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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을 보내는 법

#봉사활동

by 온호

토요일마다 봉사활동을 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오늘 봉사활동을 했다는 것도 아니다. 오늘은 봉사활동 모임에서 도예와 베이킹 중에 하나를 하라고 해서 나는 휘낭시에를 만들러 다녀왔다는 것에 대한 이야기다.


아침에는 평일과 똑같이 알람이 울리기 5분 전쯤에 저절로 눈이 떠져서 일어났다. 4시간 잤기 때문에 안 그럴 만도 하지만 내 몸은 주로 이런 편이다. 아침 루틴을 조금은 불성실하게 적당히 수행한 다음 웹툰을 보다가 밥을 먹었다. 그리고 맨몸 운동을 조금 하고 샤워를 했다. 큰 누나 생일 기념으로 남매들이 모여서 식사를 하기로 했기 때문에 주말 치고는 일찍 샤워를 한 편이었다.


광화문 쪽에서 만나서 다들 배가 많이 부르도록 먹고 나왔다. 그리고 경복궁 산책을 했다. 전 날 둘째 누나와 대차게 싸우고 온 바람에 반항기를 잔뜩 머금고 있는 만 4살짜리 조카 주의를 돌리느라 나는 산책하는 동안 로봇이 되었다. 뭔가를 금지시키고 통제하는 거보다는 에너지를 다른 곳으로 돌리는 게 더 나은 방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조카의 기분과 태도가 달라지는 걸 남매 모두가 느낀 걸 보면 분명히 이 쪽이 효과가 좋다. 그래서 사람은 일단 체력이 좋고 볼 일이다.


그러고 나서 나는 누나 세 명과 여동생 부부 무리에서 먼저 떨어져 나와 베이킹을 하러 갔다. 같은 조는 아니지만 함께 봉사활동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는 분들 세 분과 담당자분이 먼저 와 계셨다. 곧바로 입장해서 인사를 하고 체험을 진행했다. 원데이 클래스는 전체적으로 부정적인 인상을 많이 받았다. 강사님은 절대로 친절하거나 다정하다고는 할 수 없는 태도를 보였고 오히려 수강생들에 대해 적대적이라고까지 할 수 있는 스탠스를 취하고 있었다. 그런 스탠스는 클래스 운영 방식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었다. 아마도 운영하는 동안 여러 가지 많은 어려움들을 겪으면서 수강생들에 대한 불신이 깊어진 듯 보였다. 인간에 대한 기대 자체가 완전히 꺾인 것 같아 보일 정도였다. 상황이나 환경의 제약도 있어 보였지만 강사님은 거의 닭모이 주듯 우리를 다뤘다.


그런데 놀랍게도 정작 내가 크게 불쾌감을 느낀 부분은 강사님이 아니었다. 강사님에 대해서는 '안 됐다'는 느낌이 주를 이뤘다. 불쾌감을 느낀 부분은 나와 같은 테이블에서 휘낭시에를 만드는 봉사활동 참여자 분들이었다. 세 명 중 두 분이 시종일관 강사의 이야기를 잘 듣지 않을뿐더러 그래서 그런지 클래스 주의사항으로 여러 번 강조되어 안내된 것들의 많은 부분을 몸소 시연하셨다. 내가 이런 타입의 사람들을 혐오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은 이런 문제에 대해 내가 완전히 무심해지고 자유로워지는 것과는 별개의 차원이다. 나는 그분들에 관해 무심할 수 없었다.


남 얘기 잘 듣고 있는 게 원래 제일 힘든 일이긴 하지만, 그런 사람들에 대해 강사님이 더 좋은 방법으로 적응하지 못한 결과로 오늘의 수업 방식과 태도가 탄생했다는 걸 짐작할 만은 했다. 그래서 나는 강사님에 대해서는 친절하고 유쾌한 수강생이, 일행에 대해서는 다정하고 섬세한 보조 강사가 되기로 했다. 어쩌다 보니 휘낭시에 원데이 클래스만 이번이 네 번째였기 때문에, 또 타고난 성격 장점 때문에 그게 가능했다.


