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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호진 Oct 01. 2023

그렇게 하지 못할 수도 있지 않은가?


커튼 사이로 쏜살같이 달려오는 햇살과 아침을 맞이할 수 있는 것도

팔다리가 온전한 채 잠자리에서 일어나는 것도 

나에게는 고마운 일이다. 

지금 이 순간이 축복이다. 

그렇게 하지 못할 수도 있지 않은가. 


달콤한 사과와 노랗게 잘 구워진 은행 알과 암 닭 몰래 가져와 삶은 하얀 달걀

살랑이는 호수의 물결처럼 바람에 일렁이던 쑥밭에서 갓 뜯어 만든 쑥떡 한 조각

자연이 준 선물을 먹을 수 있는 

이 순간이 축복이다. 

그렇게 하지 못할 수도 있지 않은가. 


이른 아침 안개처럼 하얀 물방울이 솔잎에 내려앉자 눈부시게 반짝이며 춤을 춘다. 

멀리서 들리는 산 비둘기의 굵고 구성진 울음소리

제 각각의 언어로 지저귀는 작은 새들

계곡의 물소리

살랑이며 골짜기를 따라 내려오는 바람은 산 너머 향기를 가져와 살포시 던져주고 간다. 

그곳에 내가 서 있다. 

이 순간이 축복이다. 

그렇게 하지 못할 수도 있지 않은가. 


우리는 하얀 식탁에 앉았다. 

저녁을 함께 먹었다. 

부추전, 가죽 전, 양념향이 진한 갓 담은 배추김치

하얀 밥을 먹는다.

이 순간이 축복이다. 

그렇게 하지 못할 수도 있지 않은가. 


난함산에서 내려오는 개울 물소리가 들리는 서재에서 루미의 시를 읽는다. 

요란한 고라니 울음소리가 창을 두드린다. 

멀리서 짝을 찾는 새들의 주고받는 노랫소리가 감미롭다. 

지금 이 순간이 축복이다. 

그렇게 하지 못할 수도 있지 않은가. 


어둠이 밀려오고 별이 경쟁하듯 반짝인다. 

눈썹 모양을 한 붉은 달이 난함산 능선에 앉았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더 밝아오고 나는 신비한 우주의 한가운데 서 있었다. 

그렇게 하지 못할 수도 있지 않은가. 


아름다운 날을 뒤로하고 침대에 몸을 뉜다. 

내일은 또 어떤 축복의 날이 될까? 

어떤 기적을 보게 될까? 

신비로운 내일을 기대하며 눈을 감는다.


그러나 나는 안다. 

마침내 어느 날이 오면 그렇게 하지 못하게 되리라는 걸.



제인 케니언의 시 <그렇게 하지 못할 수도>를 나에게 맞추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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