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영업사원이라 해야만 했던 일들- 제2탄(새나가는 월급)

영업사원 실전노트

by 영업본부장 한상봉

영업사원이라 해야만 했던 일들 - 제2탄(새나가는 월급)


1탄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이거다. '처음 보는 사람을 만나야 하는 것은, 그리고 그 사람이 내가 한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유형의 사람이라면 영업사원이라 해야만 하는 힘든 것중에 하나'라는 것.


사람이 제일 힘들다는 말을 많이 한다. 일이 힘들어도 동료와의 관계만 좋으면 버틸 수 있다는 말도 많이 듣는다. 틀린 말은 아니다. 특히 나처럼 갈등회피주의자는 누군가와 불편해 지는 건 참 싫다. 영업사원은 더하다. 싫어도 만나야 하는 사람이 있고 심지어는 그 앞에서 좋은 척을 해야 한다. 오롯히 한편을 할애해서 하소연할 만하다.


그런데 어찌보면 사람보다 더 체감적으로 싫은 것들도 있다. 싫다기 보다는 열받는 다는 표현이 더 맞겠다. 영업을 하지 않았으면 입지 않았을 피해랄까? 즉, 다른 직종이면 겪지 않아도 될텐데 영업사원이라 겪게 되는 사람관계 외의 일들이 있다. 영업사원이라는 직종을 비하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난 뼛속까지 영업사원이고 자부심이 큰 데 그럴리가 있겠는가? 다만, 추상적으로 혹은 긍정적으로만 영업을 생각하는 사람들이나 영업을 시작하려는 분들에게 영업사원은 이런 일도 겪는다는 걸 가벼운 마음으로 얘기해 보려고 하는 것이다. 왜 가볍다고 하는 줄 아는가? 진짜 힘든일은 얘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건 영업전도사인 내가 마치 교회를 가면 이런 일을 겪게 되니 집에서 예배보라는 것과 같으니까.ㅎ


처음 내가 보안제품영업을 시작해서 배울때였다. 30대 초반이었을 때니 벌써 20년도 넘은 얘기다. 영업을 처음 시작한 상황이라 직속 팀장님의 껌딱지가 되어 미팅도 따라가고 하나부터 열까지 스펀지처럼 영업이란 무엇인가를 빨아드릴 때였다. 그때 팀장님은 매우 유능하고 정열적인 분이셨는데 단하나 아쉬운게 있다면 길치였다. 요즘엔 어쩌면 겪지 않을 수도 있는 일이다. 차 전면 러기지룸에 전국지도책은 필수인 시대. 팀장님은 운전을 하고 난 팀장님에게 길을 안내해야만 했는데, 문제는 나도 길치라는 거였다.


수색대를 나오면 뭐하나? 군대에서 독도법을 아무리 연습했으면 뭐하나? 난 유전적으로 타고난 길치였고(아쉽게도 아들도 물려받았다.) 길안내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하루에 미팅을 거의 5개씩 하고 다닐때라 미팅간 시간갭이 촉박했고 고객사의 위치는 두 길치에게 노출될 생각을 안하고. 그때 팀장님은 내 생각에 신호위반, 속도위반 딱지를 적어도 달에 두번은 받았을 거다. 내가 영업을 하면서 T맵에게 감사했던 이유중 하나다. 월급받으면 뭐하나 다 과태료로 새나갈 것을.


영업사원은 영업이 잘될때는 그냥 모든 것이 천국이다. 물론 이게 계속 유지될 수 있을지 미래에 대한 걱정도 있지만 그건 뭐 잘될거라는 최면으로 이겨내고 현재 잘되고 있으면 행복하다. 회사에서도 당당하고 윗분들도 이뻐하시는게 눈에 보인다. 행복한 날이 계속될거라고 스스로 세뇌된다. 하지만 사는게 그렇게 호락호락한게 아니지 않는가? 문제는 영업이 잘 안되고 시장상황이 암울할 때이다. 일반 직장인도 힘들겠지만 최전선에서 방탄복없이 황량하게 서있는 총알받이들은 그걸 더 체감한다.