클래스가 슬슬 정리될 때쯤 결국 내 왼쪽에 앉아 계시던 분은 "선생님이 너무 근엄하셔서 무서웠어요"하고 강사님에게 완곡하게 불만을 표출하셨다. 나이가 많으시다 보니 딸뻘 강사를 굉장히 신사적으로 꾸짖는 느낌이었다. 강사님의 태도는 서비스업 종사자에게 용납돼서는 안 되는 태도였기 때문에 공감이 되었다. 그러면서도 "네 마음만 있냐 내 마음도 있다"를 떠올렸다. 상대를 개별 영혼으로 존중하지 않는 사람이 자신을 개별 영혼으로 존중하지 않는 사람을 빚는 것인데. 사람들은 아주 어릴 때부터 겪게 되는 "네 마음만 있냐 내 마음도 있다" 문제에 대한 답을 고민하지 않는 것일까? "그럼 선생님은 왜 강사님한테 그렇게 하셨어요?"라는 말을 상상에서조차 조심스럽게 말해 볼 뿐이었다. 추론 능력이 뛰어난 AI 일수록 이기적인 선택을 한다고 하니 어쩌면 "네 마음만 있냐 내 마음도 있다"의 답이라는 건 두 개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머지 답 가지곤 그저 악순환, 악순환이 반복될 뿐이다. 나는 황금률을 지지하는 쪽이다.


우리는 매 순간 새로운 순간과 사람을 맞는 태도로 살아야 하지만 과거의 경험, 주로 상처에 비추어 몇 가지 미리 준비된 서랍들을 활용해 담거나 꺼내거나 하는 것 같다. 최근 기술교육원에서도, 오늘 원데이 클래스에서도 나를 힘들게 한 건 그런 문제였다. 언뜻 효율적으로 보이는 그 자동처리 기제가 사람에게 있어서 사실은 궁극적으로 엄청난 에너지를 낭비시키게 만들고 새로운 가능성을 뺏어가는 비효율이라는 것을 소리쳐 알리고 싶어 답답함을 느꼈다. 기술교육원에서, 육아 중인 누나에게, 원데이 클래스에서.


나는 이런 생각을 말로 하는 것을 선택할 수 없어 강사님에게는 "감사하다"고, "휘낭시에 빼빼로 너무 귀엽다"고 인사하고 나왔다. 그리고 옆자리 짝꿍이었던 분께는 불만에 대해서 코칭 강의와 NVC를 통해 배운 방법으로 공감하고 들은 다음 인사를 드렸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만든 것을 냉동고에 넣어두고 조금 고민하다 짐을 싸서 예고 없이 둘째 누나집으로 향했다. 훈계나 설교가 아니라 사람들 마음에 아주 조금의 따뜻함으로 직접 가닿는 것만을 실천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나는 내가 그 행동들을 영적 우월감이 아니라 진심으로 했다고 믿는다.


내가 불쑥 도착했을 때, 둘째 누나는 자기가 앓는 소리를 하는 바람에 내가 맘이 쓰여서 먼 길 온 게 아닌가 하며 미안해하면서도 덕분에 너무 막막했던 위기의 순간을 잘 넘기게 됐다고 고마워했다. 자러 들어가기 전에는 조용히 옆에 와서 "감동했다"고 표현했다. 그 말을 들으니 내가 누나의 마음에 따뜻함으로 가닿는 일에 성공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내가 내 인생에서 원하는 건 사는 동안 그 말을 최대한 많이 듣는 것이라는 걸 다시 한번 분명히 느꼈다.


전달하기 위해 만들어진 게 말일 텐데 어째서 말로는 전달이 안되는지. 일요일에 레몬청을 만들 계획인 것도 그래서이다. 말로는 전달이 힘들어도 시도해 보자면 "네 마음만 있냐 내 마음도 있다" 문제는 "네 마음대로 하자"로 풀자는 것, 같이 뒤집어서 같이 사랑이 되자는 것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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