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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ishbluee Nov 20. 2024

당신네 붕어빵이 쉬었어요.

차마 말할 수는 없었지만.

 둘째가 줄넘기 학원에서 나온다. 집에서 그래도 조금은 거리가 있는 학원을 이제 제법 컸다고 혼자 왔다 갔다 해서 영 기특하다. 오늘은 반찬거리를 사러 나왔다가 시간이 맞아 오랜만에 둘째를 마중 나왔다.

 

 "엄마~~~"


초록색 줄넘기 가방의 비닐겉면이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반짝 거린다. 그 빛이 둘째를 감싸니, 등에 천사 날개가 달린 것 같다. 도도도 달려오는 발걸음이 위태해서, 목을 쭈욱 빼고 고개를 들고 "어어어어~ 조심해~~."


 오랜만에 마중 나온 엄마가 영 반가운지, 달려와서는 포옥 안기는 내 새끼. 내 둘째. 위에서 내려보면 아직도 볼때기가 통통~ 허다. 몰랑몰랑 말캉말캉 부드러운 마시멜로 같다.


 "가방 이리 줘."

"아니에요, 엄마가 힘드시잖아요. 이 정도는 내가 들 수 있어요!"


눈에 힘을 꽉 주고 또박또박 꼭꼭 씹어 말하는 둘째. 그렇다 치기엔 가방 끈이 헤까닥 내려가고 있는 걸. 그래, 주워 올려가며 잘 메고 가봐라 싶어서. 우리 아기 많이 컸네~ 하고 궁둥이를 퉁퉁 쳐주었다.

 호~ 호~ 입바람을 분다. 늦가을까지 물러가지 않았던 더위가 갑자기 발을 빼더니, 서늘하다 못해 싸늘한 한겨울날씨처럼 바람이 차가워졌다. 울 애기 손도 얼음장같이 변해간다. 조금이라도 따듯해려나 싶어 작은 손을 꼬옥 잡고 내 주머니에 포옥 넣어두고 서둘러 길을 걷는다.



 

 줄넘기 학원에서 집으로 가는 길에는 붕어빵 가게가 있다. 슈크림붕어빵, 팥소붕어빵 두 종류를 파는데 우리 둘째는 늘 팥소를 넣은 붕어빵을 먹고 싶어 한다. 혼자 왔다 갔다 할 때에는 용돈을 가지고 다니지 않아서 붕어빵을 사 먹을 수 없었다. 엄마가 마중나온 지금이 절호의 기회였다. 둘째가 애처로운 눈빛을 보내면서 붕어빵 가게와 엄마를 번갈아 쳐다본다. 세 개에  이천 원짜리 팥붕어빵. 그까짓 거 사주는 건 아무것도 아니지만, 나는 잠시 망설여야 했다.


사진: Unsplash의Kevin Engelke


 얼마 전에 한 피검사에서 만족할 만한 수치는커녕, 더욱 안 좋아진 수치 때문에 둘째는 당분간 밀가루와 단 것을 멀리해야만 했다. 또래와 키는 비슷하지만, 몸무게는 오히려 안 나가는 우리 아가는 유전적으로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다. 마음같아서는 좋아하는 붕어빵을 잔뜩 쌓아두고 와구와구 먹이고 싶다. 하지만 안 돼. 안 되지. 고개를 절레절레 젓다가 다시 아이와 눈을 마주친다. 굳건했던 결심은 그 눈빛에 사르르 무너지고 만다.


 '그래. 어쩌다가 한 개 즈음.'


내가 졌다. 세 개에 이천 원짜리 붕어빵을 샀다. 둘째가 함박웃음을 지으면서, 꼬리부터 맛있게 뜯어먹는다. 하얀 김이 모락모락 솟아난다. 아 뜨거워, 아 뜨거, 하면서 한 입 두 입 베어 물 때마다 빵실빵실 부풀어대는 볼을 보면서, 흐뭇하게 웃음지으며 나도 붕어빵을 한 개 꺼내어 한 입 베어 물어본다.


아...

 

이마를 살짝 찌푸린다. 음...


시큼하다. 달콤하기만 해야 하는 팥소인데. 다시 한 입 먹어보지만, 이질적인 이 시큼한 맛. 냄새를 킁킁 맡아보았다. 달달한 냄새 사이에 스며있는 쉰 내. 아무래도 팥소가 조금 상한 것 같은데.




잘 먹고 있는 둘째의 붕어빵을 슥 빼앗는다. 아무래도 상한 것 같다며. 둘째가 영 서운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본다. 다시 발걸음을 돌려서 붕어빵 가게 쪽을 돌아본다. 다시 붕어빵 냄새를 맡아보지만 미묘한 쉰내가 사라지질 않는다. 어쩌면 내 후각이 예민한 걸까? 하지만 불쾌한 냄새를 조금이라도 감지한 이상, 내 아이의 손에 이 붕어빵을 다시 들려줄 수는 없었다. 오랜만에 좋아하는 붕어빵을 겨우 한입 먹고 엄마에게 빼앗겨버린 둘째는 체념한 듯, '어쩔 수 없죠, 엄마." 하며 돌아선다. 가뜩이나 조그마한 아이의 뒤돌아선 어깨가, 더욱 더 작게 움츠러드는 것 같아보였다. 울컥 속상한 마음이 들어 붕어빵 가게 쪽을 향할까 하던 내 발걸음은 다시금 망설여진다. 애매한 이 느낌을 전달을 할까, 말까. 내 마음도 영 서운해진다.


저기요, 당신네 붕어빵이 쉬었어요.
확실하진 않은데 쉰 거 같아요.


결국 속으로만 이야기하고 꿀꺽 삼키고야 만다.


애써한 결심 끝에 간신히 한입 허락한 붕어빵 팥소의 묘한 쉰내음이 혀끝에 맴돈다. 햇빛은 따듯한데, 영판 바람이 차가워서 괜스레 신경질이 났다. 서둘러 둘째의 손을 꼬옥 잡고, 집으로 향한다.


"아가, 미안해. 다음에 꼭 다시 사 먹자."


사진: Unsplash의Hoyoun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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