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영업을 할까? 일반기업영업을 할까? - 제2탄
1탄에서는 위의 주제를 직접적으로 파고들었다기보다는 왜 회사가 영업분야를 구분하는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2탄에서는 1탄에서 가장 큰 범주로 나누었던 공공영업과 일반기업영업의 영업 시 숙지해야 할 특성을 살펴봄으로써 과연 어느 분야의 영업이 나와 맞을지, 어느 분야에서 내 영업력이 발휘될지에 대한 단초를 제공해 보고자 한다.
단순히 공공기관(공무원)은 급여는 적지만 정년이 보장되고 사기업은 안 그렇고 같은, 다 아는 포괄적인 차이가 아니라 영업적인 측면에서 바라본 두 분야의 특성과 차이를 살펴보고자 한다. 실제 영업을 오래 해온 영업사원들은 숙지하고 있는 내용일 수 있으나 영업새내기들은 한번 읽어볼 만한 글이 될 것이다. 특히 내 커리어의 특별함에서 드러날 세밀한 내용은 기성 영업사원들에게도 한 번쯤 되새김질할 내용이 될 수 있을 듯하다. 민간기업에서 20년 가까이, 그리고 공무원으로 7년을 근무해 본 찐 경험자로서 두 군데를 다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들이 얘기하는 뜬구름을 걷어내 보고자 하는 것이다.
실제로 민간기업에서 영업본부장까지 하다가 공무원을 해본 사람은 많지 않을 테고 민간기업도 대기업, 중견기업, 벤처기업, 사회적 기업까지 경험해 보고 공무원이 된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을 테니 나름 의미 있는 콘텐츠가 될 것도 같다. 다만, 무슨 메시지나 교훈을 주는 주제는 아니다. 있는 그대로 느낀 걸 적을 거고 예외도 있을 수 있지만 읽는 사람들이 거기서 뭘 얻어낼 것인지는 그들의 몫이다.
난 공공기관 영업을 10년 가까이했었다. 무엇보다 억울한 것은 공무원들을 상대로 그렇게 열심히 접대하고 갖은 비위를 다 맞춰왔는데 정작 내가 공무원이 돼서는 김영란법이니 뭐니 해서 밥 한 그릇 얻어먹기도 눈치 보이는 상황이 됐다는 거다. (옳고 그름의 문제로 시비 걸지는 말자) 이 주제를 말하기 전에 꼭 하고 싶었던 말이어서 짚고 넘어가고 싶다. 솔직히 '본전 생각' 난다. 하지만 이 또한 사회가 바른 방향으로 가는 흐름일 테고 실제로 들어와 보니 공무원들의 인식과 사고가 예전과는 달리 많이 개선되었음을 몸으로 느끼고 있는 중이다.
첫 번째 차이점은 돈이 어디서 나오느냐이다.
공공기관은 당연히 회사의 자체 재산이 아닌 국민의 세금에서 돈을 지출한다. 예산만 잘 받아오면 그 돈을 다 쓰는 것이 오히려 미덕인 구조다. 그러다 보니 구매비용이 됐든 공사금액이 됐든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굳이 깎으려 하지 않는다.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하는 회사가 매력적으로 느끼는 부분이 바로 이 부분일 게다. 소위 '눈먼 돈'이 많다는 것인데 그러다 보니 잘 진행되기만 하면 영업사원과 공공기관담당자는 서로 분위기가 좋을 수밖에 없다. 요즘은 공공기관도 나름의 절차와 프로세스로 마냥 눈먼 돈이 라고만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바람직하다고 느낀다. 하지만 주어진 예산을 가능한 한 감소시키지 않고 제품의 질을 높이고자 하는 공공기관 예산특성은 영업사원 입장에서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반면 민간기업은 어떤가? 비용 절감은 거의 모든 회사의 코란과도 같은 명제이다 보니 민간기업 구매 담당자는 비교 견적은 당연하고 구매가 결정되고 나서도 직급에 따라 부서에 따라 층층이 계속 금액을 깎는 구조가 일상화되어 있다. 그러다 보니 물건을 파는 업체는 List Price 라는 최고의 금액을 산정하고 최대로 깎아줄 수 있는 마지노선, 즉 실제 제공가를 늘 염두에 둘 수밖에 없는 것이다. 구입하고자 하는 제품의 가격은 곧 그 회사의 비용을 의미하고 지출을 함으로써 수익을 감소시키는 일종의 원가이다. 물론 제품이 자산이 되는 것이지만 최소한의 비용으로 제품을 구입하고자 하는, 체질적으로 깍쟁이의 DNA로 꽁꽁 묶여있다고 봐야 한다. 따라서 자그마한 가격의 유연을 가지면 의외로 쉽게 결정을 짓게 만들 수도 있다.
