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아버지의 연
어둠이 내려오자 마을도 고요한 별 빛만이 내려앉아 있었다. 조그마한 투명 유리가 가운데 달린 문으로 마당을 볼 수 있어 무슨 소리가 나면 유리에 눈을 붙이고 마당을 내려다보곤 했다. 어른들의 헛기침 소리를 내며 사랑방으로 들어가는 동네 어른들 만이 가끔씩 보일 뿐이다. 할머니는 바느질을 하고 나는 작은 호롱불 밑에서 타다 남은 성냥개비로 불장난을 하고 있었다. 그때 밖에서 인기척이 났다. 뜰을 올라서는 소리가 사람임이 분명했다. 고요한 겨울밤은 아직 남아 있는 감나무 잎이 떨어지는 소리까지 들렸다. 마루에 올라 방문이 열렸다. 아버지였다. 할머니도 놀랐다. 늦은 밤에 불쑥 나타나니 반갑기도 하였겠지만 놀라움도 컸다.
일 년에 서너 번 이렇게 아버지는 자신이 태어나고 부모님이 계시는 고향집을 방문하였다. 매일 올 수 있는 버스가 다니는 큰길이 나 있었지만 아버지는 집 밖을 잘 나서지 않았다. 늘 밤에 왔다가 막차를 타고 나갔다. 낮에 집을 찾는 일은 없었다. 그래서 할아버지는 아버지가 다녀 간 사실을 알지 못했다.
어느 겨울날 아버지께서 낮 시간에 집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햇볕이 따스한 날이라 점심을 마루에서 먹고 있었다. 할아버지와 몇 마디 말을 나누고는 사랑방으로 가시고 할머니와 방 안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나는 마루에 걸터앉아 마당에 한가로이 모이를 쪼아대는 닭을 보고 있었다.
잠시 후 마루로 나온 할머니는 오래 머무르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할머니가 잠시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아버지에게 어려운 말을 꺼냈다.
"네 아들 방패연 하나 만들어주고 가라"
다른 집 아이들은 형이나 아버지의 도움을 받아서 큰 방패연을 만들어 매일 동네 어귀 방천에서 날렸다. 얼레에 실도 나이론 줄로 장날 사 온 것이 두껍게 감겨 있었다. 내가 만든 가오리 연은 멀리 날리 수 없었다. 바느질하는 실을 사용하기 때문에 실이 짧고 약해서 멀리 날리 못했다. 얼레도 튼튼하지 못했다. 내가 만든 나무 얼레는 나무가 약해서 못을 치면 갈라지기 일쑤였다.
재료는 집에서 모두 구할 수 있었다. 문을 바르고 남은 창호지는 다락에 있고, 대나무는 대빗자루 낡은 것을 사용하면 되고 다만 얼레는 시간이 좀 걸리긴 하다. 나무를 자르고 굵은 철사도 있어야 했다. 튼튼하고 큰 얼에 실이 두둑하게 감겨있는 것을 보면 동네 형들이 부러웠다. 얼레는 연 싸움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줄을 풀 때는 얼레 끝을 잡고 있으면 자동으로 빠르게 돌면서 실을 풀리고 연은 바람에 더 멀리 나아갔다. 그러다 얼레 감는 손잡이를 잡으면 실이 풀리는 것이 멈추고 연은 높이 높이 날아올라 동네아이들이 모두 함성을 지르면 쳐다보았다. 연줄을 풀었다 감았다는 잘해야 연싸움에서 이길 수 있었다.
아버지께서는 마루에 걸터앉아 재료를 준비하자고 했다. 빗자루 만들고 남은 굵은 대나무 하나를 뒤뜰에서 가져다 드렸다. 할머니는 다락에서 창호지를 가지고 나오셨다. 아버지께서 대나무를 다듬는 동안 할머니는 밥풀을 준비하셨다. 보리가 없는 쌀밥으로 해야 하기 때문에 보리를 골라내고 밥을 으깨어 만들었다.
