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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별난 Mar 14. 2024

Track 03. 미러라

세상 밀기 주문~♬


지난 이야기- 원재료를 창고에 정리하는 자재팀의 이야기


조리 전

다음 공정은 조리실이다. 여기서부터의 위생은 음식의 질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준다. 위생수칙 강도는 높아지고 실내 온도는 낮아진다. 도마, 칼, 앞치마의 색을 다르게 구분하여 사용한다. 이번에 소개할 부서별 작업자들은 원재료의 이상유무를 확인하며 자재에 위치한 냉동창고와 냉장창고에서 재료를 가져오는 업무로 하루를 시작한다. 본격적으로 음식을 만들기 전 재료를 준비하는 곳다.  부서들은 조리실의 테두리 쪽에 위치하며 자재와 인접해 있다. 조리실은 내가 물 만난 물고기처럼 활동하는 무대이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일단 물이 좋다. 남성이 주를 이루는 자재와 달리 여성의 비율이 높다. 여기서 좋은 물의 흐름 4가지를 갖춘다.


물의 흐름 #01

정화되어 흐른다


1. 정제수: 물에 함유되어 있는 용해된 이온, 고체입자, 미생물, 유기물 및 용해된 기체류 등 모든 불순물을 제거한 물 (출처:위키백과)

2. 전해수(전기분해수): 수돗물이나 지하수 등의 일반적인 물에 전기적인 힘을 가해서 얻어지는 물 (출처:네이버 지식백과)

3. 주정: 증류를 통해 얻은 거의 순수한 에탄올(출처:나무위키)

4. 유수(流水): 흐르는 물


소독, 살균, 미생물 번식방지 등 각각의 용도와 쓰임에 맞게 사용한다.


양심의 고민 #01


공장구역을 위생기준으로 분류하면 일반(오염) 구역, 준청결구역, 청결구역으로 나뉜다. 자재는 일반구역이고 조리실은 준청결구역이다. 조리실과 자재는 문을 사이에 두고 연결되어 있다. 이 문은 원재료를 가지러 갈 때  사용하는 문이지 조리실로 들어오는 문이 아니다. 들어오는 문은 따로 있다. 자재에서 뜯은 종이박스의 종이가루와 여러 가지 오염물질이 청결구역으로 넘어오면 안 되기 때문이다. 청결구역에서 일반구역으로 나갈 순 있어도 일반구역에서 청결구역으로는 못 넘어온다. 준청결구역과 청결구역도 마찬가지이다. 넘어오려면 다른 길로 돌아가야 한다. 현장으로 올라오는 모두가 평등했던 길의 마지막 공간에서 위생복을 롤러질하고 주정으로 소독해야 한다. 창고에서 가져온 것들 중 밀봉포장된 원재료들은 전해수로 소독, 살균처리를 한다. 야채는 야채실 소독, 세척 과정을 거친다. 최대한 오염의 확률을 줄이려면 이렇게 해야 한다. 넘어가면 안 되는 이 문 앞에서 내 양심은 고민한다. 귀찮다. 바쁘다. 일이 지연된다. 그냥 들어갈까? 시간이 걸려도 돌아갈까?


물의 흐름 #02

물 흐르듯 흐른다


물이 흐르는 곳이다. 세월이 유수와 같이 흘러 그의 눈가에 주름이 인자하게 흐른다. 이곳에 자연을 사랑하는 형님이 있다. 이 형님은 산을 좋아하고 식물을 좋아한다.  언젠가 폰에 저장된 사진을 보여주는데 산에서 찍은 사진, 약초 사진, 담금주 사진이 화면에 가득하다. 자연을 좋아하며 물 흐르듯 지내는 모습이 자연인이라는 표현이 어울린다. 사진을 보여주는 내내 행복한 미소가 끊이질 않고 추억 속 얘기는 끝나질 않는다.  지쳐서 파이팅을 얻고 싶을  타잔을 찾아가고 따뜻하고 편안함을 얻고 싶을 땐 자연인을 찾아간다.


