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빈내 아재와 서부 할부지
사랑방 손님 중에서 내가 유독 무서워하는 사람이 있었다.
사랑방에서는 그를 '빈내'라고 불렀다.
본시 아저씨는 덩치가 커고 검은 얼굴에 꺼멓고 꺼칠한 수염이 수복하게 나 있었다. 볼품없는 수염은 자주 씻지 않아서 인지 늘 기름이 묻은 것처럼 번들 거렸다. 거기다가 얼굴이 몹시 얽어 있고 큰 입에 침이 늘 흘러나와 턱수염이 젖어 있었다. 머리는 불밤송이 모양으로 언제나 삐죽삐죽 일어서 있었다. 땟자국이 오래되어 흰색 저고리와 바지가 얼룩덜룩 칙칙한 색으로 변해 있었다. 짙고 굵은 눈썹과 칠흑같이 검은 눈은 마치 야수처럼 나를 두렵게 만들었다. 가끔 골목에서 만나면 질겁을 하고 도망가기 바빴다. 빈내 아저씨는 매일 아침나절에 빠짐없이 할아버지 사랑방을 찾아 오지만 사랑방 안으로 들어가는 일은 적었다. 다른 어른들이 손사래를 치며 거부하기 때문에 마당에서 서성거리거나 마루에 걸터앉아 사랑방을 기웃거렸다. 그러다 사랑방 손님들의 농익은 놀림에 침을 튀기며 고래고래 소리지르며 흥분했다. 그때마다 나는 무서웠지만 사랑방 손님들은 빈내 아저씨의 씩씩거림을 즐기는 것 같았다.
왜 빈내라고 했는지 궁금했는데 할머니 말씀으로는
"처음에는 '빈대'라는 불렀는데 나중에 '빈내'로 바뀌었단다. 아마 비린내 같은 고약한 냄새가 나서 그렇게 불리게 되었을 거야"
그러나 마냥 무서워하던 그 아저씨가 나쁜 사람이거나 무서운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우연히 그의 미소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어느 날 마당에 혼자 놀고 있는데 삽작으로 들어서던 빈내 아저씨와 눈이 마주치게 되었다. 그는 빙그레 웃었다. 어쩌면 늘 웃었던 것 같았다. 내가 그를 똑바로 바라보지 못한 것이었다. 빈내 아저씨는 무슨 말을 했지만 듣는 사람은 웅얼거림으로 밖에 들리지 않았다. 그래서 말로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은 못 하지만 사람을 해치려 한 적은 없었다. 사람들이 먼저 피하고 늘 놀림감이 되기 일쑤였다. 어른들도 아저씨에게 소리만 질렀다. 일을 시켜놓고 잘 못한다고 윽박지르기만 하지 자세하게 방법을 알려주지는 않았다. 불쌍하기도 했지만 정작 본인은 사랑방에서 벌어지는 일에 참견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
그에 비해 서부 할아버지는 말은 더듬거려 대화는 어려웠지만 사랑방 손님들이 하는 말을 잘 알아들어서 잔 심부름은 도 맡아했다. 또 사랑방 손님들이 하는 일에 관심을 보이고 일을 거들었기 때문에 인기가 좋았다. 서부 할아버지는 윗마을에 살고 있었다. 할아버지와는 8촌 형제간이라고 했다. 농사철이 아닐 때는 거의 매일 사랑방에 왔다. 할머니께서 마당이나 부엌에서 일할 때 꼭 가까이 와서 인사를 했다. 그러면 할머니께서 활짝 웃으면서 "아재 오셨네"하고 반갑게 맞이하였다. 그러면 서부할아버지는 기분이 좋아져서 땔감으로 사용하는 볏짚을 날라주거나 아궁이에서 나오는 재를 퍼 날라 주기도 했다. 무엇인가 할머니를 돕는 것이 즐거워 보였다. 어떤 날은 서부할아버지가 사랑방에 오는 것은 순전히 할머니 때문에 오는 것 같기도 했다. 서부할아버지는 할머니의 일을 도우면서 늘 싱글벙글 웃었다. 나도 그런 서부할아버지가 좋았다. 인사를 하면 언제나 미소를 짓는 것으로 답했다. 어떤 날은 끼니때가 될 때까지 일을 하는 바람에 할머니께서는 "아재 한 술 뜨고 가요"라고 말했다. 그러면 서부 할아버지는 빙그레 웃었지만 한 번도 밥을 먹지는 않았다. 꼭 집으로 가서 먹고 다시 왔다.
할아버지께서는 빈내와 서부할아버지를 적절하게 활용했다. 겨울이 되면 쇠죽을 매일 끓여야 했다. 쇠죽은 큰 가마솥에 짚을 썰어서 넣고 물과 함께 펄펄 끓여서 만들었다. 김이 하얗게 나는 쇠죽을 소 죽통에 부어주면 소는 뜨거운지 혀를 날름거리며 한참을 먹지 못하고 구수한 냄새에 만족해야 했다.
볏단을 써는 일은 두 사람이 짝을 이루어야 했다. 볏단을 작두에 넣는 사람과 작두를 밟는 사람이 흐름이 맞아야 했다. 나는 몇 번을 할아버지를 도와서 작두 위에 올라섰지만 밟는 힘이 약해서 볏단이 잘려나가지 않았다. 할아버지를 도와드리고 싶은데 어쩔 수 없었다.