많이 들었던 얘기일 거다. 영업이 안되면 회의가 많아 진다. 잘될때는 달에 한번 하던 영업전략회의를 일주일에 한번, 일주일에 월/금 두번, 결국 매일하기 시작하더니 하루에 아침/저녁 두번씩 한다. 특히 저녁회의는 체감하는 고통이 크다. 사이트에 따라서 회사에서 먼곳에 미팅을 하면 영업사원들은 가끔 직퇴를 하는데 저녁회의때문에 그게 안되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다른때보다 두배, 세배 괴로운 분위기의 회의를 하니까. 매일 아침저녁으로 무슨 아이디어가 나오고 무슨 변화가 생기겠는가? 아마 윗분들도 알것이다. 그래도 한다. 할수 있는게 그거 밖에 없으니까. 회의가 싫을 수 밖에 없다.


영업이 안되면 생기는 일을 하나만 더 얘기해 볼까? 기본적으로 영업사원은 외근이 많다. 회사에서 그 사람의 일거수일투족을 확인할 수 없다는 뜻이다. 영업이 잘되고 실적이 좋으면 회사도 당연히 외근나가 열심히 영업을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반대라면? 밖에서 속칭 땡땡이를 치고 있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다. 사우나를 하고 있는지, 어디서 친구랑 노는지 알 길이 없다. 어디어디 방문을 하는지 미리 보고를 받아도 소용이 없다. 그냥 거기 간다고 하고 안가면 그만이니까. 그래서 어떻게 하는 지 아는가? 방문한 회사의 입구 간판을 사진찍어 보내라고 한다. 거짓말 같은가? 솔직히 난 이것까지는 경험하지 않았지만 다른회사 영업사원들이 술먹으면서 하소연 하는 걸 직접 들었다. 그걸 들으면서 든 생각. 이 회사 곧 망하겠구나.


회사와 영업사원들이 서로 믿어야지 하는 순진한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둘의 관계는 적당히 긴장이 있는 것이 맞다. 회사도 영업사원을 100프로 믿지말고 영업사원도 회사의 눈치를 당연히 어느정도는 봐야한다. 하지만 그건 시스템에게 맡겨야 한다. 서로가 서로를 확인할 수 있는 합의된 시스템이어야지 방문회사 사진찍어 보내는 이런 유치한 방법으로는 불신만 미움만 커질 뿐이다. 아무튼 그런일도 있었다는 거.


영업사원은 영업이 안되면 빚을 진다는 말이 있다. 영업사원들끼리는 다 느끼는 일일 것이다. 영업이 잘될 때는 접대를 해도, 고객에게 줄 선물을 사도 다 당당하다. 보통 영업사원들은 고객사이트를 방문할 때 빈손으로 가지 않는다. 편의점에서 잠깐 고민을 하지만(그냥 싼걸 살까, 아니면 복분자정도로 갈까?) 박스로 된 음료수 한상자는 들고 가게 마련이다. 첫 분위기를 좋게 하는 사소한 팁이라는 걸 다 아니까 말이다.


근데 그걸 일일이 경영지원팀에 청구를 할까? 물론 대개는 법인카드로 산다. 법인카드에 대한 얘기는 나중에 따로 하겠지만 요즘은 영업사원들에게 다 법인카드를 준다. 대신 개인법인카드다. 여차하면 회사에서 결제를 안해주고 개인이 결제해야 하는 여지를 주는 카드라 순수 법인카드라고 하지 않고 개인법인카드라고 명한다. 한마디로 회사이름만 카드에 찍혀있으면 높으신 분들이 쓰는 법인카드이고 회사이름 밑에 영업사원 개인의 이름이 찍혀있으면 왠만하면 영업사원에게 발급하는 개인법인카드다.