양심의 고민 #02


그의 주된 업무는 솥과 오븐에서 조리할 육류와 기타 냉동제품들의 해동이다. 냉장해동 및 유수해동을 담당한다. 그는 고기를 박스에 담고 쌓고 민다. 그 고기량이 하루 수백 kg 달한다. 유수해동기에 제품을 해동하며 시간을 재고 온도를 확인한다. 품질을 보존하고 미생물이 발생 안 하도록 하는 해동기계라 보면 된다. 더불어 냉장해동까지 병행한다. 해동이 완료된 원재료를 다음 공정으로 밀어주기도 한다. 예전에 이곳을 지원 나갔을 때 내 양심은 고민했다. 일을 빨리 처리하기 위해서, 어쩌다 지원 나온 건데 뭐. 뜨거운 물로 해동할까? 말까?


물의 흐름 #03

가끔 조연이 되어 흐른다


탁탁 탁탁. 야채실이다. 그 힘들다던 하루종일 칼질이다. 이곳은 타잔의 그녀인 제인이모들 서식지이기도 하다. 그녀들이 혹여나 복수를 마음먹으면 킬빌의 여주인공 칼질 뺨칠 것이다. 내가 후속작을 만든다면  칼비일의 주인공 배역 확정이다. 그녀들의 칼질에 모든 게 베일 수 있다. 그녀들 역시 자재를 가서 수백 kg 냉동당근채, 양파채, 양상추 등을 가져온다. 가만 보니 자재타잔 형님은 칼에 베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도와주고 있던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타잔형님 이번 편에선 조연이 되어주오. 그녀들이 주인공 확정이니.' 내 생각을 들었는지 타잔형님 왈. "칼 끼워 넣어. 칼 빼지 마. 칼에 나 오줌 쌀 거 같아. 폭포 터지면 큰일 난다고." 함성 소리의 본딧말은 이런 뜻이었던 거 아닌가 싶다. 타잔은 제인이모들의 칼솜씨가 무서웠던 거다. 그리고 도망쳤는데 나와 장실에서 만났던 거다. 쏴아아 아아아~. 가만 보니 남자가 낼 수 있는 소리가 아니었다.  남자 한계를 넘은 데는 이유가 있었다. 난 그것도 모르고 그의 식생활을 관찰했단 말인가.


양심의 고민 #03


가져온 야채를 칼로 썬다. 기계로 썰어내는 야채도 있다. 야채의 소독 세척도 담당한다. 이 물 칸에서 저 물 칸으로 이동하고 이동하며 몇 차례를 소독, 세척하게끔 하는 기계도 다룬다. 물기를 탈수하는 탈수기계까지 사용한다. 자신의 몸보다 책임이 먼저라 급하게 서두르다 기계에 다치는 경우를 종종 봤다. 몸을 아꼈으면 좋겠는데 그녀들은 후속 주연들이라 그런지 직업의식이 장난이 아니다. 칼베일 각오를 하는 듯하다. 후속제목을 [책임의 칼] 수정해야겠다. 야채실에 지원 나간 적이 있다. 내 양심은 고민했다. 가져온 야채에 이상이 있다. 보고해야 한다. 또다시 가져와야 한다. 번거롭고 힘들다. 그냥 할까? 절차를 밟고 다시 가져올까? 


물의 흐름 #04

실수는 도미노가 되어 흐른다.


이곳은 계량실이다. 중량이 가벼운 조미료들과 소스양념을 다룬다. 그런데 손목이 다칠 수 있는 부서다. 그 주범은 전용유(식용유 퀄리티 향상을 위해 만든 유)와 참기름이다. 20kg 육박하는 이 통들을 하루종일 들었다 놨다 해야 한다. 만만히 봤다간 손목이 작살난다. 그리고 덧셈 뺄셈까지 숫자를 꼼꼼히 다뤄야 하는 부서다. 레시피가 기재되어 있는 작업지시서에 적힌 수치를 저울계량을 해야 한다. 자칫 멍 때리다 g과 kg의 환산실수 시 캐러멜 색소 0.1kg을 1kg로 준비한다. 적은 확률로 솥 작업자마저 멍 때리다 조리하게 되면 시커먼 고기가 되어 조리된다. 이 경우 육안으로 판별하는 작업자들을 계속 거쳐야 하기에 상품으로 나가진 않지만 폐기처분을 대기하여야 한다. 그로 인해 자연인 형님은 자재 정글을 또 다녀와야 한다. 조리재료에 야채도 포함된 제품이라면 제인이모도 다녀와야 한다. 그리고 타잔형님은 화장실을 다녀와야 한다. 쏴아아 아아아~. 그러나 소금이거나 설탕이면 얘기가 달라진다. 다음 작업자가 멍 때려 조리하는 순간 상품으로 나갈 확률이 높아진다. 죄 없는 고객들이 최종확인자가 된다. 클레임 담당 관리자는 시동을 걸어야 하고 작업자는 경위서를 써야 한다. 


