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국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방문한다. 보통은 처방받은 약을 조제하거나 필요한 약을 구입하기 위해 오곤 하지만 가끔 제약회사 영업사원이나 각종 판매상도 들르기도 하는 열린 공간이다.
길고 긴 시간 동안 맺은 인연 중엔 가끔 안부가 궁금한 인연도 있고 저 세상에 간 인연도 있다. 약국에서 맺은 짧은 인연이지만 십여 년에 걸쳐 매달 만나게 되는 환자에게는 지인을 뛰어넘는 끈끈한 정이 흐른다. 주름이 가득한 노인분이 내미는 연시 두 알에 약국에서의 피곤함이 다 가시곤 한다.
한가한 오후 흘러간 세월 동안 잊히지 않는 인연들이 생각난다.
면허증을 받고 처음 개국한 곳은 시골 소읍이었다. 2일 7일 장이 서는 촌이지만 서울과 가까워 일요일이면 서울에서 관광객이 많이 오는 곳이었다. 의약분업도 시작하기 전이라 전문약도 임의 조제가 가능한 시절이었다.
시골사람 같지 않게 얼굴이 하얀 중년의 남자가 들어와서 기관지 확장제를 구입했다. 그는 정기적으로 천식약과 흡입기를 사러 왔는데 한가한 날 자신의 병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형과 단 둘이 고아로 자라 배움이 짧아 기능직 자격증을 세 개나 땄다고 한다. 먹고살만해져 결혼도 하고 아이도 셋이나 낳았는데 기관지 천식이라는
병에 걸렸다고 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예전에는
비가역적 질환인 기관지 천식은 불치병이었다. 의사들도 손을 놓을 만큼 병이 악화되어 형이 사는 시골로 요양차 내려왔다 했다. 한 달에 두 번씩 와서 세상 사는 이야기를 하면서 투병생활의 무료함을 달래는 듯했다. 불치병이 걸린 그를 볼 때마다 마음이 짠해왔다. 배움은 짧았지만 손에서 책을 놓지 않고 특히 문학분야에 일가견이 있었다.
규칙적으로 오던 그가 보름이 지나도록 보이지 않았다. 어느 날 그 대신 약심부름을 하던 그의 조카가 왔다. 낯이 익었기에 그의 안부를 물었다. 조카의 대답은 충격적이었다.
병치레로 집까지 판 그는 처자식에게 미안해서 쥐약을 먹고 자살했다 한다. 그 당시 시골엔 쥐가 들끓어서 쥐약을 구비해 놓곤 했기 때문이다. 그가 아프긴 했지만 음독을 하리란 짐작도 못한 나는 한동안 그가 앉았던 의자에서 눈을 떼지 못했었다. 그만큼 그의 죽음은 내게 충격적이었다. 내게 다가온 첫 번째 죽음이었다.
지금도 생각에 잠긴 그의 하얗고 창백한 얼굴이 실루엣이 되어 떠오르곤 한다.
아이 둘을 대학에 넣고, 난 지금의 자리에서 작은 규모의 약국을 시작했다. 개업을 하면 영업사원들이 실적을 위해 많이 방문을 한다. 신입 사원들은 군기가 바짝 든 모습으로 약국을 방문하지만 영락없이 일 이년이 지나면 건들건들한 모습이 되어 다니곤 한다.
그들의 그런 모습에 익숙해 갈 무렵 작은 중소기업의 사원이 방문했다. 그의 성실한 모습에 도와주고 싶었지만 그의 회사에는 옆 병원에서 쓰는 약을 거의 생산하지 않았다. 주문을 하지 못해 미안해하자 그는 자신이 더 미안해했다.
얼마 후 눈이 너무 많이 내려 허벅지까지 쌓이던 날, 아침에 와보니 그 직원이 약국 앞 눈을 다 쓸고 있었다. 내가 너무 고마워하며 따뜻한 커피를 내밀자 그는 자신에게 따뜻하게 해 주어 감사하다며 몸이 안 좋아 휴직하게 되어 인사차 왔다고 했다.
아무런 영업적 이익도 주지 못했는데 감사의 마음으로 눈을 쓸어 준 그 사원의 진실하고 곧은 마음에
그의 건강이 회복되고 앞길이 영원히 환해지기를 빌었다. 요즘 같은 세태에 쉽게 볼 수 없는 사원이었다.
오늘도 많은 인연들이 약국에 들러서 이런저런 볼 일을 보고 간다. 그러나 점점 전산화되어가는 세태 속에 일일이 개인과 정을 나누는 일은 점점 사라져 간다.
주문탭에 내가 주문하고 결제하는 시스템에 점점 길들여져 가는 우리가 이모님이 직접 주문받고 욕쟁이 할머니의 욕을 듣는 그런 정스런 식당을 찾게 되는 심리는 이런 잃어버린 정에 대한 아쉬움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