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면과 기상
멀리서 보니 꽃밭 같아서 예뻤던 '은행잎이 떨어져 있는 잔디'를 오늘 글의 커버 이미지로 선택해 본다. 아침밥을 먹고 강의를 들으러 가는 길에 마주친 오늘 하루의 첫 기분 좋아지는 장면이었으니 말 그대로 오늘을 덮는 나의 이마고로 아주 좋다 할 수 있겠다.
아침에 일어나서 샤워하던 중 나도 모르게 코로 숨을 짧게 내보내며 웃었다. 흐흐흐나 후후후나 ㅎㅎㅎ로는 정확하게 표현이 되지 않는 것 같아 이렇게 표현해 본다. 코로 바람이 짧고 빠르게 3번 반복해서 빠져나가는 것이었다고 해야겠지만 그걸 콧방귀라고 오해받기도 싫다. 어쨌건 '웃음'이 나왔다.
'(웃음) 진짜 웃기네. 일어나기 싫다나 자고 싶다라고 하면 되는 걸 넌 왜 그렇게 말하냐아'
'뭐가'
'눈 뜨자마자 죽고 싶다고 했잖아'
'그렇긴 해'
화장실 타일에 붙여 놓은 샤워기 거치대에 걸린 샤워기가 쏟아내는 따뜻한 물줄기를 맞으며 나눈 대화이다.
웃기는 새끼가 내 안에 산다.
한 일주일 전부터 나는 자려고 누워서 '자, 죽자'라고 생각하며 이불을 가슴까지 끌어올려 덮는다. 죽고 싶어 하는(안식에 들고 싶어 하는) 녀석을 달래주는 온건책이다. 자는 것과 죽는 것은 비슷하니 죽는다고 생각하고 자면 죽었다가 아침에 살아나는 거다. 이렇게 하면 무려 매일 죽을 수 있다. 너무 좋다. 죽고 싶은 맘은 충족되는데 실제로 죽지는 않고 살아나니까 또 좋고. 그리고 이렇게 하면 죽는 게 나쁜 것 같게 느껴지지도 않는다. 실제로 죽음이라는 게 '나쁘다' 일 것도 아니고.
9시에 들은 강의에서는 아침에 눈을 뜰 때가 가장 위험하다한다. 아침에 눈을 떴는데 벌레가 되어 있을 수도 있기도 하다고. 나이가 들거나 병이 들거나(나이 들다와 병들다가 같은 동사를 쓰는 게 신기하다!)하면 아침에 눈을 뜰 수 있을지 걱정을 하기도 한다한다. 그런 면에서, 잠에서 깨 눈을 뜨자마자 '죽고 싶다'는 마음속 읊조림을 막을 새도 없이 들어야 하는 일은 이해해 줄 만한 일이다. 요즘 읽고 있는 책에서도 이런 '아침의 눈 뜰 때'에 관한 이야기가 있었다. "사람들은 하루를 기대로 시작하지 못하고 불안으로 시작하곤 한다"는 내용의 문장이었다. 다 비슷하다는 이야기 아니겠나.
물론 우리가 생각을 선택할 수 있고 노력해서 길들일 수도 있지만(있나?) 의미 이전에 존재가 있다 하니 "'너'한테 강요하지는 않을게, 하지만 너도 언젠가는 나와 같이 생각하기를 바라, 그리고 솔직히 그건 나를 위해서가 맞아." 같은 말을 해야겠다. 최근 아무래도 나는 타인에 대해서도 그런 강요스러운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으니.
죽고 싶은 마음을 잠을 자는 걸로 우회해서 만족시키는 게 가능하다는 사기적일 정도로 획기적인 생각을 왜 이제야 하게 됐나 싶어 생각해 봤다. 생각해 본 결과, 잠을 잘 자야 잠이 죽음 같아지는 거여서인 것 같다. 죽음을 바라는 건 죽으면 살아있기 때문에 겪는 여러 어려움과 싫음과 긴장이 없는 평온한 상태가 될 수 있기 때문인 것이다. 잠을 잘 못 자는 사람에게 잠은 그다지 평온한 상태가 아니다. 잊고 싶은 기억이 리마스터판으로 재개봉하는 시간일 수도 있고 울다가 깨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요즘 나에게는 '눈을 감고서 잠이 드는 순간이 찾아오기를 기다리는 시간'과 '눈을 떠서 일어나야 하는 시간까지 기다리는 시간'이 없어졌다. 평생 처음 겪어 보는 일이다. 난 초등학교도 입학하기 전부터 아침에 이르게 깨곤 했으니까. 이렇게 자니까 이제서야 잠이 죽음 같아졌다. 아마 그래서 처음으로 '매일 죽기'라는 사기적인 방법을 떠올릴 수 있게 된 것 같다.
최근 겪는 이런 일이라고 해야 할지, 최근 하고 있는 이런 생각이라 해야 할지 잘 모르겠지만 재밌는 것 같다. 나는 제법 웃기는 놈이랑 사는 것 같다. 마음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