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대는 다 똑같다. 어떤 접대는 고상하고 어떤 접대는 천박하고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접대를 안 해봤거나 모르는 사람들이다.길이 다를 뿐이지 목표는 단 하나, 피접대자에게서 얻어낼 것을 바로 얻어내거나 쉽게 얻어내기 위함이다.
굳이 다른 게 있다면 당연히 장소와 유형이다. 그리고 그에 따른 비용의 차이다.오늘은 접대의 꽃이자 상대적으로 많은 비용이 드는 접대, 바로 골프접대에 대해서 알려주려고 한다.(물론 사과박스 접대보다야 싸다. )
기본적으로 골프접대는 즐겁다. 골프라는 종목자체가 재밌는 것도 있지만 피접대자가 하고 싶어 하고 재밌어서 만들어지는 접대다 보니 시작부터 분위기가 좋을 수밖에 없다. 골프를 쳐본 사람은 알겠지만 그야말로 돈 있어도 시간이 없어서 못하고, 시간 있어도 돈 없어서 못하는 대표적인 사치니까.피접대자 입장에서는 돈도 안 들고 나름 명분도 있어 시간을 내는 상황이다 보니 즐거울 수밖에 없다.
사기꾼은 호구를 판에 앉히면 반은 성공한 거라는 말이 있듯이 접대를 하는 영업사원은 접대자리를 세팅하는 것 만으로도 많은 가능성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그게골프접대인 경우, 영업이 마무리되는 시점일 때 마지막 일격을 날리는 것이 될 수 있고, 영업초기라면 향후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을 가능성을 높여주는 접대가 될수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영업의 상식이지만, 영업사원은 고객의 시간은 많이 투자하게 하고 고객이 나에게 돈을 많이 썼다고 생각하게 해야 한다.자기의 시간을 이미 많이 투자했는데 영업사원의 제안을 무시하는 건 본능적으로 아깝다고 생각하며, 상대가 나에게 비용을 많이 투자하면 본능적으로 미안한 마음을 갖기 때문이다.그런 차원에서 고객과 오랜 시간(목욕까지 치면 거의 반나절)을 함께하고 비싼 금액을 대접받는 골프접대는 효과적일 수밖에 없다. 공짜는 누구나 좋아하는 테마니까. 심지어 이건희도 골프장에서 다른 사람 공 공짜로 줏을때가 제일 행복하다고 했다더라.
영업사원들은 가끔 말한다. 고객이 공을 잘못 쳐서 엉뚱한 방향으로 빠졌을 때 티 안 나게 자기 공도 보낼 정도의 실력이어야 한다고. 근데 그건 그냥 말만 그럴 뿐이다.일반적으로 고객이 영업사원보다 훨씬 잘 치는 경우도 많고영업사원이 위에서 말한 정도의 실력이 되려면 많은 시간의 연습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굳이 그 정도로 잘 칠 필요는 없다. 다만,너무 실력차가 나게 되면 문제가 생긴다. 왜냐면 내기를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골프는 내기가 없으면 시체다. 근데 그건 접대골프인 경우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갑을의 관계라는 걸 이 세상 누구보다도 서로 잘알고 있지만 모른 척 내기를 해야 한다. 그리고 예상하겠지만 절대로 고객의 돈을 따면 안 된다. 그래서 때로는 대놓고 이런 일도 있다.
나도 골프접대를 여러 번 받았다. 내가 영업사원이었지만 영업의 세계는 엄연한 피라미드의 세계로, 항상 내 도움이 필요한 다른 업체가 있게 마련이다. 갑을관계를 떠나 갑을병정무까지 이어지는 더러운 사슬관계. 그래서 영업을 하더라도 이왕이면 을이나 병정도에 하는 걸 추천하고 싶다. 각설하고,
내가 골프접대를 받을 때 상대회사 사장님은 절박한 상황이었다. 나를 비롯해 우리 회사의 다른 영업팀장들이 도움을 주지 않으면 굉장히 곤란한 상황이었고 그런 시기에 그 사장님은 우리 회사 3명의 영업팀장들을 대상으로 골프접대를 마련했다.중요한 건 지금부터, 당연히 그 사장님은 우리들이 내기를 좋아하고 또 내기를 세게 하는 걸 알기 때문에 피접대자 세명중 한 명도 기분이 상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했다.
사장님은 골프 시작하기 전 식사 때 한 명씩 몰래 불러내서(담배 한 대 뭐 이런 식이다) 미리 내기를 할 때 충분할 정도의 현금을 찔러주었다.세명 모두에게 주었으니 그 금액도 만만치는 않았을 것이다. 심지어 홀을 돌면서 중간중간 잃은 사람이 있으면 몰래 돈을 채워주기도 하더라.결국 모두가 돈을 따는, 도박판에서 절대 불가능한 시추에이션을 만들어 냈고 그 결과는 일정기간 동안 그 회사로 영업을 몰아주는 것으로 나타났다.당연 그 사장님은 위기를 벗어났고 듣기로는 지금도 잘 나가고 있다고 한다.