영업이 안될때는 회사에 눈치가 보인다. 그래서 내돈으로 처리하는 것도 많다. 접대를 마치고 귀가하는 고객에게 택시비를 쥐어줘야 할때 법인카드를 쓸 수 있는가? 의외로 현금을 써야 할 때가 많아서 일일이 비용처리를 하기 힘들다. 어쩔땐 정상적인 비용처리도 눈치가 보인다. 난 접대를 하면 집으로 갈 수가 없어서(집이 너무 멀었다.) 모텔에서 잠을 많이 잤다. 영업이 잘 될때는 법인카드로 6만원짜리 방도 척척 결제했다. 눈치가 보이니 5만원짜리로 내려가고, 어쩔땐 같이 접대한 PM(Project Manager)에게 미안하게도 한 침대에서 둘이 잔적도 많다. 근데 계속 그렇게는 미안해서 못하겠더라. 내돈을 추가해서 두개의 침대방으로 업그레이드 할 수밖에 없다. 지금 생각하면 슬픈 일이다.


쓸수록 너무 찌질해지고 비참한 얘기만 할 거 같아 글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하지만 이미 피토하듯 시작했는데 이렇게 도둑질 들킨것처럼 급하게 마무리를 하면 너무 없어보이잖아. 마치 등차수열 나열하듯이 제목만이라도 얘기하고 끝내고 싶다. '접대를 해도 야근수당 못받는거' '하루에 아침 저녁 두번 토하기(무슨 약이냐?)' '귀가 헐도록 고객이랑 전화하기' '막힌 도로를 가다서다 하다 무릎 나가기' 다 내가 경험했던 일들이다.



예상하겠지만 영업사원이어서 겪게 되는, 영업사원이 아니면 경험하지 못하는 짜릿한 희열의 순간도 많다. 위에서 쓴 찌질하고 조금은 불쌍한 일들 때문에 그 희열이 더 벅찬지도 모른다. 그리고 혼자만 겪는 게 아니라 함께 겪는 동료들, 마치 군대 훈련소에서 훈련병들이 서로 의지가 되는 것처럼 그들이 있어서 또 견딜만 하다. 한번 모여서 알콜목욕을 하면서 개욕을 시전하다보면 툭툭털고 다시 일어난다. 그리고 숙취를 몸에 새기고 다시 아침회의를 들어간다. 숫자도 시장상황도 좋아지겠지. 개발팀에서 획기적인 제품을 내놓겠지. 뭔가 우리는 좋고 고객은 안좋은 이슈가 터지겠지 하면서 말이다. 사노라면은 불후의 명곡이다.



사족 : 1차 술자리에서 이미 충분히 달린 뒤 계산을 마치고 나와 술집 앞에서 어정쩡 하게 모여 담배를 피우는 바로 그 애매한 시간, 영업사원들에게, 아니 회사원들에게 있어 금기시 되는 말이 있다. 서로 얼굴을 쳐다보다가 누군가가 외치는 "인생 뭐있어?"


다들 무슨 돌림노래하듯이 복명복창한뒤 2차로 달려가는 바로 그 때, 사랑하는 후배 영업사원들이여! 한번만 자신의 건강을 생각해 보기 바란다. 고객을 만나서 접대를 하면서 내일이 없을 것처럼 술을 마실때도, 바닥에 토해놓은 모텔 침대에서 잠을 잘때도 습관처럼 자신의 몸과 가족을 생각해 주기 바란다. 실적이 좀 나빠도 된다. 내년에 좋아지겠지. 아니면 후년에 좋아지면 되지. 하지만 몸은 꼭 챙기길 바란다. 가끔 고객을 만나는 꿈을 꾸기도 하고, 지금도 수주가 결정되어 동료와 얼싸안고 춤을 추기도 했던 그때가 그리운 못난 선배의 간절한 부탁이다.




















keyword
이전 12화영업사원이라 해야만 했던 일들- 제1탄(술이 담배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