두 번째 차이점은 확산 여부이다.
공공기관을 영업하는 회사는 '레퍼런스'에 목숨을 건다. 레퍼런스란 쉽게 말하면 다른 데서 쓰고 있느냐 아니냐이다. 다른 곳, 더 구체적으로 내가 속한 기관과 비슷한 곳이나 다른 지자체에서 기 도입해 쓰고 있는지의 문제는 공무원들의 마음을 무지하게 편안하게도 불편하게도 만드는 요소다. 그래서 공공기관을 상대하는 회사는 첫 번째로 판매되는 곳을 '레퍼런스'로 만들기 위해 무상으로 제품을 공급하기도 한다.
민간기업도 물론 레퍼런스가 중요하다. 다른 비슷한 일을 하는 경쟁업체에서 쓰고 있느냐 아니냐는 중요한 결정요인이다. 하지만 공공기관만큼 절대적이진 않다. 다른 데서 쓰고 있지 않아도 자기 회사의 영업에 이익에 중요한 제품이라면 선점해서 효과를 볼 수도 있다는 생각에 더 적극적이기도 하니까. 이건 영업사원들에게 영업시기에 대한 부담을 줄일 수 있는 기회이다.(이 부분은 마지막에 더 설명하겠다.)
하지만 공공기관은 조직에 도움이 되느냐보다는 다른 데서 이미 하고 있는데 우리는 왜 안 하고 있느냐는 위쪽의 고인 물 공무원들의 질책이 더 무섭다. 나쁘게만 볼 일은 아니다. 넓게 보면 국민을 위해 사용하고 활용하는 제품이고 사업인데 보다 신중한 검증이 필요한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아무래도 민간기업보다는 전문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공무원 조직에서 그 부분을 메울 수 있는 구조적인 크로스 체크 방법이 될 수도 있으니까. 그러나 실상은 제품에 문제가 있어도 다른 데서 쓰는 걸 도입한 것 자체만으로 어느 정도의 면피가 가능하다는 생각을 하는 것도 현실이다. 현실은 현실대로 인지하고 활용하는 것 역시 영업사원의 갖춰야 할 덕목이다.
세 번째 차이점은 이건 좀 민감할 수 있는 문제이지만, 공공기관이 오히려 더 객관적인 조건보다는 주관적인 조건에 반응한다.
