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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봉호 Sep 13. 2023

공간의 재발견 : 홍문관

6부 안도 다다오가 남긴 말

  

   

   도대체 내가 무슨 소리를 한 것일까. 정신없이 발표를 마쳤다. 대학원 2학기에 처음으로 시도한 강의였다. 담당교수가 왜 건방지게 주머니에 손을 넣고 강의하냐고 책망했다. 긴장을 풀어보려고 해 본 자세가 거부반응을 일으켰다. 예전 수업에서 방송일을 하는 유명인의 강의모습을 어설프게 따라한 것이 문제였다. 비록 과대표로 강의를 맡았지만 나는 걸음마 단계에 불과한 대학원생이었다.


  조교는 시선을 지적했다. 내 시선을 발표탁자 위에 고정하니 학생들이 집중하기가 어렵다는 말이었다. 발표자의 시선이 모든 학생을 향해야 하는데 나는 그들과 시선을 마주치지 못했다. 의욕만 넘치는 초보발표자의 한계였다. 여기가 끝이 아니었다. 대학원 동료는 고장 난 폭주기관차처럼 급하게 발표진도를 나갔다고 했다. 그제야 제대로 된 강의를 해보겠다는 열망이 솟구쳤다.


  회사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할 때는 특별히 긴장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수십 명의 학생 앞에서 1시간에 달하는 강의는 결이 달랐다. 어디서부터 뜯어고쳐야 할까. 일단 신촌 학원에서 녹화를 해가며 강의기법을 배웠다. 청바지에 운동화 차림으로 신제품 발표를 하던 스티브 잡스가 롤모델이었다. 그의 책 <프레젠테이션의 비밀>을 정독했음은 물론이다. 강의판에도 다양한 스킬이 존재하더라.


  자기 눈의 티끌은 잘 보이지 않는다. 아니, 누군가 콕 집어 말해주지 않는 이상 잘못된 버릇은 쉽게 털어내지 못한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강의를 마치고 동료 대학원생에게 자문을 구했지만 미진한 느낌이 여전했다. 40대 초반의 나이로 입학한 홍대 문화예술대학원이 있던 건물명칭은 <홍문관>이었다. 정문 왼편의 신축건물에서 수업을 받고 과제발표를 반복했다.  강의경력이 10년을 넘으면서 언급했던 문제점은 거진 해소했다.


  직장생활과 대학원 과정을 병행하는 일은 예상대로 쉽지 않았다. 업무를 마치기 무섭게 지하철을 타고 <홍문관>으로 향했다. 걸음을 재촉해도 첫 수업을 시작하는 오후 7시까지 강의실에 도착하기는 어려웠다. 매번 지각을 해도 교수에게 눈총을 받지는 않았다. 대부분의 수업을 미리 준비한 습관 덕분이었다. 과제도 정해진 기일보다 항상 먼저 제출했다. 다른 리포트를 덤으로 제출한 적도 많았다.


  <홍문관>이라는 공간에 대한 애정은 여전하다. 흥미로운 문화예술수업이 학구열을 부추겼다. 대학원에서 만난 동기들과의 교류는 수업의 연장과 마찬가지였다. 공연, 여행, 디자인, 의류 업계에서 활동하는 이들을 통해 이론과 실전을 동시에 경험했다. 수업을 마치면 자정 즈음까지 토론에 임했다. 마지막으로 홍대지구라는 지역적 특성을 빼놓을 수 없다. 교수진도 문화지구의 기운 때문인지 리버럴 한 수업을 진행했다.


  대학원 논문통과를 마치고 문화콘텐츠 박사과정을 시작했다. 평일부터 주말에 이르는 커리큘럼 덕분에 열공의 보람은 있었다. 하지만 분위기는 <홍문관> 시절과 비교할 수 없었다. 건대 호수를 바라보며 <홍문관>의 추억을 떠올리곤 했다. 조선시대 왕의 자문 역할을 하던 관청에서 세종 시절에는 집현전의 새로운 명칭이던 <홍문관>. 시간을 뛰어넘어 재탄생한 학문의 요람이자 치유의 공간이었다.


  <홍문관>과의 인연은 지금까지 이어진다. 매년 이곳 현대미술관에서 신진작가 아트페어인 ‘아시아프&히든 아티스트 페스티벌’이 열리기 때문이다. 유명 미술가의 화법에서 맴도는 작품도 보이지만 시선을 강탈하는 수작도 적지 않다. 여기에 아시아권의 신진작가의 작품도 여럿 관람할 수 있다. 게다가 <홍문관> 일층에는 대형 문구점과 카페가 있어 약속장소의 역할도 해낸다.     


  지난 4년은 회사출퇴근을 도보로 했다. 집에서 홍대캠퍼스를 가로질러 직장으로 향한다. 때문에 평일 하루에 2번 이상 <홍문관>을 거치는 셈이다. 15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홍문관>이라는 공간을 집처럼 활용했다. 마당이 없는 아파트에 살지만 홍대캠퍼스가 앞마당 역할을 해준다. <홍문관> 건물에서 독서모임을 한 적도 있으니 이 정도면 1석 5조의 공간으로 부족함이 없다.   


  홍익대학교 개교 60주년인 2006년에 개관한 <홍문관>은 세계에서 가장 큰 정문이다. 규모 일변도의 유치함이 마음에 걸리지만 내게 <홍문관>은 40대를 함께 한 소중한 인연이자 공간이다. 안도 다다오는 “건축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의 마음을 여는 것이다."라 했다. 우리의 닫힌 마음을 열어주는 건축물은 무엇일까. 아마도 인간 이상의 가치를 고려한 주거공간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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