할아버지께서는 빈내아저씨와 서부할아버지가 오기를 기다렸다가 작두 썰기에 힘을 쓰도록 이끌었다.
볏단을 썰 준비를 한 할아버지께서는 빈내아저씨나 서부할아버지가 오기를 기다렸다.
빈내아저씨가 사랑방 앞마당으로 들어서는 것을 발견하자 할아버지께서는
"오호! 빈내 오서오시게. 잠깐 나 좀 보세"
할아버지께서는 빈내를 작두 앞으로 데려갔다. 빈내아저씨는 입을 히죽거리면 알았다는 듯이 작두에 발을 올렸다. 빈내아저씨는 덩치가 있어서 그런지 쓱쓱 잘도 잘려 나가떨어졌다. 할아버지의 손놀림이 빨라지자 빈내아저씨도 숨을 몰아쉬고는 작두질에 온몸을 실었다. 할아버지께서도 신이 나서 연신'어이쿠 잘하네 잘 하네'를 연발하셨다. 그러면 빈내는 침을 흘리면서 더 열심히 작두질을 했다. 서부할아버지는 할아버지께서 짚을 작두로 가져가면 벌써 눈치를 채고 작두질 준비를 했다. 서부할아버지와 볏단을 썰때는 많이 썰어서 며칠 먹을 것을 준비했다. 서부할아버지는 서두르지 않고 할아버지와 보조를 잘 맞추어 작두질을 했기 때문에 할아버지께서도 여유가 있었다. 빈내는 하다가 힘들면 도망을 갔다.
할아버지께서는 쇠죽 끓일 재료를 미리 며칠 분을 준비해 두는 편이었다. 짧게 썬 짚은 소외양간 무쇠 가마솥 옆에 저절로 떨어져 쌓이게 만들었다. 벽을 뚫어 할아버지께서 직접 만들었다. 겨울 아침이면 할아버지는 쇠죽을 끓이신다고 가마솥 앞 아궁이 앞에 늘 앉아 있었다. 쇠죽을 끓일 때는 주로 왕겨를 사용하였는데 왕겨는 풍무가 있어야 잘 타올랐다. 나는 할아버지 옆에 앉아서 풍무 돌리는 것을 좋아했다. 풍무를 천천히 돌렸다가 빨리 돌렸다 하면 불이 살아났다가 죽었다 하는 것이 재미있었다. 그러다 가마솥에서 김이 새어 나오면 할아버지께서는 가마솥뚜껑을 옆으로 밀어 놓고 쇠죽 쇠스랑을 들고 휘휘 저어 골고루 짚이 익도록 했다. 이때 허연 김과 함께 쇠죽 냄새가 외양간뿐만 아니라 집 전체로 퍼져나갔다. 그래서 사랑방은 언제나 쇠죽 냄새가 배어 있었다. 이웃집에 있는 황소는 가끔 콩을 섞어서 끓인다고 하는데 할아버지께서는 귀한 콩을 쇠죽에 넣지 못했다. 가끔씩 할아버지 방에 있는 고구마 가마니에서 꺼낸 고구마를 아궁이 옆에 던져 넣었다가 꺼내 주기도 했다. 나는 할아버지 옆에 앉아 고구마를 까먹고는 손과 입이 새까맣게 되곤 했었다.
쇠죽을 끓이고 나면 사랑방은 군불을 넣는 격이 되어 방이 금세 훈훈해졌다. 사랑방 손님들이 늘 뜨끈뜨끈한 방에서 쉴 수 있었다. 아랫목은 돗자리가 타서 꺼멓게 변해 있었다.
한번 더 끓인 후에 가마솥뚜껑을 열면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김이 피어 올랐다. 할아버지께서는 쇠죽 쇠스랑을 다시 잡고 쇠죽을 퍼서 소 여물통에 퍼 담아 주었다. 그러면 누렁이 암소는 뜨거워서 바로 푹푹 먹지 못했다. 살살 혀로 겉에 있는 쇠죽을 먼저 먹었다.
겨울철 사랑방은 거의 매일 사람들로 붐볐다. 아침 식사가 끝나면 몰려들기 시작한다. 점심때와 저녁때 잠깐 집으로 돌아갔다가 다시 모여들었다. 어둠이 내리고 밤이 깊어갈수록 사랑방은 활기가 넘쳐났다. 김천시에 있는 담배공장에 다니는 아저씨가 오기 때문이다. 아저씨는 가장 친한 친구 대국이 아버지였다. 사랑방 손님 중에서 가장 젊었다. 농사일을 하지 않아서 뽀얀 피부에 입고 있는 옷도 달랐다. 양복바지에 희 와이셔츠 차림이었다. 아주 명쾌하고 신명이 많으신 분이다. 그분이 사랑방에 나타나면 갑자기 떠들썩 거린다. 뭔가 역동적으로 일이 꾸며지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윷을 놀기도 하고, 내기 화투놀이를 하여 돈이 모이면 먹을 것을 사 와서 한바탕 즐거운 밤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