아주 규모가 큰 구매나 공사는 법으로 정해져 있는 절차가 있으니 공공기관이 더 객관적일 수 있으나 소위 말하는 '수의계약'의 경우(여러 조건이 있지만 일반적으로 2천만 원 이하 규모) 공공기관은 주관적인 판단을 많이 한다. 민간기업은 아무리 적은 금액의 프로젝트라 해도 위에서 말한 비교 견적은 물론이고 담당자 또는 부서장의 개인적인 친분, 주관적인 조건에 그다지 좌우되지 않는다.(물론 아닌 경우도 많다. 그래서 영업이 있는 거지만) 정말 필요한 제품인가, 혹은 필요한 사업인가를 다각도로 따진다. 왜냐면 비용을 지출하는 최종 결재는 어쩌면 사유재산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는 오너가 내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공기관은 경쟁입찰을 하지 않아도 될 때는 많은 경우 담당자나 부서장의 주관에 좌우된다. 지역업체 활성화 등의 명분으로 그런 일이 다반사로 벌어진다. 이걸 꼭 나쁘게 볼 수만은 없다. 이미 검증된, 그리고 믿을 수 있는 곳에 맡기고 싶은 건 인지상정이니까. 그래서 공공기관을 영업하는 회사는 영업사원과 공무원이 오랫동안 구축해 온 라뽀, 혹은 콴시를 무시할 수 없기에 영업사원 채용 시 공공기관 영업경력을 중시한다. 거래를 오래 한 공무원은 공공 영업을 하는 회사입장에서는 안정적인 매출을 끊임없이 만들어 주는 화수분이나 다름없다.
네 번째는 영업 시기의 차이다.
민간기업은 제품의 구매나 사업이 부정기적이다. 큰 이슈가 발생하거나 급하게 필요해지는 경우 1년 내내 영업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 하지만 공공기관은 그렇지 않다. 매년 예산을 책정하는 시기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물론 추경이라는 게 있지만) 그 시기에 내가 팔고 싶은 제품이나 사업을 예산에 반영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본예산을 기획하고 책정하는 전년도 9월 이전에 모든 영업을 마쳐야 한다.
단순히 사람을 만나서 제품이나 사업을 영업하는 게 아니라 공무원이 그 제품과 사업을 세금으로 해야 하는 정당성과 명분을 만들어 줘야 하고 그거에 따른 디테일한 작업(그걸 보통 RFI, Request for Information이라고 한다)도 마쳐야 한다. 예상하겠지만 RFI에는 그 업체의 제품만이 할 수 있는 기능이나 장점을 교묘히 반영하는 작업을 병행하기 때문에 영업이 되지 않은 경쟁사는 다음 해의 농사 때 손만 빨아야 하는 상황이 오는 것이다.(RFI 등 영업프로세스에 관해 서는 이 책의 '영업프로세스의 모든 것 1,2,3탄을 참고하기 바란다.) 그래서 공공기관을 상대하는 회사는 9월 이전까지는 거의 비상 체제라고 봐도 무방하다. 민간기업은 구매예산 절차가 있지만, 공공기관만큼 법적 의무가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쉽고 신속하게 새로운 제품이나 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차이가 있다.
크게 4가지를 통해 공공영업과 일반기업영업의 큰 특징과 차이를 살펴봤다. 내용이 많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실제 영업 시 느끼게 될 차이는 아마 밤새워 얘기해도 모자랄 분량이 될 것이다.
그래서 다시 이글의 핵심주제로 돌아가 보자. 영업을 막 시작하고자 하는 영업새내기들은 공공영업을 할까? 일반기업영업을 할까?라는 이 고민에 어떤 답안지를 제출해야 할까?
다행히 이 시험은 정답이 없다. 따라서 채점도 없다. 채점지는 당신이 어느 분야에 영업을 할 것인가의 답안지에 매겨지지 않고 늘 얘기하듯 숫자와 실적에 매겨질 뿐이다. 숫자 앞에 두 분야는 평등하다. 다만, 몇 가지 정도는 시험 전에 꼭 공부하면 좋을 기출문제들이 있다. 그 기출문제의 해법은 다음 3편에서 짧게 요약해 보자.
사족 : 얼마 전 본청에서 내년도 본 예산안에 대한 지침이 내려왔다. 세수가 좋지 않아 관성적으로 해 오던 사업들을 많이 축소하는 걸 기본정책으로 가져갈 거란 엄포도 있었다. 늘 공공분야나 공무원은 안정적일 거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시절이 하 수상하고 어수선하여 이것 역시 장담할 수 없다. 영업을 하면서 항상 느끼고 서로 자주 하는 말이지만 이놈의 경기는, 시장상황은 좋았던 적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