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정보효과 또는 목격자기억
누구나 어릴 때 기억이 뚜렷한 일이 한두 가지는 있을겁니다.
저도 초등학교에 들어가지 못했던 어린 코흘리개 시절, 옆집 친구와 세발자전거를 끌고 나갔다 길을 잃고 헤맸던 일이며, 툇마루에서 낮잠을 자는데 형이 당시에는 귀했던 사진기를 가져와 사진을 찍어 주었던 일들이 기억납니다. 모르겠습니다. 어릴 때 자라면서 숱한 일들이 많았을 텐데 왜 몇 가지 일들만 구체적으로 기억을 하는지 …….
미국 에모리 대학의 패트리샤 바우어(Patricia Bauer) 교수의 연구에 의하면 3세 이전에는 언제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라는 개념이 정확하게 발달하지 못해서 기억을 저장하거나 떠올리는데 어려움을 겪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기억을 잃는 시점을 7~8세로 본다고 하네요. 이 분이 어린이를 대상으로 생일파티처럼 특별한 일이 있을 때 이를 녹음했다고 합니다 . 약 6년에 걸쳐 매년 녹음을 하고 어린이들의 기억을 조사한 결과를 보면, 5~7세 아이들은 3세 때 일을 60% 말하는데, 8~9세가 되면 이 비율이 40%이하로 뚝 떨어진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때 누군가 어떤 특정한 정보를 주거나 암시를 하게 되면 실제 경험하지 않은 사건을 경험한 것 같은 기억으로 만들게 된다고 합니다. 이른바 가짜기억(false memory)입니다.
이 실험은 유명한 여성 심리학자인 워싱톤 대학의 엘리자베스 로프터스(Elisabeth Loftus) 교수가 24명의 참가자를 놓고 실행을 했습니다. 이 분은 어렸을 때 성적 학대를 당한 사람의 케이스를 보고 관심을 갖고 연구를 진행하여 인간기억 전문가로 이름을 날리고 유명세를 탔었지만 재판에 관련되고, 범죄자 편을 드는 경우도 생겨 많은 비판과 함께 괴롭힘도 많이 당했다고 합니다.
1992년 제자 짐 코언(Jim Coan)과 함께 각 참가자의 가족과 친지들에게 들은 그들의 어릴 적 추억 세가지와 5세 때 쇼핑몰에서 미아가 되었다는 가공의 기억을 적어놓고 발생한 적 없는 이런 사건의 기억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 여부를 알아보았습니다. 그런 일이 기억나지 않으면 ‘없다’라고만 하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결과는 25%가 그런 기억이 있다라고 하였는데 기막히게도 그때 상황을 “가족을 다시 못 볼 것 같아 울었다.” “길을 잃고 울고 있는데 파란 옷을 입은 할아버지가 와서 나를 데려다 주었다.”등등 구체적으로 묘사하였다고 합니다. 이렇게 기억한다는 사람들에게 그것은 사실이 아니라고 밝히면 깜짝 놀란다고 하는데 그 가운데 일부는 사실이라고 계속 우긴다고 합니다.
이런 가짜기억은 잘못된 정보로 인한 오정보효과(misinformation effect) 또는 목격자기억(eyewitness memory)과 같이 우리 인간의 기억이 쉽게 변하고 암시에 취약하다는 점을 보여 주고 있다고 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유명한 사례를 들어보겠습니다. 1986년 1 월 28일, 미국 왕복 우주비행선 챌린저호가 발사된 지 불과 73초만에 폭발되어 7명의 우주비행사가 목숨을 잃은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더욱이 그 실황을 TV에서 생방송으로 중계를 하고 있어 그 충격이 더 컸는데 후에 이 중계를 본 시청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정확하게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은 불과 10%에 지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라는 베스트셀러를 쓴 박완서 선생님도 이 자전적 글을 쓰면서 가족, 친척들과 어릴 적 친구들에게 물어보고 들어본 결과 왜 그리 기억이 서로 다른지 모르겠다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이것은 결국 우리 인간의 기억은 컴퓨터 메모리 칩과 같이 그대로 저장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정보를 상상하고 추리하는 것이기에 나오는 현상이라는 것입니다.
범죄자에게 면제의 길을 열어주었다는 비판을 받은 엘리자베스 로프터스 교수의 연구는 회복기억 증거의 발전을 가져오고, 수사기관에 대하여 더 엄격한 수사와 함께 증거보강을 한층 강화시켜 억울한 피해자가 없도록 하는데 이바지하였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게 되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