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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릴리안 May 18. 2024

의심…

 슬픈 마음의 병.

   온화한 미소의 중년 남자가 아는 척을 하며 약국 안으로 들어선다.   예전에 오던 환자인가?  영업사원 인가?

인사를 받으며 생각해 봐도 도무지 예전 환자 같지는 않다. 더구나 그에 대한 나의  느낌이 좋지 않다.  그는 친한 척 내 안부와 옆 병원 의사분 안부도 물어가며 필요한 약을 구입했다.


   그가 돌아간 후 곰곰이  생각해 보니 약국 개업 초기에  보육원 차에 아가들을 많이 데리고 병원과 약국에 오던  직원인 것 이 생각났다.  직원인지 원장인지 알 수는 없었다.

  

  근처에 보육원이 서너 개 정도 있었다. 영유아 접종이나 질환이 있을 때 병원에 와 우리 약국에 오곤 했다.   

  보통 보육원은 사회복지사 한 명이 두 세명의 아기들을 데려오는데  특이하게 그 보육원은  차에 많게는 열명 정도의 아기들을  남자 직원과 여자 직원 한 명이 단체로 데리고 왔다.

  다른 곳의 아이들보다 입은 게 남루하고 초라해 보였다.   요즘은 복지가 잘되어  보육원 아기들도 모두 새 옷과 새 신발을 신고 영양도 좋아 보여 확연히 비교되었다.   

더구나 아가들을 대하는 태도는 다른 곳과 많이 달랐다. 젊은 복지사들은 마치 친동생처럼 아가들을 돌봤다. 그러나 그가 아이들을 대하는 모습은 마치 무서운 체육선생님 같았다. 아이들을 호령하고 험상궂게 혼내기도 했다.  


   그해 어린이날 아이들이 제일 좋아하는 텐텐을 선물로 그에게 주었다.  그런데 받는 그의 표정이 영 달갑지 않은 얼굴이었다.  보통은 마음에 안 들어도 앞에서는 감사하다고 받는 게 예의다.  떨떠름한 표정을 짓던 그는 그다음부터 병원에 오면 경쟁 약국으로 가서 아이들 약을 지었다.  

내가 선물을 잘못했음을 직감했다. 어린이날이라 아이들에게 주라는 것을 그는 어떤 뜻으로 받아들인 걸까.  아니면 자기가 받을 선물이나 웃돈을 바란 것일까.  보통 이런 사회복지 재단은 후원금을 모집하거나 바자회를 열어 정당한 모금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난 아이들 영양제를 선물하고도  버림받은 것이다.  내가 그 직원에게 어떤 액션을 취해야 했나 한참 고민하던 사이 어느덧 병원에도 그 차는 보이지 않았다.


  어떤 자영업이든 마찬가지지만 새로 개업하는 곳엔 간 보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그들은 경쟁 업체보다 얼마나 싸게 줄 수 있는지,  위법적인 것을 얼마나 해 줄 수 있는지 둘러보고 다닌다. 개업초에는 보통 자금난에 시달리기에 이런 유혹에 넘어가기 쉽다.  처음 들어주면 그들의 요구는 점점 커지게 된다.  이 일을 계기로 난 사회복지 사업을 하는 개인이나 단체를 좋지 않은 시선으로 보게 되었다. 그들이 약자를 볼모로 어떤 사적인 이득을 취하지는 않는지 의심하게 되었다.

  그래서 나이 들수록 점점 모든 일을 의심의 눈으로 보게 되는지도 모른다.  

  나이 든다는 것은 의심이 많아져 서글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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