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만 1천년 전의 외과수술
그동안 매서웠던 추위가 가라앉은 듯 날씨가 풀려 아내와 청주 시내까지 걸어가 점심을 먹고 오면서 옛 시청 뒤 지금은 폐업한 식당을 지나가게 되었지요. 그곳은 옛날 ‘신외과’라는 청주에 몇 안되는 병원이었고 그 건물 형태는 단층의 기와집으로 아직 옛날 모습으로 남아있습니다.
“저 병원이 대학 다니던 형이 맹장에 걸려 수술받고 입원했던 곳이야.”라고 아내에게 말하면서 병실에 갔다가 붕대를 칭칭 감고 있던 화상환자를 보고 놀랐던 기억을 되새겼습니다.
2023년 1월호 Newton을 보니 구석기시대에 외과수술을 한 인골을 발견했다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오스트레일리아 그리피스(Griffith)대학의 팀 라이언 멀로니(Tim Ryan Maloney)교수가 지난해 9월 네이처 저널에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보르네오섬 구석기 동굴유적에서 젊은이 인골을 분석한 결과 무려 3만1천년 전, 왼쪽 다리 아래 ⅓이 외과수술로 깔끔하게 절단된 흔적을 찾아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절단된 흔적은 결코 사고나 동물의 이빨에 의해 잘려나간 것으론 볼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지금까지는 7000년 전 신석기시대 프랑스 농민이 팔 수술을 받은 것을 가장 오래된 외과수술로 보았으나 이를 2만 4천년이나 앞서 이루었다니 놀랄만한 발견입니다 .
멀로니 교수는 2018년부터 그리피스대, 시드니대 그리고 인도네시아 발굴팀과 함께 보르네오섬 동쪽 칼리 발탄 동굴을 조사하면서 암각화도 발견하는 등 연구를 진행하여 오다가 2020년 리앙테베(Liang Tebe)동굴을 조사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 동굴에서 부장품과 함께 나온 인골을 조사하면서 그곳이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묘소임을 확인하게 되었고, 그 인골의 골격을 분석하여 정교한 다리 수술의 흔적을 찾아내게 되었답니다. 나이가 19~20세로 추정되는 젊은이는 수술 후 6~9년을 더 생존한 것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멀로니 교수는 수술 후 감염증이 일어나기 쉬운 열대우림에서 이런 수술이 가능했던 것은 세련된 의료지식과 숙련된 외과수술이 있었고, 열대우림이라는 기후의 특성이 풍부한 식물의 ‘종 다양성’을 갖게 되어 ‘천연약국’의 기능을 하여 마취제와 항균제가 있었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인류는 오랜 기간 수렵채취 시대인 구석기시대에서 끊임없이 이동하는 삶을 살다가 약 1만년 전 농경생활로 가게 되어 일정 지역에 정착함에 따라 새로운 건강 문제가 나타나게 되었다고 봅니다. 그러기에 구석기시대에는 이러한 외과수술을 생각할 수 없었다가 이번에 그 흔적을 찾게 된 것입니다.
또 하나 생각해야 할 것은 당시 이런 젊은 사람들을 치료하고 간병하는 보호체계를 갖춘 높은 수준의 사회가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 사회시스템이 있어야만 가능한 의료체계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
우리 생각에 아직 금속을 사용할 줄 몰랐던 석기시대, 이처럼 고도의 외과수술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쉽게 믿지 못할 것입니다. 사실 1만년 전의 구석기 유적에서 두개골에 구멍이 난 인골의 발견은 수천 건 넘게 보고되었고, 특히 남미의 마야문명으로 알려진 유적지에서는 1만건 이상의 두개골이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천공 두개골이 과연 고도의 뇌 수술 흔적이냐 하는 것은 쉽게 수긍하기에 무리로 보입니다. 많은 연구와 논쟁이 이어지고 있는데 유력한 가설은 당시 두통을 호소하고 광기를 보이는 사람에게 악령이 씌여 그런 것이라는 주술적 판단 아래 뇌에 구멍을 뚫고 몸 안의 악령을 밖으로 배출하고자 했던 것이라는 추측을 하는 것입니다. 실제 어떤 이유로 이루어진 것인지는 더 연구하고, 더 논의해야 할 과제라고 봅니다.
다만 외과적 상처에 의한 경우, 그 나름의 처방과 약초를 통한 치료가 가능하고, 또 그런 병자를 돌보는 사회체계는 상당히 일찍부터 시작되었음은 이번 멀로니 교수의 발굴을 통하여 확인할 수 있으리라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