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를 온전히 안아줄 수 있는 시간은 생각보다 짧았다.
'언제쯤 통잠 자나요?', '육아 언제쯤 쉬워지나요?', '언제쯤이면 엄마를 찾지 않나요?' 육아 카페에는 초보 엄마들의 궁금증으로 빼곡하다. 그녀들은 마치 육아라는 복무에서 전역할 날만을 기다리는 전사와도 같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생의 마지막까지 평생 하나의 이름으로 사는 것처럼 출산한 여성은 엄마라는 또 하나의 이름이 생긴 것이다. 퇴근도, 전역도, 해방도 없는 평생 지녀야할 직함이다. 아기가 유년 시절을 지나고 나면 육아에서 해방될지언정 또 다른 고민과 시련은 늘 다른 모양들로 다가온다. 친구, 성적, 학교, 학원, 사춘기, 수능, 대입, 취업, 연애, 결혼에 비하면 통잠과 수유에 대한 고민은 비교적 가벼워 보인다. 그나마 육아 시절에는 귀엽고 앙증맞은 아기라도 있지 않은가. 사람은 평생의 예쁜 짓을 영유아 시절에 다 한다고 하니, 사춘기 자녀가 예쁘지 않은 것은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육아는 하나의 생명과의 끝없는 공생인 것이다. 그것을 '희생'이라고 치부한다면 육아는 노동 그 이상의 괴로움으로 다가올 것이다.
태중에 아기가 탯줄로 엄마와 연결되어 있었던 것처럼 '엄마'라는 이름은 세상 밖으로 나온 아기와 나를 유기적으로 연결시켜 준다. 내 이름으로 삶을 살아갈 땐 가볍게 여겨졌던 일들이 '엄마'의 이름으로 살아갈 때는 더 무게감이 있는 이유도 바로 그것이다. 더는 눈에 보이지 않는 탯줄로 연결된 '내 아이'라는 존재로 더 진중한 삶을 살아가게 된다.
나는 산달까지도 아기를 좋아하지 않았다. 아기들은 시끄럽고, 지저분하고, 이기적인 존재라고 느꼈고 솔직히 예쁘지 않았다. 당시 노키즈존 문화가 국내에 도입되지 않았지만, 나는 아이들이 많은 식당이나 카페는 꺼려했다. 아기를 예뻐해 본 적이 없는 내가 허니문으로 아기를 갖게 되자 고민이 된 것은 사실이었다. '이런 내가 진정 아기를 예뻐할 수 있을까?'
고민은 출산의 고통으로 상실이 되었을까. 산도를 갓 빠져나온 아기를 보자마자 나는 사랑에 빠져버렸다. 누구를 진하게 사랑해 본 적이 없는 내가 미숙하고 작은 핏덩이에 온 마음을 빼앗겼다. 태지가 얼룩덜룩 묻어있고 시뻘건 생명이 어디가 그렇게 예쁘다고 첫눈에 반해버린 것이다.
아기는 내가 안아주는 것을 좋아했다. 세상 떠나갈 듯 울다가도 엄마가 안아주면 거짓말처럼 뚝 그쳤다. 아기의 새근새근 숨소리와 입에서 풍겨오는 달큼한 젖냄새는 나를 취하게 만들었다. 안아주면 손탄다는 어른들의 말씀이 귀에 들어올 리가 만무했다. 세상모르고 자는 작은 생명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이것이 행복이구나 싶었다. 무엇보다 소중한 이 존재가 내가 안아주는 이 사소한 행위를 좋아한다니, 아기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다 해주고 싶었다. 아기를 안아주는 것은 많은 돈이 드는 것도 아니고, 대단하게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아주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우는 아기를 내던질 만큼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잠든 아기를 침대에 눕히면 아기는 꼭 울었다. 길어야 30분도 못 자는 아기는 울음으로 자신의 존재를 알렸고, 나는 아기를 다시 어르고 달래서 재워야 했다. 인터넷에 정석처럼 나와있는 다양한 방법과 친정 엄마가 전수해 주신 전통적인 방법으로 여러 차례 시도를 안 해본 것은 아니었다. 잠든 아기의 등과 배를 엄마의 품과 비슷한 폭신한 쿠션들로 대체했지만 아기는 감쪽같이 알아차렸다. 태중의 소리와 비슷한 백색 소음도 소용없었다. 엄마의 젖꼭지와 유사한 모양의 공갈 젖꼭지도 무용지물이었다. 여러 번의 시도 끝에 아기의 울음은 좌절이었다. 차라리 잠든 내내 아기를 안고 있는 것이 심적으로 편했다. 엄마밖에 모르는 아기에게 일방적인 가르침인지 방임인지 구별되지 않는 수면교육 따위는 필요 없었다. 엄마의 사랑을 갈구하는 아기에게는 엄마의 품과 사랑이면 그만이었다.
