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k장녀
순애씨를 보면 화려한 깃털을 자랑하는 공작새가 생각난다. 그녀가 쓴 모자의 테두리에는 빨갛고 노란 꽃모양 장식이 에워싸고 있다. 모자와 같이 옷차림도 심상치 않다. 프릴이 달린 집시 스커트나 화려한 리본장식이 달린 빨간 블라우스를 즐겨 입는다. 당연히 화장도 원색의 립스틱과 짙푸른 눈화장에 마치 가부끼 공연을 하는 배우 같다.
화려한 외모와 달리 그녀가 내미는 처방전은 우울하다. 같이 사는 엄마는 치매약과 욕창 약,
그녀는 혈압에 고지혈등 열 가지가 넘는 약을 처방받는다. 약을 타러 와서는 팔자타령 비슷하게 엄마에 대한 서운함과 동생들에 대한 반감을 표출한다.
그녀의 엄마는 중증 치매에 대소변을 못 가린다.
진한 화장에 어울리지 않게 일과의 대부분이 엄마의 대소변을 처리하는 일이다. 식사준비에 투약에 오물이 잔뜩 묻은 빨래에 하루종일 그녀는 바쁘다.
그런데도 치매 걸린 엄마는 그녀를 구박한다고 한다. 욕도 서슴없이 하고 심지어는 물기도 한다.
치매인 노인이니 분간을 못하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이해 안 가는 건 그녀의 동생들이다. 엄마에게 쓰는 생활비를 이래저래 참견하며 엄마를 돌보는 언니에 대한 예우를 전혀 해주지 않는다.
아마도 순애씨는 동생들에게 떳떳지 않은 삶을 산 것 같다. 아픈 남편을 먼저 보내고 내세울 만한 자식도 없이 엄마 돈으로 같이 먹고사는 듯하다.
나만의 짐작이지만 맏이이며 엄마를 돌보는 언니를 홀대하는 저들만의 이유인 듯싶다. 이럴 때 보면 의무를 나눠 지어야 할 동생들이 더 무섭다.
작년에 돌아가신 나의 친정 엄마는 얌전한 치매를 앓았다. 대소변은 다 가리고 식사와 약만 챙겨 드리면 손 갈 데가 없었다. 동생과 난 사회생활을 해서 간병인을 엄마 집에 두고 주말마다 격주로 간병인과 교대하러 다녔다. 근 오 년 동안 별로 한 것도 없는데 우리는 서서히 지쳐갔다. 항상 피로에 젖은 우리보다 친절한 간병인이 더 잘 모신다 생각했었다.
엄마 마음도 정말 그리했을까? 돌아가셨으니 물어볼 곳도 없다. 남과 지낸 세월 동안 자식들의 정이 그립지 않았을까. 우린 주말에 엄마와 같이 시간을 보내고 마음의 위로를 삼고 있었다.
어찌 보면 만족하지 못한 딸이지만 순애씨 엄마가 더 행복했을지도 모른다. 입으로는 딸에게 험악한 말을 하지만 요즘 세상에 요양원도 있는데 집에서 모시는 자식이 몇이나 될까. 정신줄 놓은 순애씨 엄마도 그 고마움을 알지 않을까. 아무리 험한 인생을 살았다 해도 친정 엄마를 돌보는 그녀가 새삼 위대해 보인다.
어느 날 그녀가 모자를 벗고 가발을 쓰고 왔다.
그녀의 화려한 모자는 사치품이 아닌 탈모를 가리기 위한 필수품이었다. 아마도 화려한 화장을 하고 처방전으로 약을 타러 나들이하는 게 그녀의 유일한
위안일 수도 있겠다.
요즈음 우리나라의 k장녀는 예전과 마찬가지로
변한 것이 하나도 없는 슬픈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