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다가 봉창.
얼마 전에 폭설로 인해 부러진 나무가 아직도 정리되지 않은 채, 아파트 입구에서 비참하게 쓰러져 있다. 꽁꽁 언길은 추위로 인해, 더욱 단단히 얼어 겉으로 보이기엔 쌓인 눈인데 보송보송한 것으로 착각해 발걸음 잘못 옮기면 그대로 뒤로 넘어져서 머리가 깨지게 생겼다. 얼른 치워야 할텐데...
추워서 손이 시렵다. 따듯한 샤브샤브 해서 울 어린아이 먼저 먹이고, 치우고 데스크탑 앞에 앉아, 머리를 싸매가며 글을 쓰고 있었다. 밤이 깊어지자 하나, 둘 씩 집으로 귀가를 했고, 큰 아이는 배고프다며 닭발을 꺼내 덥혀달라고 했다. 속이 쓰릴까 봐 걱정이 되니 이런 자극적인 음식은 너무 많이 먹지 말자고 하며 순순히 냉동 닭발을 꺼내서 덥히고, 계란찜은 네가 해보라며 빈 그릇을 꺼내어 주는 늦은 밤.
따듯한 물 한 잔 담아 다시 자리에 앉아 쓰던 글을 마저 쓰고 있었다. 평화로운 어느 겨울밤. 바로 그런 밤이었다.
그날도 그런 밤이었겠지. 정우성, 황정민이 재연해 준 그날의 밤. 그날 밤도 이런 밤이었겠지.
영화로 보고, 소설로 보며 전 국민이 애통해하던 그 밤. 영화는 상을 받았고, 그 독재시절의 또 다른 날을 기록한 소설은 무려 노벨상을 받았다. 그 영화를 보고, 답답한 마음 누를 길이 없어졌고, 그 소설을 보고 오열한 것이 바로 한 달이 채 되질 않았다.
어젯밤, 바로 그날의 재연을 현실로 받아들여야 했다.
그것도 느닷없이 봉창 두드리듯.
무방비 상태로 뒤통수를 한 대 맞듯이.
3시간여의 그 밤동안 그저 평범한 가정인 우리 집은, 하필 서울의 봄 영화도 보고, 소년이 온다도 읽었어서, 그리고 하필, 학교에서 배우는 한국사 진도가 바로 그 시대라서, 모두가 공포에 떨어야 했다. 왠지 모를 아슬아슬한 분위기에 무슨일이냐며 허둥이며 눈물이 그렁그렁한 둘째 아이를 '별일 아니야' 하며 침대에 뉘이고, 속으로는 '여차하면... 아이들을 데리고 ... 어떻게 해야 하지.' 하는 생각들이 끊임없이 들었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머릿속에선 온갖 드라마와 영화가 쉴 새 없이 상영되고 있었다.
가짜 뉴스들이 돌아다녔다. 뭐가 진짜 인지 알 수 없었다. 무장한 군인들과, 탱크. 헬기가 날아다녔다. 오래전 서울의 봄날 어느 밤처럼, 지금. 여기 지금 겨울의 오늘 밤 그때의 장면이 재현되고 있었다. '소년이 온다' 소설에서는 손을 들고 항복하는 중학생들이 군인들의 총에 맞아 죽었다. 나이 어린 군인들은 두 손에 총을 쥐어들고 또래 친구들에게 총구를 겨누었다. 친구의 죽음을 알아채는 먼저 죽어 영혼이 된 중학생 소년의 독백이 아직도 기억에 선하다. 국가 전복의 날 비통하게 소리 지르던 정우성의 목소리가 아직도 귀에 쩌렁쩌렁한데...
우리 애들 나이를 가만 가늠해 본다. 큰애는 이미 고등학생이다. 학교를 폐쇄한다는 진짜인지 가짜인지 알 수 없는 뉴스들도 돌아다녔다. 잘 들어가던 지역카페도 갑자기 들어가지 질 않는다. 카톡에서는 온갖 불안들이 나누어지고 있었다. 겁먹고 무서운 시간이었다. 내일 애들 학교를 보내야 할까. 남편 회사를 보내야 할까...
아이들을 재우고 여러 개의 창을 띄워놓고 뉴스를 보며 우리 부부는 눈과 머리가 바빴다. 무장군인들이 국회에 진입하는 것을 보면서, 이게 현실이 맞나 볼을 꼬집어 보고 싶었다. 다행히 몇 시간 후에 이 사태들은 마무리가 되었다.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 몇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은 생각을 했는지 머리가 지끈거려서 두통약을 먹어야 했다. 그러고 나서 침대에 누웠는데, 갑자기 울컥 화가 치밀어 올랐다. 침해돼도 너무 깊이 침해가 된 나의 오늘 밤의 평화. 내 평범한 일상.
누워서 바로 잠이 들 수 없었다.
어젯밤. 그런 밤이었다.
오래전 죽은 유령들이 내 침대 위에서 배회하고 있었다.
그들이 내 귓가에 속삭이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런 스산하고 무서운 밤이었다.
어제는 바로 그런 밤이었다.
나는 눈을 감고, 다시 미처 치워지지 않은 눈과 정리되지 않은 부러진 소나무 걱정을 하였다.
내일 등교길에는 치워져야 할텐데...
그렇게 다시 어렵게 어렵게 잠에 들었다.
2024년 어느 겨울밤은
드디어
마침내 그렇게 저물게 되었다.