양심의 고민 #04


입사하고 이 부서에서 일했다. 손목터널증후군 증상으로 몸은 망가졌지만 마음의 회복을 하였던 곳이라 남다른 애정이 있는 부서이다. 아직도 손엔 후유증이 있지만 마음은 다행히도 치유되었다. 지난날 내 양심은 고민했다. 중량을 잘못 맞췄다. 여기는 혼자 일하는 부서이다. 아무도 안 본다. 어차피 솥에 들어가 가열처리되면 증거인멸이다. 솥에 밀어줄까? 보고하고 다시 만들까?


양심의 거울-선택

[가]할까?[나]할까?


[가]면 흘러들어 간다

[나]로부터 시작된다


살아가면서 선택의 기로가 늘 온다지만 타인에게 실수의 결과물이 흘러들어  때가 있다. 가, 나의 선택에서 [가]로 가면 이런 상황이 나올 수 있다. 몰라서 선택했든 알고도 선택했든 그로 인해 결괏값이 같을 때가 있다. 실수가 드러나지 않는다 해도 누군가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 최종확인자의 눈에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 그곳에 내 양심이 함께 있다. [가]로의 선택은 가면을 벗고 양심을 드러내야 한다. [나]로의 선택은 나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바쁘다는 핑계. 귀찮다는 핑계. 온갖 핑계를 대며 합리화의 논리를 계획해 놓을 때가 많았다. 고기가 물어보고 야채가 물어보고 양념이 온종일 물어본다. 할까? 말까? 마녀의 속삭임은 늘 들린다. 거울은 진실을 말해주고 마녀는 독사과를 준비한다. 백설공주를 해칠 계산된 논리를 세운다. 우리에겐 이 거울과 같은 양심이란 것이 있다.


[가]면을 벗고 양심을 지키자

[나]를 사랑하고 아끼자


누군가 해칠 마음도 없고 눈에 보이는 피해도 없다고 생각하여 가볍게 한 행동들을 돌아본다. 양심의 거울을 깨면 거울파편에 내 양심이 긁히고 찢어질 수 있다. 실수는 금일 수 있다. 실수를 통해 배우고 인정한다면 실금은 다시 붙어 더 단단한 양심이 될 것이다. 깨지는 경우까진 만들지 말자. 양심은 거울이라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 타인의 눈과 세상에 펼쳐진다. 그렇게 양심은 세상에 비친다. 결국 내가 날 바라보는 데로 세상은 날 바라본다. 내가 날 존중하고 사랑해야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내가 바뀌면 세상이 바뀌는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가 밀어줄 이 세상에 사랑하는 자식들이 살 것이다.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것 못지않게 자식은 손주를 사랑할 것이다. 이 세상을 그들의 세상으로 아름답게 밀어주는 방법에 양심 바라보기가 있다. 내 양심이 깨지면 캐러멜에 시커멓게 된 고기처럼 주변의 에너지를 소모시킬 수 있다. 다시 조리되기 힘든 상태까지 가지 않도록, 시커먼 양심이 되지 않도록, 나란 원재료가 다치지 않도록 아끼자. 신선도를 유지하고 양념도 잘해서 다음 공정으로 밀어주자. 원재료가 잘 준비 됐다. 이제 조리 시작이다.


♬행복할 주문 노래


Track 03. 미러라 (feat. 세상 밀기 주문)


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


굳이 그걸 묻는다고?


양심아~ 양심아~ [가] or [나] 선택에서

너는 무얼 고르니?


[굳이 가]를 선택한다고?


양심아 양심아

고개를 들어라

드러내지 않으면

시커먼 못난이


양심이 미러라

거울에 비친다

세상에 비친다


고개를 숙여서

피해를 주나니

실수를 인정해

실금붙여


양심아 양심아

두려워 말아라

용기내어 행하면

새하얀 멋쟁이


보는눈 없어도

양심은 보나니

세상에 비친다


자식들 본받아

손주들 배우니

후손들 따르고

예쁘게 밀린다~


다음 이야기- Track 04. 올려라


주변에 감기 걸린 분들이 많이 보이네요. 환절기 건강관리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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