나마 내면에 자리 잡고 있었다. 요가 지도자이기도 했지만 임신 중에도 하루 4시간은 수련을 했고, 당시 요가원의 원장님께서 '자연주의 출산'이라는 생소한 출산 법을 넌지시 알려주셨다. 몇 개의 자료를 찾아보다 말고 집 근처의 조산원을 알아보았다. 다음 날, 집과 가까운 조사원에 갔고 그렇게 조산원은 제2의 친정이 되었다. 자연주의 출산을 하기 위해 산모는 임신 초기부터 위대한 출산을 위한 교육을 이수해야 한다. 교육을 들으러 간 조산원은 내내 머물고 싶을 정도로 포근하고 편안했다. 사랑에 서툴렀던 나보다 조산원 원장님은 내 뱃속의 작은 생명을 아껴주셨다.


산달을 앞둔 주간 남산처럼 부푼 배는 뭉치는 횟수가 잦아졌다. 배가 뭉칠 때면 하던 행동과 말들을 멈추고 눈을 지그시 감는다. 내면의 호흡에 집중하면서 보다 긴 호흡을 이어간다. 어느새 뭉친 배가 사르르 풀린다. 자연주의 출산을 하려면 정말 '죽을 것 같을 때'까지 참다가 조산원으로 오라고 하셨던 원장님의 말씀이 생각나서 그냥 참았다. 처음 겪는 고통이었고, 강도가 높았지만 죽을 것 같진 않았으니 그저 참았다.


밤이면 수축의 강도는 강해지고 간격은 좁아졌다. 부러 남편을 깨우지 않고 코 고는 남편 옆에서 나 혼자 이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는 생각에 울다 보니 날이 밝았다. 낮에는 좀 참을만했고 잘은 모르지만 오늘은 조산원에 가야 할 것만 같았다. 미리 챙겨놓은 출산 가방을 점검하고 집을 깨끗이 치웠다. 아픈 배를 움켜 잡고 운전을 해서 간 조산원에서 처음 내진을 했다. 원장님들은 환호를 지르며 잘 참고 왔다며 칭찬해 주셨다. 회음부 입구가 7cm 열려있어서 오늘 중으로 아기는 나올 거라고 하셨다. 남편과 양가 부모님께 연락을 드리고 곧 엄마가 된다는 소식과 계속되는 진통에 정신이 반쯤 나가있었다.


진통은 그 뒤로도 계속되었지만 수축 주기가 아닐 때는 밥도 먹고, 수다도 떨 만큼 생명을 기다리는 시간은 꽤 즐거웠다. 밥을 먹거나 대화 도중 불시에 오는 수축에는 입과 눈을 닫고 호흡이 가빠지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그렇게 거대한 통증은 밀물처럼 왔다가 썰물처럼 지나갔다. 하복부에 강렬한 통증은 이내 무언가를 배출하고 싶은 통증으로 바뀌었다. 원장님들은 입구가 다 열려서 이제 출산을 하면 되겠다고 하셨다. 산모인 나에게 끊임없이 컨디션과 의견을 물어보셨다. 내가 편한 대로 체위와 장소를 바꿔가며 여러 번 힘주는 시도를 했다. 힘을 주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웠고 자신감은 점점 결여되었다. 오로지 나 혼자 해야 한다는 부담감과 몇 번의 실패가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그럴 때마다 원장님들은 격려와 응원을 아끼지 않으셨고 비로소 출산 의자에서 다리 사이로 따뜻한 무언가가 나오는 것이 느껴졌다.


배는 조금 편안해졌고 따뜻한 것은 아이의 얼굴이었다. 열상을 줄이기 위해 나는 포근한 이불이 있는 곳까지 그대로 걸어가 누웠다. 마저 힘을 주니 아이는 온전히 세상 밖으로 나왔고 이내 내 가슴에 안겼다. 탯줄은 태반의 움직임이 멈출 때까지 자르지 않았으며 아기를 씻기거나 격리하는 어떠한 조치도 하지 않았다. 나는 출산 4시간 후 걸어서 조산원을 나왔고, 택시를 타고 집으로 갔다.


그렇게 만난 아이에게 내 모든 걸 빼앗겼다. 내가 아닌 타인을 이렇게 사랑할 수 있다니. 모성이라는 것은 처음 겪어보는 초월적인 사랑이었다. 이후 2년 주기로 생겨난 두 명의 생명 또한 자연주의 출산으로 만났고, 세 명의 아이들은 각자의 고유한 빛을 내는 고귀한 숨결이다. 출산은 엄마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나는 또 다른 세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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