포대기로 아기를 들춰 업으면 거의 모든 집안일을 할 수 있었다. 설거지, 음식 준비, 빨래 개키기, 청소하기 심지어 화장실 볼일 보는 것과 식사까지 가능했다. 아기띠로 아기를 가슴에 앉으면 등을 대고 앉아서 쉴 수 있었다. 아기띠가 어깨를 조여 오면 포대기를 사용했고 포대기가 허리 통증을 옭아매면 아기띠를 활용했다. 그래도 이것저것 하기에는 전통의 포대기가 승자였다.
누워서 팔다리만 휘적이던 아기는 어느새 뒤집고, 앉고 기어 다녔다. 자신의 신체로 곳곳을 누비고 다니니 왕성한 활동성은 아기에게 고단함을 선사했다. 자연스레 그 무렵에 아기는 잘 자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생후 7,8개월 무렵, 일명 '등센서'가 꺼진 것이다. 길지 않았다. 아기를 내내 품에 안고 있는 시간은 예상보다 빠르게 지나갔다. 당시 유행하던 수면 교육은 나에게 마치 '아동 학대'처럼 다가왔다. 때가 되면 알아서 잘 자게 될 것을 목청껏 소리 높여 엄마를 찾는 핏덩이를 모르쇠 하다니, 잔인했다.
일명 통잠이라고 하는 밤부터 아침까지 깨지 않고 푹 자는 시기 또한 언젠간 찾아왔다. 흔히 100일의 기적이라고 불리는 시기가 나에겐 첫 돌에 찾아왔다. 그러나 이 통잠 또한 잠깐이었다. 기저귀를 빨리 뗀 아기는 새벽에 한 번씩 화장실에 가서 소변을 봐야 했다. 16개월부터 새벽 두세 시쯤 번쩍 기상하여 화장실에 아기를 데려가야 했다. 누워서 젖을 물렸던 나는 새벽 수유보다 새벽 소변 시중이 더 힘들었다.
육아가 어려운 것은 분명하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비로소 알게 되었다. 세상에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나 자신 만이라는 것을. 최소한의 권리인 수면도 보장받을 수 없고, 아기는 엄마의 화장실 용무도 허락하지 않는다. 뿐만 아니다. 샤워를 비롯하여 식사까지 기본적인 생활 습관들을 모두 무너뜨린다. 젖먹이 시절에는 아기가 틈을 줄 때마다 음식을 입으로 마구 욱여넣었다. 언제 또 틈이 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평생 음식을 하나의 유희로 즐겼던 내가 살기 위해서 처절하게 음식을 섭취했다.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고 한 아프리카의 속담처럼 아이를 키우려면 많은 손이 필요하다.
철저히 나를 위한 삶을 살다가 제 몸도 가누지 못하는 아기만을 바라보는 삶은 당연히 고난의 연속이다. 그러나 시간은 분명 지나가고 아기는 하루가 다르게 커간다. 지나고 보니 아이들은 정말 훌쩍 커버렸다. 양육은 현재 진행형이지만 그 시절의 미숙해서 예뻤던 젖살 가득한 아기는 사진첩에서나 볼 수 있다.
순간을 아기에게 최선을 다했기에 훗날 그때를 웃으며 추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사랑을 가득 받은 아이는 빛나는 눈과 따뜻한 가슴을 가지고 성장할 것이다. 힘들어도 기억해야 할 것은 아기의 세상에는 엄마가 전부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