골프접대의 또 하나의 매력은 홀딱 벗는 다는 데 있다. 털나고 나서 다른 사람과 홀딱 벗고 같이 있었던 경우가 있는가. 학창 시절에 친구들과 친해지기 위해서나, 술 처먹고 사우나 가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더구나 비즈니스로 엮여서 서로 살짝의 긴장이 있는 사이에서 그런 경우를 만들어 내기가 쉬운가? 어렵다. 그런데그걸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 골프다. 골프를 마치고 뜨뜻한 탕에 담겨져 그날의 플레이를 복기하고 다음 스케줄 안내도 하고, 그리고 살짝 이번 골프접대의 메인 목적을 흘리고 하는 작업들을 가능하게 해 준다.
피접대자의 성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18홀을 도는 플레이 중에는 가능하면 비즈니스 얘기를 하지 않는 게 좋다.내가 가끔 골프접대를 했던 H장애인도서관 사무관은 성격이 화끈해서 시작 전에 알아서 해줄 테니 걱정 말고 골프나 재밌게 치자고 하기도 했었지만(아마 그분은 나랑 거래가 길었으니까)대부분은 플레이 동안에는 비즈니스 얘기를 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그런 얘기를 하라고 목욕시간이 있는 거니까 성급하게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걸친 거 하나 없이 벗었을 때 당신이 원하는 걸 하나씩 채우고 걸칠 수 있다.
골프는 플레이만으로 적어도 반나절을 소모하기 때문에 평일에 칠 경우 피접대자는 대부분 연차를 낸다. 골프접대받고 다시 회사로 복귀하려고 반차를 내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고객이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골프를 끝내고 더 접대를 할 시간이 있다는 것이다.
골프 재밌게 치고 목욕탕에서 땀도 빼고 뽀송뽀송해져서 기분도 좋은데 당연히 레프트훅도 날려야 하지 않겠나? 그리고이미 고객은 영업사원이 자기를 위해서 충분히 투자를 했다는 고마운 생각에 젖어있으니 이제 물리적인 알콜로 몸도 적셔주어야 한다.거기서는 이제 분위기를 봐서 직설적인 부탁과 청탁을 진행해도 좋다. 하지만 그것도 너무 의식할 필요도, 부담을 줄 필요도 없다. 그 정도의 투자를 한 접대라면 적어도 유통기한이 짧지 않다. 그렇게 완벽하게 하루를 만들어 주고마지막으로 대리운전비나 택시비를 찔러준 뒤 귀가 문자까지 날리면 당신은 그날 세상에서 가장 영업을 잘한 영업인이 되는 것이다.
요컨대, 골프접대를 할 때 골프를 프로처럼 언더파, 이븐파 할 정도로 잘 칠 필요 전혀 없다. 하지만 위에서 얘기한 이유 등으로 너무 못 치면 고객이 싫어할 수도 있다. 따라서 하루아침에 실력이 느는 스포츠가 아니기 때문에 영업사원이라면 당연히 꾸준히 연습해야 한다. 하지만실력보다 더 중요한 건 상황에 따라 타이밍에 따라 던지는 칼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칼에 맞았는데도 아파하지 않고 허허 웃게 만드는 타이밍.그게 실력보다 더 중요하다.골프접대는 그 자체가 input이 큰 접대라 그에 맞는 가성비를 내려면 더 노력해야 한다. 그래서'한팀장 골프나 한번 치러 가지'라는 말을 들을 수만 있다면 게임은 끝난 것이다. 영업사원에게 저 전화는 '나 뭐 살 거 있는데 당신에게 사고 싶어'라는 말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사족 : 형이 던진 소나타
누차 이야기하지만,
영업사원은 만능의 존재가 아니다.
종교적으로나 건강상의 문제, 혹은 가치관의 문제로 술을 못할 수도 있고,
신체의 사정으로 스포츠에 취약할 수도 있다.
내 친형이 그렇다.
선물 받은 비싼 와인은 거의 삼겹살 굽는데 쓰고,
노래는 음치의 상위 버전인 박치이며,
취미라고는 혼자 숨기 딱 좋은 민물낚시.
그런 형은 어떻게 영업을 할까?
전에 얘기했다시피 형은 식당을 한다.
20여 년 전 인사동 관훈빌딩(지금은 이름이 바꼈다) 바로 옆 건물에 식당 자리가 비었다.
부동산 하는 친구들이 형을 불러서 가게를 보여주며, 모 탈랜트가 저 자리를 받았다고, 자기들도 아까워 죽겠다고 하더란다.
형은 그 자리에서 부동산 친구들에게 약속을 했다고 한다.
"저 자리 계약서, 내 손에 들어오면 소나타 골드 뽑아 줄께"
정확히 1420만 원을 던진 거다.
그 자리에 형은 놀부 부대찌개를 차렸고, 8개월 운영한 후에 권리금 1억 9천을 손에 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