먼저 창호지로 만들 방패연의 크기를 결정하고 다듬어 놓은 대나무를 창호지에 대어 보고 알맞게 잘랐다. 대나무로 다듬어 만든 것을 연살이라고 한다. 살은 다섯 개가 필요하다. 창호지는 몇 번을 접어서 끝을 잘라 내고 펼치면 가운데 구멍을 만들었다. 이것을 방구멍이라고 했다. 이때 구멍의 크기를 적당하게 잘라야 한다. 너무 작으면 바람을 너무 많이 맞게 되고 너무 크면 잘 뜨지 않게 된다. 다섯 개의 대나무 살을 자르고 남은 종이에 밥풀을 넣고 접어서 살을 몇 번 쭉 당겨내어 밥풀을 발랐다. 이제 살을 연 종이에 놓고 누르기만 하면 된다.
첫 번째로 붙일 살은 머릿살이다. 머릿살은 연이 바람을 타고 공중으로 올라갈 때 정면으로 맞는 바람을 사방으로 흩어지게 하는 역할을 하며, 또한 세찬 바람을 맞을 때 연 윗부분이 견뎌내는 구실을 하므로 5개의 연살 중에서 가장 튼튼하게 만들어야 하고 가장 먼저 붙여야 한다. 그리고 대각선으로 두 개의 귓살을 붙인다. 귓살은 연의 형태를 유지하는 기본 뼈대로 바람을 상하 좌우로 흩어지게 하여 연이 공중으로 뜨게 하는 역할을 하는데, 머릿살 다음에 붙인다. 다음으로 가운뎃살이다. 가운뎃살은 연의 중앙을 상하로 가로질러 중심을 잡게 하는 역할을 하는데, 귓살을 붙인 다음에 붙인다. 마지막으로 허릿살이다. 허릿살은 연의 좌우를 가로지르는 연살로 5개의 연살 중 가장 가늘고 약한 살인데 마지막에 붙인다.
연줄은 세 가닥을 매는데 균형이 잘 맞아야 연이 한쪽으로 돌거나 기울여져서 땅으로 곤두박질치지 않는다. 연이 도는 방향을 보고 연줄을 조절하면 연을 잘 뜨게 할 수 있다. 연줄이 완성되면 멋으로 연꼬리를 양쪽에 짧게 달아 멋을 내고 태극 문양을 가운데 위에 그려 붙이면 완성된다. 얼레와 연결하고 날리면 된다.
두 시간이 작업하자 연이 완성되었다. 동네 형을 제외하고 친구들 중에서 내 연이 가장 큰 방패연이 되었다.
아버지가 손재주가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오래전 토끼장 만드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 그때는 너무 어려서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앙고라토끼를 길러서 털을 잘라 팔기도 했다. 아버지는 그래도 뭔가 수입원을 가져볼까 꿈은 가지고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방패연을 가지고 동네 아이들이 모여 있는 곳을 달려갔다. 바람이 불지 않아서 아이들이 많이 나오지 않았다. 바람이 없어는 연이 자꾸 가라앉았다. 실이 짧아서 높이 올리지 못했다. 한번 높이 올라가면 기류를 타서 좀체 연은 내려오지 않는다. 뒷동네 형은 연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높이 날리고 그대로 집으로 가져가서 나무에 묶어 놓고 그다음 날까지도 날렸다.
해가 뉘엿뉘엿 서산으로 기울여 갈 때 연날기는 끝나고 말았다. 결국 연줄이 모자라 높이 날지 못하고 가라앉으면서 큰 나무에 걸리고 말았다. 내가 연 날리는 기술이 부족하기도 했다. 아무도 연을 내려 줄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하염없이 연을 바라보았다. 날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저 멀리에 동네 어귀에 할머니가 보였다. 나를 찾아서 데려가려고 오신 것이 분명했다. 울지 않았다. 할머니와 함께 집으로 왔다. 아버지는 보이지 않았다. 할머니께 묻지 않았다. 그냥 살며시 간 것이 분명했다. 할머니도 나를 보고 뭔가 말을 하려다가 그냥 부엌으로 갔다. 저녁밥은 목이 막혀 넘어가지 않았다. 밤이 내리고 나는 다시 작은 유리로 마당을 내다보았다. 사랑방에서 잔기침이 들렸다. 다음날 큰 나무아래로 가 보니 연은 하염없이 나무에서 혼자 춤을 추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