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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리스 Sep 14. 2023

7살에 유치원에 처음 간 아이

세 자녀의 가정보육 장기전

 어린 시절에 무엇보다 우선시 되어야 하는 것은 정서적 안정이다. 특히 3-4세 이하의 영유아들에게는 부모와의 정서적인 접촉이 인격 형성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너무 빨리 부모 품에서 떨어질 때 아이가 느끼는 상실감과 불안은 그 어느 것으로도 충족될 수 없다. _<현명한 부모는 아이를 느리게 키운다>, (신의진 저) 중






 둘째 아이를 7살에 첫 사회인 유치원에 보냈다. 주변에서는 의아해한다. 현대사회에서 좀 유별나게 비치는 나의 양육법을 위대하다고 생각하는 시선이 있는 반면 혹자는 아이가 불쌍하다고 하기도 한다. 나는 주위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느지막이 기관에 보낼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아이가 자라나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니 일찍이 교육기관에 보낼 수 없었다. 아이는 생각보다 잘 해내지만, 양육권자와 분리되어 사회에 보내기에는 아직 미숙하다 느꼈다.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건, 배움이었다. 이른 나이에 교육기관에 가서 그들이 배우는 것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인가? 흔히들 사회화를 위해 조기 교육기관에 보낸다고 한다지만, 난 생각이 달랐다.


 사회화(socialization)는 인간이 그가 속한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성장해 가는 과정, 즉 공동체의 언어, 사고방식, 역사, 공동체 안에서의 생존과 발전에 필요한 생활습관, 다른 구성원들과의 관계를 규제하는 도덕적 규범들을 학습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내는 것을 의미한다. 개인은 다양한 잠재적 성향을 지니고 태어나지만 성장 과정에서 사회의 다른 구성원들과 적절한 교류를 갖지 않는다면 타고난 성향도 잠재된 채로 남아 있거나 소멸하고 만다. _네이버 지식백과 중


  쉽게 말해 공동체 안에서 지켜야 할 도덕적 규범을 학습하는 것이 사회화라 할 수 있겠다. 늦게 유치원에 간다고 습득할 수 없는 어려운 것은 결코 아니었다. 더군다나 우리는 두 살 터울로 세 명의 아이가 있었기에 그 무리에서 배우는 사회화 과정도 분명 있다고 확신했다. 나는 무엇보다 애착을 선택했다.




 


 아이들은 깨우지 않아도 이른 아침이나 새벽녘에 일어났다. 거실은 장난감이나 전자기기가 없어 자칫 심심할 수도 있지만, 책장의 빼곡한 책들 사이에서 그날의 책을 꺼내 그림을 본다. 아이들이 원하면 권수에 상관없이 책을 읽어주었다. 한창 재독에 빠져있을 때는 같은 책을 수 십 권 반복했지만 결코 먼저 "그만!"이라고 외치지 않았다. 책과 친하게 지내길 바랐던 내 사심이 깊숙이 박혀있었기 때문이었다. 책을 읽고, 아침식사를 했다. 아침을 먹은 후 우리는 예약해 둔 관람이 있는 날이면 박물관으로 향했다. 예상 관람 시간이 1시간 남짓인 박물관에서도 우리는 하루 온종일 놀았다. 빨리 가자고 재촉하지 않았다. 아이들이 가자고 할 때까지 즐길 수 있게 기다려주었다. 어느 뜨거운 여름날에는 박물관 관람은 제쳐두고 박물관 앞 산책로에서 곤충 채집만 수 시간 한 적도 있었다. 땅거미가 내려앉을 때 우리는 집으로 가 샤워를 하고 저녁식사를 했다. 졸린 눈을 비비며 그림책을 가져온 아이들은 서로 읽어달라고 야단이다. 아이들은 그림을 보고 나는 글씨를 실감 나게 읽으려 노력했다. 잠자리 독서 시간은 성인이 돼서도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라고 기억되리라.


 나는 늘 고민한다. 아이들과 어느 곳에 가서 어떤 멋진 하루를 보낼까, 아이들에게 무엇을 보여줄까. 내 고민은 어쩌면 부질없었는지도 모른다. 아이들은 한 여름 집 앞의 매미 허물만 가지도고 한 참을 놀고, 가을이면 떨어진 낙엽과 도토리를 주워 모아 그들만의 놀이에 흠뻑 빠지기도 한다. 겨울에 눈이 소복이 쌓인 날이면 그 어떤 것도 필요 없다. 따뜻한 봄 날엔 떨어지는 꽃 비를 맞으며 산책만 해도 까르르 웃음꽃이 번진다.


 현재 아이들은 모두 교육기관에 다닌다. 아이들을 끼고 살았던 그 시절이 그립기도 하다. 시간에 구속받지 않으며 어딜 가나 한적했던 장소에서 아이들과 나누던 교감. 지겹도록, 지치도록 놀아도 또 놀았던 그 시절에 나는 아이들의 웃음꽃을 보여 진정한 행복을 느꼈다.







 사실 둘째 아이(이하 2호로 명칭)를 6살에 처음 유치원에 보냈었다. 등원한 첫날부터 엄마와의 분리를 힘들어했던 2호를 오랫동안 지켜볼 수 없었다. 등원 5일 차 퇴원신청서를 제출하고 다시 가정보육을 택했다. 그렇게 일 년을 더 끌어안고 살았다. 그 시간 동안 더 없는 사랑을 주었고, 아이는 성장했다. 일 년이 지난 뒤, 그 유치원에 2호는 재입학하여 7살의 첫 사회생활을 즐기고 있다. 결과는 성공적이다. 2호는 처음으로 사귄 친구들과 따뜻한 선생님의 지도를 꽤 좋아한다.


 1호는 6살에 처음 사회로 보냈고, 그의 기질상 잘 적응했다. 코로나로 유치원을 주 2회밖에 가지 못했던 시절의 1호는 유치원을 더 가고 싶어 할 정도로 유치원을 좋아했다.


 2호와 두 살 터울인 3호는 현재 5살로 유치원에 보내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2호의 성공적인 원 생활에 힘을 실어주고자 2,3호를 같이 올 초에 입학시켰더란다. 내향적인 2호는 3호와 손잡고 가는 등원길이 좋았다. 오빠지만 동생에게 의지하며 유치원에 가는 것이 보였다. 유치원에 보낼 마음이 없었기에 3호의 등원은 조금 서운하지만, 기특하기도 하다. 여전히 3호는 퐁당퐁당 등원하지만 현재까지 잘 다니고 있다.


  아직도 아이들은 어리고 사교육 기관에는 보내지 않으니 정오가 지난 뒤 하교와 하원을 한다. 하루 내내 시간을 사용하며 놀았던 지난날에 비하여 턱 없이 부족한 시간이지만, 토막 난 시간을 활용해서 노느라 바쁜 일상이다.


 우리의 행복은 현재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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